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윤석열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2024년 12월 3일 '대한국민'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국가 경제를 곤두박질치게 만든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23일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060일만이다.
'법과 정의의 수호자'라는 검사 출신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의 배우자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는 지난 2년 11개월 수많은 비리 의혹에 휩싸여왔다. 스캔들이 터지면 다음 날 새로운 비리 의혹이 그걸 덮었다. 정권의 존재가 모순 그 자체였다.
윤석열은 '자폭'해 물러났지만, 그들 부부가 남긴 비리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은 이제 시작이며 청산되지 않은 '윤건희 정권'의 내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윤석열 파면 이후 남은 과제들을 짚어 봤다. 편집자

지난해 12월 3일, 검찰은 명태균 씨와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을 구속기소했다. 하필 그날, 윤석열은 밤 10시 28분경 무언가에 쫓기듯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전 세계가 경악했다.
윤석열은 왜 비상 계엄을 선포했을까. 여전히 미스터리다. "범죄자 집단 소굴"이라는 국회를 단죄 하기 위해서? 4월 총선 참패 이면의 부정선거 의혹을 캐기 위해서? 윤석열의 입에서 줄줄 나온 설명이지만 석연치 않았다. 시선은 명태균을 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8일 명태균은 "내가 구속되면 정권이 한 달 안에 무너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그 정권은 무너졌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약 5시간 전인 오후 5시경, 검찰의 구속 기소를 앞두고 명태균은 윤석열, 김건희와 대화 내용이 담긴 이른바 '황금폰'을 야당에 넘길 수 있다고 변호인을 통해 공개 협박했다. 그 무렵 윤석열 주변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울산에 있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급히 서울로 상경하고 있었고, 오후 7시경엔 윤석열과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삼청동 안가로 불러들여 '계엄군 접수 대상 기관'을 하달한다.
상식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반 헌법적 불법 계엄 선포 배경에 윤석열 부부의 비리 의혹을 쥐고 있는 한 정치 브로커가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 하에선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의 공소장엔 명태균과 관련된 상황이 언급된다. 비상계엄 열흘 전인 지난해 11월 24일 윤석열은 김용현과 대화 중 명태균 관련 야당의 공세를 언급하며 "이게 나라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명태균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검찰의 수사는 아직 윤석열과 김건희와 관련된 의혹까지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반전됐다. 윤석열은 파면됐고, 내란 수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불소추 특권은 사라졌고, 탄핵 지지 여론은 높다.
'윤석열 부부 공천 개입 의혹 사건'을 필두로 거대한 '명태균 게이트'는 열리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사건 전담수사팀은 조만간 김건희를 검찰청사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 국정 농단의 핵심 인물인 김건희가 가장 먼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게 된다면, 그건 명태균 게이트 수사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윤석열 부부 공천 개입 의혹 수사 걸림돌은 사라졌다…쟁점은?
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사건 전담팀(팀장 이지형 차장검사)은 지난 2월 17일 명씨 사건을 창원지검으로부터 이송받았다. 명 씨가 지난 9일 보석으로 풀려난 이후 전담팀은 10일, 11일 경남 창원에서 명 씨를 불러 조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명 씨는 13일 "내 앞에 놓인 어떤 먹잇감을 먼저 물고 뜯어야 그들이 열광하고 환호할까"라고 했다.
현재 전담팀이 진행하고 있는 수사 중 굵직한 것은 크게 두 건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 사건, 그리고 윤석열 부부 공천 개입 의혹 사건이다. 오 시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명 씨가 먼저 '물고 뜯을' 사건이 후자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2022년 대선 및 재보선, 2024년 총선 공천 개입 의혹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건 2022년 대선 여론조사 무상 제공 및 2022년 보궐선거 공천 개입 의혹이다. 의혹의 핵심은 간단하다. 2022년 대선을 전후해 명태균이 실질적으로 운영한 여론조사업체 '미래한국연구소'가 윤석열 캠프 측에 81차례, 총 3억7520만 원 상당의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 대가로 윤석열, 김건희 부부가 김영선 전 국회의원 공천을 명태균 씨에게 안겨줬다는 게 골자다.
먼저 여론조사 무상 제공 의혹. 국민의힘 경선 과정과 대선 과정에서 명태균이 '윤석열 보고용' 여론조사를 돌렸다는 녹취록은 차고 넘친다. <뉴스토마토> 등이 공개한 음성 녹취 파일에 따르면 2021년 9월 29일 명태균은 강혜경(제보자) 씨에게 "그 젊은 아이들 있다 아입니까? 무응답하는. 그 개수 올려갖고, 2~3% 홍(준표)보다 (윤석열이) 더 나오게 해야 됩니다"라며 "외부 유출하는 거니까"라고 말한다. 강 씨는 "알겠다"고 답했다.
대선 본선 때인 2022년 2월28일엔 강 씨에게 전화해 "윤석열 48%, 백분율 만들면 이재명 42%로 아마 그래 나올 거거든? 하여튼 조사 돌리면서 할 때마다 나한테 좀 얘기를 해줘요"라며 "만날 윤석열이한테 보고 해줘야 돼"라고 말한다. 2022년 3월 2일에도 명태균은 "PNR 조사 발표한 거 있죠?"라며 "그거 빨리 달라고 그래요. 윤석열이가 좀 달라고 그러네"라고 말한다. 비슷한 대화 내용 녹취록은 많다. 대선 기간은 물론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도 여론조사를 돌려 수시로 윤석열에게 보고했다는 정황으로 읽힌다.

이처럼 명태균은 윤석열에게 보고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여론조사를 돌렸지만 정산은 하지 않았다. 윤석열 측 회계 보고서나 국민의힘 회계 보고서에는 명태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비용을 지출한 내역이 없다. 강혜경 씨가 정리한 '무상 여론조사' 추정 비용은 3억7520만 원.
그리고 '대가성 공천 개입 의혹'이 이어진다. 명태균은 어떤 대가를 받게 됐을까? 이제 김영선 전 의원이 등장한다. 윤석열과 명태균을 연결해 준 이 '퇴물 정치인'은 2022년 대선과 같은 시기에 치른 보궐선거에서 경남창원의창에서 당선된다. 윤석열과 김건희가 김영선 공천에 깊숙히 관여한 정황은 윤석열의 육성으로 생생하게 드러난 바 있다.
2022년 5월 9일 공천 발표를 하루 앞두고 윤석열은 명태균과 통화에서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했다. 당시 재보선 공관위원장은 윤상현이다. 윤석열은 지난해 11월 7일 기자회견에서 "당시 국민의힘 공관위원장이 윤상현 의원인지도 몰랐다"고 전국민 앞에서 거짓말을 했지만, 추후 <시사IN>에 의해 공개된 녹취록에서 그가 "상현이(윤상현 의원)한테 내가 한 번 더 이야기하겠다. 걔가 공관위원장이니까"라고 말한 내용이 폭로됐다.
김영선 공천을 중개한 명태균은 무엇을 얻었을까? 그는 국회의원이 된 후 자신의 세비 절반을 명태균에게 건넸다. 총액은 9670여만 원. 다만 명태균은 공천 대가가 아니고 김영선 의원실 '총괄본부장' 월급이라고 주장하지만, 보좌관 월급이 의원 세비에서 나가는 경우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명태균이 윤석열, 김건희 부부에게 여론조사(3억7520만 원)를 제공했고, 윤석열, 김건희 부부가 명태균에게 '김영선 공천'을 제공했다. 김영선은 명태균에게 9670여만 원을 제공한다. '삼각 관계' 퍼즐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각각의 대가성을 입증해 윤석열, 김건희 부부와 명태균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게 검찰 수사의 입증 과제다.
이 사건의 공직선거법 위반 공소시효는,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으로 정지돼 있다가 대통령직 파면으로 인해 다시 작동을 시작했다. 김건희의 경우 민간인 신분이라 선거법 위반 공소시효는 완료됐지만 일각에서는 윤석열이 단순 선거법 사범이 아닌, 선거법상 '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공선법 위반 사건(공직선거법 268조 3항, 공소시효 10년)'으로 수사받을 경우 김건희가 '공범'으로 함께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참고로 박근혜는 2016년 제20대 총선 과정에서 친박계 인물들이 경선에서 유리하도록 공천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 형을 받았다. 당시 수사 핵심 검사가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석열이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
명태균 게이트, 국민의힘 게이트로 번질까?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은 윤석열, 김건희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이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명태균과 연관된 국민의힘 유력 정치인들의 '거래 의혹'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민의힘과 명태균의 관계 및 그에 따른 의혹도 규명 대상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명태균특검법'을 냈을 때 국민의힘 측에서 "윤석열 김건희 뿐 아니라, 당 전체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극한 거부감을 드러낸 이유다.
당장 김건희는 2024년 22대 총선 공천 개입 의혹을 받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역시 명태균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 선상에 올라와 있다.
그 외에도 명태균과 거래한 이준석, 김종인(전 국민의힘 대표, 비상대책위원장)은 물론 국민의힘 유력 인사 수십명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다. 국민의힘 당 차원에서도 여의도연구원(당시 지상욱 원장)이 명태균과 거래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명태균의 창원 산단 부지 선정 연루 의혹도 당으로 불똥이 튈 수 있는 문제다. 국민의힘 자체가 명태균 게이트와 연결돼 있다. 수사는 과연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 정권이 바뀔 경우 '특검'은 시작될까? '윤석열 거부권' 치트키를 상실한 국민의힘은 긴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치트키 상실'은 윤석열이 '계엄'을 두르고 자폭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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