언제부턴가 우리 집 저녁 풍경이 달라졌다. 장을 보고 다듬고 끓이던 자리를 봉지를 뜯어 데우거나 손질된 재료를 냄비에 쏟아붓는 일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밀키트와 간편식이다. 이것은 집밥일까? 외식일까? 사실 그 경계 자체가 흐릿해졌다. 누군가는 '요리의 종말'이라 걱정하고 누군가는 '주방 해방'이라 반긴다. 외식산업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변화를 좋다 나쁘다로 재단하기보다 그것이 무엇을 바꾸었고 무엇을 남겼는지 차분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집밥과 외식 사이, 새로운 칸이 생겼다
원래 우리 식사에는 두 개의 칸이 있었다. 집에서 지어 먹는 집밥과 밖에서 사 먹는 외식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새로운 칸이 하나 생겼다. 집에서 먹지만 내가 처음부터 만들지는 않은 밥. 바로 간편식(HMR)이다.
간편식은 손이 가는 정도에 따라 나뉜다. 데우기만 하면 되는 즉석조리식품(국·탕·볶음밥 등), 뜯어서 바로 먹는 즉석섭취식품(도시락·삼각김밥 등), 그리고 손질된 재료와 양념이 한 상자에 담겨 '마지막 조리'만 내 몫으로 남겨 둔 밀키트다. 특히 밀키트는 흥미롭다. 완제품을 사는 것도 처음부터 만드는 것도 아닌 그 중간에서 '요리하는 기분'까지 파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숫자가 보여주는 변화의 크기
이 변화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산업의 흐름이다. 국내 간편식 시장은 지난해 약 6조 8000억 원 규모로 집계됐고 올해는 7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10년간 해마다 10%대 중반씩 성장해 온 시장이다.
그 배경에는 우리 삶의 변화가 있다. 1인 가구가 늘고 맞벌이가 일상이 되고 아예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 이른바 '키친 클로징' 경향까지 퍼졌다. 한 사람을 위해 재료를 사서 다듬고 남기느니 정확히 한 끼만큼 손질된 것을 사는 편이 합리적인 것이다. 다만 짚어 둘 것이 있다. 폭발적으로 크던 밀키트만 떼어 보면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2018년 345억 원에서 2022년 3700억 원대로 5년 만에 열 배 넘게 컸지만 이후로는 4000억 원 안팎에서 주춤하고 있다. 고물가와 재료비 상승 그리고 '이럴 거면 그냥 사 먹지'라는 요리 피로감이 겹친 결과다. 시장은 이제 손이 덜 가는 완조리·반조리 쪽으로 무게를 옮기고 있다.
밀키트는 정말 '집밥'일까
여기서 식품학자로서 짚고 싶은 것이 영양이다. 밀키트와 간편식을 '집밥'이라 여기고 안심하는 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바로 나트륨이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소비자 선호도 높은 밀키트 100개 제품을 조사했더니 절반이 넘는 51개 제품에서 1인분 나트륨이 하루 기준치를 넘거나 근접했다. 지난 글에서 외식이 집밥보다 짜다고 했는데 밀키트의 상당수도 '외식에 가까운 간'으로 설계돼 있는 셈이다.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그대로다. 누가 만들어도 맛있어야 팔리니 소스에 간을 세게 집약해 둔다. 우리가 밀키트를 '집에서 만든 것'이라 믿으며 국물까지 비우는 사이 실제로는 꽤 짠 한 끼를 먹고 있을 수 있다.
정보의 문제도 있다. 밀키트는 현재 '간편조리세트'로 분류되어 영양성분 표시가 의무가 아니다. 완제품 가공식품에는 깨알같이 붙어 있는 그 표가 정작 밀키트에는 없을 수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가 나트륨과 열량을 확인하고 싶어도 볼 정보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신선도 역시 갓 산 재료만은 못하다. 손질해 유통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신선한 집밥'이라는 이미지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밀키트를 탓할 일은 아니다
오해는 말자. 나는 밀키트와 간편식을 나쁜 것으로 몰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 가치는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밀키트는 요리에 서툴거나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집에서 만든 따뜻한 한 끼'의 문턱을 크게 낮춰 주었다. 혼자 사는 청년이 처음으로 감바스나 밀푀유나베를 자기 손으로 완성해 보는 경험, 퇴근 후 지친 부모가 20분 만에 그럴듯한 저녁을 차려 내는 일. 이것은 분명한 편익이다.
재료를 통째로 사서 절반을 버리는 것보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인다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요리라는 행위를 완전히 놓아 버린 사람과 밀키트로라도 냄비 앞에 서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밀키트는 '요리의 종말'이 아니라 어쩌면 요리로 들어가는 가장 낮은 문일 수 있다.
편리함을 잘 쓰는 법
결국 문제는 밀키트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다. 그리고 여기에도 이 시리즈가 되풀이해 온 답이 그대로 적용된다.
밀키트를 쓰되, '집에서 했으니 건강하겠지'라는 막연한 안심은 내려놓는 것이다. 딸려 온 양념을 다 넣지 않고 조금 덜어 내는 것만으로도 나트륨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여기에 냉장고 속 채소나 두부, 달걀을 더하면 부족한 영양은 채우고 간은 자연스럽게 묽어진다.
완성된 요리를 그대로 받는 대신, 마지막 조리를 내가 쥐고 있다는 밀키트의 특성이 오히려 여기서 강점이 된다. 조금 손대는 것만으로 '외식에 가까운 간편식'을 '집밥에 가까운 한 끼'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다.
정책이 할 일도 분명하다. 소비자가 최소한 나트륨과 열량은 확인하고 고를 수 있도록 간편조리세트의 영양 정보 제공을 넓혀 가는 일이다. 밖에서 먹든, 시켜 먹든, 데워 먹든,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 알 권리는 똑같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집밥과 외식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에 필요한 것은 '옛날처럼 다 해 먹으라'는 훈계가 아니라 새로 생긴 이 편리한 칸을 슬기롭게 쓰는 지혜다. 다음 편에서는 이 간편식 뒤에도 배달 뒤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 우리 외식의 절반을 떠받치는 '프랜차이즈'라는 시스템을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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