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번 대선에서 권영국 후보를 지지합니다. 이는 권 후보의 승산 등과 관계 없습니다. 득표를 많이 하시면 많이 하실수록 좋긴 하지만, 득표에 한계가 있어도 당연히 이해가 갑니다. 실질적인 양당제라는 기본적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의 장기적인 정치 발전에 바로 이 양당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양당제의 틀을 넘어 기층민중에게 독립적인 민중 정당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만큼 온건 자유주의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이 있어도, 그래도 권영국 후보를 지지하는 것입니다.
민주국가의 정치란 기본적으로 이해관계들의 조정의 장, 협상의 장입니다. 이 협상이 종종 지난하게 되는 이유는, 그만큼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층과 민중의 이해 관계가 전면적으로 서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간의 접점도 찾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시지요. 통계에 의하면 최하위 10%(주로 도시 빈민)의 평균 순자산은 약 1,280만원 정도 됩니다. 잘 나가는 변호사나 의사의 한달 소득이, 빈곤 가정의 평생 모은 재산 정도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최상위 10%의 순자산은 10억 이상이며, 최상위 1%로 가면 32억 정도 됩니다. 최상위 0.01%로 가면 더더욱 큰 숫자들이 나옵니다. 삼성의 3대 경영자 이재용의 순 자산은 15조원 이상입니다. 이 정도의 자산이면 구 유고 연방 몬테네그로의 1년 GDP보다 더 큰 돈입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시지요. 이해관계의 측면에서 겨우 1,280만원을 모을 수 있는 사람과 몬테네그로의 GDP만큼의 돈을 갖고 있는 사람 사이의 '공통분모'란 과연 있을까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예컨대 가난한 이에게는 "평화"는 절대적일 것입니다. 윤석열 등 내란 세력들이 도발해서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해외 도피를 못하고 아이를 군에 보내놓고 밤을 대피소에서 보내야 할 사람들은 바로 민중들일 것입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를 보시면 이게 무슨 말인지 바로 아실 것입니다. 올리가르히(대자본가)나 그 가족들이 군에 가 있는 경우가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침략국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삼성가 남성들의 병역 면제율이 평시인 현재 73%인데, 그들이 전시에 군에 끌려가서 최전방에서 싸울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최하위의 한국인들에게 평화는 절대적이지만, 대자본가에게 전쟁은 상대적 손실을 의미할 수 있어도 생산시설의 상당 부분이 이미 해외에 있기 때문에 치명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65%밖에 안되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빨리 끌어올리는 것은 민중으로서는 아주 절실한 부분입니다. 그래야 큰 수술도 돈을 덜 내고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세계 최고의 명의들에게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삼성가나 현대가로서는, 건강보험 보장률 인상보다는 상속세율 인하가 훨씬 더 절실할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접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죠.
그러면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양당제 국가에서는 과연 양당이란 "최상위 10%"와 "나머지 90%"의 양당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 것입니다. 미국에서 대자본은 보험에 가입하듯이 민주, 공화 양당에 다 정치 기부합니다. 한국 역시 대자본은 주류 양당과는 다 네트워킹이 돼 있는 상태입니다. 일부 특정 정책을 제외하면 주류 양당의 경제정책은 서로 다르지 않은 경우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임기 말에 수정했지만, 박근혜 적폐 정권이 도입한 부동산 임대 사업자 등록제, 다주택 소유자인 임대 사업자를 위한 세제 혜택 등을, 문재인 정권도 초기에는 오히려 확대 시행하여 부동산 가격 폭등을 자초한 면이 있습니다. 촛불로 정권이 바뀌고 적폐의 수괴인 박근혜가 탄핵이 인용돼 재판을 받아 감옥에 갔어도, 양당 사이에 정권이 바뀌는 그 상황 속에서 부동산 정책의 흐름은 오히려 그대로 고스란히 이어진 것입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류 양당은 공통으로 "자본"의 이해관계에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입니다.
물론 온건 자유주의 정당이 복지 정책이나 평화적 외교 정책을 동시에 펼칠 수는 있지만, 대개 그 규모는 한국 민중의 삶에 그 차이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하의 4년간 평균 복지 예산 증가율인 11.6%는 박근혜 시절의 7.7%보다는 다소 높긴 했습니다. 하지만 민중으로서 가장 중요한 지표인 전체 피고용자 중의 비정규직 비율은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불안 노동에 대한 초과 착취로 추가적인 이윤을 뽑아내고 있는 자본의 기초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정권의 기본적 성격상 사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바로 그래서 노동자와 서민, 빈민들에게 그들의 이해관계를 중심에 놓을 수 있는 그들만의 독립적인, 양당제 범위 밖의 정치 세력들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권영국 후보야말로 지금 이들을 대표합니다.
제게는 그 어떤 비현실적인 기대도 없습니다. 민중 정치의 시대는 내일 모레 당장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온건 자유주의자들이 집권해도, 민중 본위 정치세력의 독립적 존재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세력들은 계속해서 민주당 정권을 밑으로부터 압박할 것이고, 계속해서 비정규직 고용의 사유제한, 건강보험 보장률의 신속한 제고와 궁극적인 무상의료, 무상교육, 노후연금의 현실화, 최고세율의 인상, 법인세 인상,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의 제정, 고용허가제 철폐와 노동허가제로의 전환, 그리고 신속한 남북한 평화레짐의 구축을 힘차게 요구할 것입니다. 그런 밑으로부터의 요구들이 계속 실감이 나야 그나마 천천히라도 한국의 정치는 진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권영국 후보에게 지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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