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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극복'이라는 환상 혹은 환각에서 깨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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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극복'이라는 환상 혹은 환각에서 깨어나기

[프레시안books] <궐위>

김건희 특검이 청구한 재판에 대해 재판부는 자본시장법을 위반하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해 인지하였음에도 공동정범으로서 범행을 실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판결했다. 비슷하게 명태균의 여론조작과 관련해서도 그와 같은 여론조사 기관의 행태가 일반적이라는 사실과 '계약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후의 집요한 요구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더해서 무죄로 보았다. 즉 사기가 있었으나 사기의 계약서 등 증빙자료가 없으므로 무죄라는 취지다.

이 판결에 대해 우리는 2025년 3월 7일 지귀연 재판부에 의해 내려진 윤석열 구속취소 판결을 떠올린다. '피의자에게 유리하도록 엄격히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법인식은 증거를 남기지 않는 권력형 화이트범죄에 대해 광범위한 면책권을 보장한다. 그리고 이런 일은 분명 "사법의 자-해를 통해서, 사법적 셀프-쿠의 성공을 위해서 관철되고 있는"(219) 친위쿠테타의 예외주의적 용단에 맞설 수 있는 근본적 질문, 이 책의 가장 중심적인 주제라 할 수 있는 칼 슈미트의 "누가 해석하는가, 누가 결정하는가?"(220)라는 질문을 마주한다.

탄핵 결정 이후의 (어쩌면) 장기-쿠데타 국면

윤인로의 <궐위>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정치철학자로서 본인의 '신정-정치'론이라 할 수 있는 개념의 자장 속에서 2024년 12월부터 2025년 6월까지의 사건들에 대해 주석을 달아놓은 단편들이다.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들은 필자에 의해 감각된 사실들이다.

이를테면 단적으로 12월 3일, 필자는 책을 읽고 있었고 그 책의 문구로 당일의 사건을 서술한다. 남태령과 서부지법의 극적인 사건 외에 일상이었던 광장의 집회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하나로 집약되어 호명된다. 마르크스의 브뤼메르 18일의 기록에서 등장한 일들을 대비시키면서 한국에서 벌어진 권력의 쿠데타가 가진 의미를 해석했고, 보나파르트를 지지하기 위해 등장한 애국적 민병대의 모습에서 서부지법 폭도들을 비교해냈다.

즉 이 책은 비슷한 시기를 다룬 일지와는 다르다. 일지라면 각각의 매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독자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목적이 강할 텐데 이 책은 그보다 각각의 사건에 대해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를 기록하기 위한 사상의 지진계 같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쓰여진 것보다 쓰여지지 않은 것, 즉 3월에 11개의 기록, 4월에 5개의 기록 그리고 5월에 6개의 기록에 불과한 것에 더욱 눈길이 간다. 필자는 마지막 글로서 (비상)대권의 예정된 머리가 광장의 수뇌가 될 때(309)라는 제목으로 "즉 자기의 이윤으로 돌아올 예정조화적 지도자-메시아주의로 거듭 상상되는 시간"(309)으로 당일을 기록하고 다시 인테레그눔 즉 궐위를 논한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 날이 다시 언급하는 궐위의 시간은 무슨 의미일까? "궐위 상태와 마주하여 되돌아갈 수 있는 차선책인 차악의 안식처 같은 건 없다"(315)라는 선언 그리고 뒤이은 양자 택일의 질문들은 '압도적 정권교체'라는 그들-우리의 구호에 대해 함구형과 다른 계엄령이라고 부르는 것과 연결해(295)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2025년 6월 이후의 시간을 포스트-쿠데타의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 지속적인 지배계급의 장기적 '셀프-쿠'로 바라보도록 만든다.

발신함에 쌓였다 뭉터기로 도착한 엽서들

내란 당일 장갑차를 막아선 김동현의 이야기와 광주민주화운동의 회억, 그리고 12월 21일 남태령에서 벌어진 사건과 1월 5일 한강진에서의 오병이어 사건들은 분명 계시적 경험이었다. 영웅이 있어서가 아니라 개인들이 개인의 역사를 넘어서는 어떤 게발트의 분기를 만들어냈(76) 다는 점에서 보면 벤야민이 말했던 법제정적인 신적-게발트의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상황은 김진숙의 글에서 이미 회고적 글로 정리가 되고 김나희의 '내란의 밤'이란 그림에서는 하나의 정물화로 박제된다. 현재 진행 중인 역사적 사태는 특정 시점마다 과거의 사건들을 다르게 분광시킨다.

그런 점에서 2025년 12월에서야 늦게 나온 이 책은 후일담이 아니다. 오히려 글이 멈춰진 지점 즉 2025년 6월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 대한 경합을 제안하고 있다고 본다. 그 점에서 광주민주화운동과의 회억을 말하며 언급했던 "... 편지가 다름 아닌 배송 불가능한 위기 속의 우편물이라는 점, 즉 수취인 불명의 상황을 조건으로 할 때에만 전달 가능해지는 '우편적 불안'과 접합되어 있다는 점"(303)이라는 문장이 오래 남는다.

분명 내란 사태는 새로운 제헌적 국면으로 가야만 하는 필연성을 보였다. 탄핵 판결이 인용되기 전까지인 6장까지의 글들에선 그런 열망이 명확하게 보인다. 의지적으로 필연성에 불가피성을 더해서 당부하는 마음이 보인다. 하지만 7장부터의 글에선 뒤늦게 털어놓는 자기-위로의 마음이 느껴진다. 분명 당혹감이 아니라 자기-위로라는 점은 아마도 내란 사태의 해석을 마르크스의 브뤼메르 18일의 기록과 대응하기로 했을 때부터 예견될 것일 수 있다.

이 점에서 2025년 6월 이후 이 책이 출간될 시점인 12월까지 부치지 않고 책상 위에 놓아둔 상태였을 '글뭉치' 상태에서의 고민이 더욱 궁금했다. 이미 무너졌어야 할 과거의 제헌 권력은 스스로의 자리가 투명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이용해서 건재하다. 여전히 비워져 있다는 환상은 가능성을 꿈꾸게 하지만 실제로 보이지 않도록 조장된 권력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권력이다. "도래 중인 미래의 생명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소멸해 가야 한다"(342)고 말하는 가장 최근의 고민은 현 상황을 '연옥-궐위"라고 부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가장 강력한 미덕은 발신이 되었다는 것, 즉 책의 형태가 되어서 '수취인 불명'일 지언정 누군가에게 가닿는 편지가 되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샴페인이 필요한 시간이었을 지 모르지만 나를 포함해 누군가에겐 위로의 공감이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니까.

영속적 궐위화라는 대안

오는 또 다른 6월에는 전국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아마도 압도적 정권교체라는 낡은 '호헌선언'이 반복될 것이다. 단 한번도 공화국의 주인이지 못했던 장애인, 성소수자, 비정규직 그리고 여성이라는 광장의 주체들은 호헌선언에 내몰릴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구태여 새로운 서문을 맨 뒤에 붙여 이 상황을 '연옥'이라고 칭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면 어떤 대안이 있는가? 이 책의 미덕은 7장 이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전은 너무나 승리적 서사로 넘쳐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의 기록은 의도적으로 생략되고 있으니 책에 담긴 짧은 단편이 더욱 값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안은 역시 그 앞의 역사에서 찾아야 겠다. 광장의 권력이 법복 귀족들의 법치주의로 빨려들어가기 전의 상황, 그러니까 백골단이 등장하고 사법부가 침탈당하면서 강제로 호헌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그 맥락의 이전을 반추하는 것, 필자가 말했던 순수한 게발트적 상황의 재현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대안의 시작이겠다.

그러기 위해선 궐위라는 시간의 불안감은 사실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 즉 자기면역 체계로서 제7공화국의 헌법적 시공간(194-204)을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다. 일종의 불순물되기 혹은 소화되지 않는 공화국의 이물질되기. 이 책은 앞표지에 그려진 권좌의 공백은 그것이 '주화'의 그림인 한에서 절대 비워진 것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하나의 장치이기도 하다.

이 책은 뒤늦게 도착한, 지난 시간의 기록이 담긴 엽서다. 답장을 쓸지 말지는 각자의 몫이다. 우리의 망각을 늦춘다는 이유만으로도 지금은 그 엽서를 꺼내서 읽어볼 시간이다.

▲<궐위>(윤인로 지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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