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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에서 바다이야기까지…한국 초창기 게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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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에서 바다이야기까지…한국 초창기 게임사

[게임필리아] 한국 게임의 역사와 사행성

한국 게임의 역사, 특히 온라인게임이 부상하기 이전의 초창기 역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무엇보다 관련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인데, '게임'보다는 '전자오락'이나 '전자유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의 공식적인 기록 같은 것이 특히 부족한 편이다. 그래도 그나마 공신력 있게 찾아볼 수 있는 자료 중 하나가 당대의 법령이다. 법령의 제정 및 개정 과정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그러한 과정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을 짚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게임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라는 고유한 법으로 규율되고 있지만, 그렇게 안착하기까지의 과정은 꽤나 다이내믹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기장(업)법은 알고 있다

오늘날에는 거의 사어가 되었지만 한 때 다양한 오락형식들이 '유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에 따라 기원, 당구장, 롤러스케이트장 등 각종 상업용 오락시설들은 '유기장법'이라는 법령에 의해 규율되었다. 이 법은 사실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법령(유기장영업취체규칙)을 수정, 계승했다. 그러한 점에서 법령 내 '(유기장 내에서) 도박행위를 조장하거나 묵인해서는 안 된다'는 영업자의 준수 사항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던 원래의 법령에서는 없었던 이 조항이 추가되었다는 점에서 유기장법 제정의 시점에 유기장 내 도박/사행성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신문을 살펴보면 내기 당구 같은 것이 성행한다며 우려하는 기사를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얼마 전에서야 끝난 내전으로 인한 궁핍, 급속한 사회적 변동 속에서의 혼란 등으로 인한 한탕주의 등이 맞물려 시대적으로 도박 풍조가 만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각별히(?) 사행성 문제를 챙겼음에도 유기장법이 제정된 바로 그 이듬해에 큰 사건이 하나 터지는데, 바로 '회전당구장 파동'이다.

▲당시 회전당구장 풍경. (동아일보, 1962년 10월 19일 7면)

여기서 회전당구란 곧 파친코를 의미한다. 유기장법상 영업이 불가한 파친코장이 서울에서만 수십 곳이 성업 중이었다. 논란이 확산하자 당시 군정은 1962년 10월 26일자 시행령을 통해 회전당구장의 영업을 전면금지하고 국정감사를 실시하는 등 빠른 대처에 나섰다. 법규상 들여올 수 없었던 사행성 오락기의 유입은 군정 내부 고위직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수사가 유야무야되면서 이 사건의 정확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군정의 누군가가 재일교포로부터 뒷돈을 받고 파친코를 들여와 영업할 수 있게 조치했을 것이라 추측될 뿐이다. 이 회전당구장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전자오락/게임을 플레이하는 오락실은 아니었지만, 동전을 넣고 플레이하는 오락장치가 가득한 일종의 아케이드 플랫폼으로서 그 원형적인 아케이드가 사행성게임을 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은 한국 게임 역사에 있어 유의미한 지점이라 하겠다.

법령상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게임이 등장하는 것은 1973년의 개정 시행규칙에서다. 여기서 "사용료를 유기기구에 투입하거나 지불하여 일정한 시간 유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비사행성 전자식 유기기구"라는 '전자유기시설'에 대한 정의가 등장하는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오락실의 게임기 - 동전을 넣고 작동시켜 게임을 플레이하는 - 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이로써 이 시기에 이미 한국에 전자오락기기가 유입되어있었음을 가늠할 수 있다. 미국에서 <퐁>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기계식 핀볼 아케이드를 전자식 비디오 아케이드로 대체해간 것이 1972년부터였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꽤 이른 시점에 전자식 오락기기가 유입되었다 볼 수 있겠다. 다만 한국의 경우 아직 '전자오락실'과 같은 전문 영업장이 등장한 것은 아니고 다방이나 당구장 등지에 개별적으로 설치되어 운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유원지 같은 곳은 예외일 수도 있겠다).

▲당시 다방, 당구장 등에 설치/운영되었던 테이블식 전자오락기의 지면 광고.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5we&logNo=220998135942)

한편 이 '전자유기시설'에 대한 정의에서 '비사행성 유기기구'라고 콕 짚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한데, 왜냐하면 당시 시중에 사행성 유기기구 또한 유통되고 있었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실제 1960년대에는 앞서 언급했던 회전당구 파동도 있었고, 1971년에는 아케이드이큅먼트 - 슬롯머신 등 도박성 오락장치류 - 를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유기장법 시행령을 통해 영업 가능한 공중유기시설 중 아케이드이큅먼트를 삭제한 적도 있어, 당시 한국 사회에 사행성 오락장치들이 암암리에 운영되고 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개별적인 전자오락기기에 이어 그것들을 전문적으로 영업하는 장소, 즉 전자오락실이 법령에 등장하는 것은 1981년이다. '전자유기장'이라는 이름으로 법령에 처음 등장한 전자오락실에 있어 흥미로운 점은 1981년에는 유기장의 한 사례 정도로 제시되었다가 1984년 개정 때에는 유기장 업종을 대표하는 사례로 제시되어 3년 사이에 크게 격상된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말 <스페이스 인베이더> 같은 게임이 크게 히트하고 뒤이어 <갤러그>, <제비우스> 같은 게임들이 나타나면서 1980년대 초중반에 전자오락실이 동네마다 한두 군데는 반드시 존재하는 대중적인 유기장소가 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수긍이 가는 지점이다.

하지만 그러한 호황이 전자오락실에 있어 꽃길이었던 것은 아니다. 1981년 개정 시행령에서 사행성의 위험이 도사리는 전자오락실로부터 청소년의 출입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취지로 "비사행성 전자식 유기기구"라는 기존 조항을 삭제하고 미성년자의 전자유기장 출입을 금하는 조항이 추가됨으로써 단속과 규제가 한층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전자오락실에서 청소년들이 용돈을 탕진하는 것을 사행성이라 보는 등 - 사행성 요건상 게임의 결과가 운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인데, 당시 청소년들이 즐겼던 <갤러그> 같은 게임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 사행성이라는 개념이 모호한데가 있었고, 이미 상당한 규모로 전자오락실들이 전국에서 성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조치였다 할 수 있다. 결국 1984년에 어느 정도의 사행성이 허용되는 성인용 전자유기장과 그렇지 않은 (청소년 이용가) 유기장이 구분되어 허가 받도록 법령이 개정된다.

이처럼 1961년의 제정 이후 전자오락실이 상업용 유기장의 대표적인 사례로 떠오르는 1980년대 중반까지의 기간 동안 법령의 변천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바는 '사행성'이 처음부터 관련 법령의 개정에 있어 주요 축이었다는 사실이다. 한편 사행성을 통제하는 대신 청소년의 전자오락실 출입을 제한한 조치는 아직 한국 사회가 전자오락을 사회적으로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오락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1984년 성인용 유기장과 청소년 이용가능 유기장을 구분함으로써 그 이용자층을 확대한 것은 전자오락/게임이 대중오락의 방향으로 한발 나아간 조치라 볼 수 있겠다.

공중위생법 시대의 '슬롯머신 사건'

1986년에 들어와 유기장(업)법은 새로 제정된 공중위생법에 흡수된다. 공중위생법은 공중목욕장업법, 숙박업법, 이용사 및 미용사법과 유기장업법을 통합한 것으로 말 그대로 공중이 이용하는 시설에 대한 위생관리 체계라 할 수 있다. 한 때 게임이 공중위생법 관리 대상이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의 게임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주는 상징같은 사례로 언급되곤 하는데, 사실 한국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게임 역사 초창기에는 게임 아케이드에서 공중 위생관리가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다만 그것이 대략 한세기 전의 일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

여하튼 공중위생법 시대에 들어와서도 사행성/도박성에 대한 규율은 비슷하게 - 그러니까 성인용 오락실에 한해 어느 정도의 사행성이 허용되는 수준으로 - 유지되던 가운데 1993년 전국을 뒤흔드는 큰 사건이 하나 터진다. 사건의 발단은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원래 외국인 대상의 관광호텔 같은 곳에서만 영업이 가능했던 슬롯머신 무허가 영업장이 전국적으로 증가한데서 비롯되었다. 이에 1993년에 김영삼 정부 들어 대대적인 단속과 수사가 시작되었는데 그 결과 조폭뿐 아니라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까지 슬롯머신 사업에 연관된 것으로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여담이지만 이 때 수사를 맡은 담당검사가 바로 홍준표 현 대구광역시장이다.)

이 슬롯머신 사건으로 인해 성인용 전자유기장업이 금지되는데, 이는 곧 성인용 유기장에만 설치 가능했던 사행성 유기기구도 금지됨을 의미했다. 이러한 조치는 전자유기장을 성인 전용 시설로 만들어 청소년의 출입을 원천 금지했던 1981년의 조치와는 사뭇 반대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즉 1981년의 조치가 이용자층을 한정시켜 전자유기장의 유해성을 제한(적으로 통제)하자는 취지였다면 1995년의 조치는 (사행성을 금지하여) 그 이용자층을 청소년까지 확장함으로써 보다 대중적인 성격의 오락공간으로 만들자는 취지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국산 게임이 개발/수출되는 등 게임의 산업적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면서 바뀌기 시작한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읽힌다. 1996년 '전자유기장업'의 명칭이 '컴퓨터게임장업'으로 바뀌는 것, 1998년 유기장업 관리권한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문화관광부로 넘어가는 것, 그리하여 1999년에 마침내 공중위생법이 폐지되고 음비게법(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제정 1999년 2월 8일, 법률 제5925호)이 제정되기까지의 흐름 또한 그러한 분위기와 맞물린 변화라 볼 수 있겠다.

<바다이야기> 이후

이러한 분위기는 1990년대 후반의 온라인게임 붐을 타면서 슬롯머신 사태 이후 엄격해졌던 사행성에 대한 규제 완화로 이어진다. 1999년 음비게법의 제정과 함께 1961년 유기장법 제정 이래 처음으로 게임장업 전반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되었고, 2001년 개정 때에는 한발 더 나아가 신고제로 완화된다. 이 중 성인용 오락실 - 그러니까 어느 정도 사행성이 허용되는 - 인 일반게임장도 지정제에서 등록제로 규제 완화됨으로써 유기장 시대의 유산인 허가제의 흔적은 사라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오락실에서 제공하는 경품을 도서상품권이나 문화상품권 등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 조치는 훗날 사실상 경품을 환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모든 규제 완화의 기본 취지는 게임산업 활성화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제대로 된 관리/감시체제가 갖춰지지 못한 상황 - 당시는 게임물 전문 심의기관 같은 것도 전무했던 시절이다 - 에서 지나치게 과감하게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2006년의 <바다이야기> 사태의 전초를 마련한 셈이 되어버렸다.

<바다이야기> 사태는 2006년 초 제정 작업을 마치고 시행을 준비 중이던 게임산업진흥법에 타격을 주었다. 세계 최초라며 야심차게 준비했던 게임산업진흥법은 시행되기도 전에 대대적인 개정 작업에 들어가야 했고, 게임 산업과 문화를 진흥하는 쪽에 맞춰져 있던 정책의 축은 규제 쪽으로 이동해갔다. 게임산업진흥법 개정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게임물로부터 사행성 게임물을 제외한다는 것으로, 이에 따라 사행성게임물은 게임산업진흥법이 아니라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특례법의 적용 대상이 되어 시중에 게임물로서 유통될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게임산업진흥법의 개정에 따라 유기장법 시대서부터 공중위생법, 음비게법 때까지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사행성게임물과의 동거는 (최소한 법적으로는) 마무리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게임산업에 있어 사행성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여전히 <바다이야기>류의 게임들이 끊임없이 등급 분류 통과를 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모바일 플랫폼에서 특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 1960년대 유기장법 시대서부터 2000년대 중반 게임산업진흥법 제정때까지 살펴본 법령의 변천사는 게임의 사행성 문제가 늘 현재진행형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들어와 게임은 고유한 법체계까지 갖추는 데에 이르렀는데, 그럴 수 있었던 바탕에는 게임이 사행성 도박류와는 다른 오락임을 증명해왔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빠져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게임이 사행성 도박과는 다름을 입증하는 것만으로 그것이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폭넓게 즐길 만한 가치가 있다는 증명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사행성의 반대항에서 게임을 보다 건전하고 의미있는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어떤 가치 또는 지향점 같은 것에 대한 고민과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지점인데, 이는 물론 법조인의 몫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게임의 역사 연구가 이러한 지점에서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변천 속에서 우리 또는 인간이 게임, 나아가 놀이/오락에 부여해온 가치와 역할에 대한 탐구가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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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라

게임을 연구한다. 게임플레이는 어렸을 때부터 해왔지만 게임 연구를 접한 것은 대학원에 들어와 우연히 게임학 수업을 들으면서였다. 사회문화적 현상으로서의 게임,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 대표 저서로는 <게임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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