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형 아이템?
최근 게임업계에서 확률형 아이템 이야기가 많이 거론된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말 그대로 확률적으로 보상을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뽑기"(또는 "가챠")라고 보면 되는데, 구체적인 법률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게임산업진흥법 제 2조 11항] "확률형 아이템"이란 게임물 이용자가 직접적·간접적으로 유상으로 구매하는 게임아이템[유상으로 구매하는 게임아이템(게임의 진행을 위하여 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도구를 말한다. 이하 같다)과 무상으로 얻는 게임아이템을 결합하여 얻는 게임아이템을 포함한다] 중 구체적 종류, 효과 및 성능 등이 우연적 요소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확률형 아이템은 "부분유료화(Free to Play)" 게임에서 핵심적인 수익 창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부분유료화란, 게임을 설치하고 플레이 시작하는 것은 무료이지만 이후 돈을 조금씩 지출하면 더 원활한 또는 더 우월한 게임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수익모델(business model, 흔히 BM라고 함)의 게임 또는 디지털 서비스를 뜻한다. "무료앱" 다운로드 후에 "인앱 소액결제"나 "캐시"를 구매하는 구조라면 부분유료화라고 할 수 있다. 첫 진입장벽이 낮다는 이점이 있으나 반대로 무분별한 충동구매를 유발할 여지가 높고 게임에서 '돈으로 승리를 살 수 있는' 행위가 포함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논란이 되기도 한다. 한국은 부분유료화 서비스를 가장 먼저 그리고 널리 상용화한 나라 중 하나다. 거의 모든 국산 모바일 또는 PC 온라인 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 또한 쉽게 볼 수 있다. 그 종류와 가짓 수도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2024년 3월 대한민국 게임진흥법이 개정되며 '법적으로' 공식화된 확률형 아이템들은 다음과 같다:
캡슐형 확률형 아이템: 구매 또는 사용 시 다른 게임아이템을 제공하는 확률형 아이템으로서 제공되는 게임아이템의 종류, 등급 또는 성능 등(이하 "종류·등급·성능"이라 한다)이 우연적 요소에 의하여 결정되는 확률형 아이템. (예: 뽑기 상자를 열면 어떤 게임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꽝이 있을 수도 있다!)
강화형 확률형 아이템: 구매 또는 사용 시 다른 게임아이템의 종류·등급·성능을 변화시키는 확률형 아이템으로서 그 변화 결과가 우연적 요소에 의하여 결정되는 확률형 아이템 (예: 게임 내 무기나 방어구를 특정 확률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 얼마나 업그레이드될 지가 확률적이라 꽝이 나올 수도, 대박이 날 수도 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무기나 방어구가 파괴될 수도 있다!)
합성형 확률형 아이템: 게임물 이용자가 직접적·간접적으로 유상 구매하는 게임아이템과 다른 게임 아이템을 결합하여 획득하는 확률형 아이템으로서 해당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등급·성능이 우연적 요소에 의하여 결정되는 확률형 아이템. (예: 게임 내에서 특정 아이템이나 캐릭터 조각을 확률적으로 얻을 수 있고, 이 조각들을 퍼즐처럼 조합을 해야 실제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들. 조합 과정에서 꽝이 나올 수도 있다!)
한국이 이렇게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를 법적으로 명시까지 하게 된 데에는 지난 몇 년 간 꾸준히 게임 이용자들의 권익 요구가 있었던 것이 컸다. 2021년 넥슨, NC소프트 등 한국 대형 게임사들이 확률을 자기 멋대로 변경하거나 제대로 공지를 하지 않는 등 이슈가 불거졌고 이 과정에서 판교 곳곳에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게이머들은 게임회사에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LED 트럭, 근조화환을 보내고 온-오프라인에서 적극적으로 "0원 캠페인" 등의 불매운동을 펼쳤다. 이를 통해 게임회사 대표진들을 카메라 앞으로 끌어내 유저 간담회를 열어 서비스 개선을 강력히 요구하는가 하면, 일부는 아예 게임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전에 돌입했다. 한국 게임 이용자 상당 수가 성인, 그것도 20-40대의 비교적 젊은 유권자층이라는 점을 활용, 주요 정당들을 향해 각종 의견 전달, 로비, 언론사 커뮤니케이션을 한 것은 덤이다.
그렇게 해서 2024년 3월, 몇 년에 걸친 게이머들의 요구에 힘입어 한국은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고지를 법적 의무화한 나라가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서비스되는 게임 중 '유상으로 판매되는 확률형 아이템'이 포함된 경우 [이 확률형 아이템에서 X라는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확률은 XX%입니다]라는 문구나 도표를 어딘가에 표시해야 한다. 게임 광고에도 "확률형 아이템 포함" 게임이라는 사식을 적시하는 문구가 보여야 한다.
물론 법 개정 과정이 마냥 순탄치는 않았다. 게이머 트럭 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난 2021년부터 법 개정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2024년 까지 여러 논쟁이 벌어졌었는데, 그 와중에 내 눈길을 끈 것은 일부 한국 언론들의 '외국은 이렇다더라~' 식의 언론 보도들이었다. 그 중 일부는 사실과 전혀 다른 정보를 내세우며 '외국은 다 이렇게 하는데 왜 한국만 안 되는 건가, 역시 한국은 안돼' 식의 논리를 전개했다. 외국 사는 게임연구자나 업계, 정책 관계자들이 보면 '우리가요? 언제요?' 싶은 정보들도 참 많았더랬다.
그래서 이번 기고문에서는 이를 일부나마 바로잡고자 한다. 과연 한국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유난한 걸까, 아니면 오히려 너무 느슨한 걸까?
유럽 나라별 확률형 아이템 이야기
내가 지금 살고 있고, 또 최근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유럽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여력이 된다면 다른 지역도 다루어보겠다.) 유럽은 자고로 상당히 '빡센' 소비자 보호, 개인정보 보호 규제가 이미 시도되고 있는 동네다.
과연 유럽 국가들은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이슈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이를 위해, 최근 유럽에서 가장 활발하게 확률형 아이템 연구를 하고 있는 Leon Y. Xiao의 연구자료를 참고하였다. Xiao 연구원은 덴마크와 영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게임 연구자로서, 매년 세계 확률형 아이템 관련 규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2024년부터는 나와 함께 한국 확률형 아이템 관련 상황도 체크하고 있다. (☞관련 자료)
벨기에 – 총대는 맸지만 고민은 많은
벨기에는 유럽연합 본부가 위치한 곳이자, 확률형 아이템을 상대로 가장 먼저 총대를 맨 국가이다. 관련해서 한국에도 가장 많이 언론보도가 된 곳이다. 이야기는 바야흐로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벨기에 정부는 청소년 보호정책의 일환으로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판매 행위를 사행(gambling) 사업으로 규정하고 어길 시 80만 유로의 벌금 또는 5년 이하 징역이라는 처벌 규정을 마련했다. (☞관련 외신 보도) 그리고 벨기에 현지에서 인기몰이 중이던 <피파(FIFA)>, <오버워치(Overwatch)>,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 (Counter Strike: Global Offensive)> 게임들의 확률형 아이템 현황을 콕 집어 비판하였다. 하필이면 이 셋이 죄다 미국산 게임인지라, 벨기에의 확률형 아이템을 향한 조치는 곧바로 영미권 언론을 거쳐 전세계적으로 전파되었다. 당연히 한국 언론들도 이 소식을 타진했고, 게이머들 사이에선 '벨기에도 하는데, 한국엔 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없는가'라는 게이머들의 성토가 올라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몇 년이 지나 2021년, 한국에 대규모 게이머 트럭시위로 이어지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다만 약 6년이 흐른 지금, 벨기에 정부의 법 규정이 실제로 효용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2022년에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벨기에 앱스토어에서 판매되는 상위 100위 모바일 게임들의 무려 82%가 버젓이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외신 보도) 벨기에 정부 내 확률형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담당 부처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 주요 문제다. 확률형 아이템을 불법으로 명명한 것까진 성공했다지만 그 이후에 그 불법이 자행(?)되는 걸 잡아들일 여력이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인구 1천 만 규모에 불과한 작은 나라 벨기에가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의 게임 기업들을 과연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도 산적해 있다.
더군다나 게이머들의 자발적인 '디지털 이민'을 막을 수 있는 길이 애매하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벨기에는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확률형 아이템을 이유로 벨기에에서 출시되지 못한 게임 <디아블로 이모탈(Diablo Immortal)> 의 경우,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국가 지정만 변경하면 벨기에 땅에서 얼마든지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또는 차를 타고 국경을 얍! 넘기만 하면 되는데 뭐가 어려우랴. (VPN을 쓰는 방법도 있다!) 그래서 2023년, 벨기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연구 논문 링크), '게임을 자유롭게 플레이할 권리'를 주장하며 확률형 아이템 접근을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는 게이머들의 사례가 다수 보고되었다. 벨기에의 게이머들은 여전히 해외 SNS, 스트리밍 서비스 등에서 확률형 아이템 기반의 게임에 여전히 노출되고 있는데, 자신들만 이용에 제약을 받는 상황을 불만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온한 정책 이행이 오히려 대중의 반발심만 자극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있는 대목이다.

네덜란드 – 판결과 어른들의 사정
벨기에와 함께 확률형 아이템을 대상으로 총대를 멘 국가이다. 다만 벨기에가 입법으로 선공을 날렸다면 네덜란드는 소송을 통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판례를 쌓아 올린 경우라는 점이 사뭇 다르다. 우선 시작은 2018년, 네덜란드 도박 규제당국이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으로 볼 수 있다는 소견서를 내면서 시작되었다. (☞원문 다운로드 링크) (☞당시 관련 외신 보도) 그리고 이를 근거로 이듬해 2019년, 네덜란드 도박규제 당국은 <피파(FIFA)> 게임을 서비스하는 미국 Electronic Arts (EA) 게임사에 500만 유로(약 70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당연히 EA는 항소했고, 지난한 법률 다툼이 몇 년 동안 오가다 마침내 2022년 3월, 네덜란드 법원은 EA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뿔사, 네덜란드 정부가 패배한 것이다.
2022년 3월 EA의 승소 판결 이래, 네덜란드는 유무상 확률형 아이템을 게임 내에서 서비스해도 별다른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확률형 아이템 제한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것에 반발한 네덜란드 하원의원들이 유감 성명을 발표하고 (☞링크) '사법부로 안 된다면 입법이다!'라며 확률형 아이템을 콕 집어 규제하는 법률를 입법하려고 하긴 했으나 (☞관련기사 링크), 하필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연정이 붕괴되고 2024년 새 정부가 들어서며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참고: 네덜란드는 의원내각제 국가이다. 고로 연정이 무너지면 정부도 새롭게 들어선다.) 이민 반대와 경제 발전을 전면에 내세운 현 네덜란드 정부 기조를 볼 때 아무래도 게임은 후순위로 밀린 것 같아 보인다.
특이할 만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현지 게임산업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다소 조심스러운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아마도 지난 몇 년간 EA와 정부 간 소송전을 지켜보며 '자칫하면 우리도 소송전에 휘말리는 거 아냐?'라고 위기감을 느꼈던 업계 내부의 분위기가 아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네덜란드에서 개발 및 판매되는 게임들은 상당 수가 확정형 상품 (확률이 아니라 확정적으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이다. 물론 이 기조가 앞으로 계속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다.
다행인 점이라면, 비록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흐지부지 되었다지만 여전히 네덜란드는 강력한 소비자 보호법을 통해 디지털 서비스들에 대한 정확한 판매 정보 고시, 공정한 거래 유도, 그리고 강매 금지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자료 링크) 그리고 이를 근거로 확률형 아이템 서비스에 압박을 줄 여지가 충분하다. 실제로 2024년 4월, 네덜란드 소비자 및 시장 관리 당국(The Netherlands Authority for Consumers and Markets)은 미국 에픽 게임즈(Epic Games)의 <포트나이트(Fortnite)> 게임이 아동 및 청소년의 경쟁심리를 부추겨 불합리한 소비를 강요한다는 이유로 112 만 유로 (약 17억 원)의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네덜란드 당국 보고)
프랑스 & 오스트리아 – 이것은 도박인가 아닌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금전적인 수익이 발생할 경우'를 도박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A를 지불하면 B를 받는다' 식의 확정적인 거래 계약이 아니라 'A를 지불하면 B가 나올 수도 있고 C가 나올 수도 있고…' 식으로 확률형 아이템이 판매되고, 이후 이것을 개인이 현금화해서 수익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면 도박으로 해석된다. 도박으로 판명되면 당연히 그 게임은 서비스에 여러 제약을 받게 된다.
오스트리아는 소비자가 도박으로 인해 부당한 거래를 당한 경우, 제공자로부터 환불 조치를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법적 조항을 근거로 오스트리아 게이머들이 <피파(FIFA)>와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Counter Strike: Global Offensive)>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일부 환불을 받아낸 바 있다. (☞관련 외신기사 링크) 다만 피의자가 미국 대형 기업들의 게임인지라 아무래도 소송 비용이 많이 들고 결론이 나오는 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 난제로 꼽힌다.
무엇보다 판례가 들쭉날쭉하다는 것도 문제다. 이유인즉슨, 오스트리아 도박 규제법은 해당 행위가 '수익으로 이어지는지'를 기준으로 판결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이 '수익' 또는 '수익을 크게 훼손하는' 어떠한 행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일일이 입증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확률형 아이템이 있긴 한데 저렴한 경우(수익을 크게 훼손하지 않았으므로), 거래가 불가능한 경우(수익화가 되지 않으므로) 등등 여러 변수가 있다. 당연히 대형 게임 기업들은 이러한 법과 판례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대응하고, 반면 기업들이 그러면 그럴수록 소비자 보호단체와 게이머들은 더욱 극렬하게 반발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얼추 교통정리 해 줄 항소심이 현재 오스트리아 대법원에서 심의 중에 있다고 한다. 지금 예상대로라면 2025년 하반기 즈음 판결이 나는데, 만약 대법원을 통해 좀 더 명확한 확률형 아이템 환불 조치 기준에 대한 판례가 성립된다면 앞으로 네덜란드 내 확률형 아이템 판매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도 오스트리아와 사정이 비슷하다. 2018년, 프랑스 도박규제당국(ARJEL)은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금전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 관련된 게임회사에 대한 제재를 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다운로드 링크) 다만 연구자들은 이러한 프랑스 당국의 해석에도 맹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오스트리아의 사례처럼 케바케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하나요, 중간에 게이머들 간 아이템 거래가 낄 경우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 또 하나다. 예를 들면, A라는 게이머가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서 취득한 경품을 B와 다른 경품으로 물물 거래를 했다고 치자. 그리고 이것을 B가 경품을 금전으로 바꾼 경우는 어떻게 될까? 즉, '확률형 아이템 취득'과 '금전적 수익 창출' 사이 사람 대 사람 간 1대 1 교환이 중간에 한번 일어난 상황이다. 이런 시나리오에서는 법적 해석이 좀 애매해진다. 왜냐면 A 입장에선 물물교환을 했기에 금전적 수익은 발생하지 않았고, B 입장에서도 물물교환을 통해 얻은 아이템을 금전화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변칙으로 확률형 아이템으로 얻은 상품을 금전적 수익으로 전환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결국엔 프랑스 당국이나 법원이 일일이 사례 하나하나를 검토하고 체크해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매일 수백여 개의 게임이 출시되는 마당에 이를 선별적으로 검사 및 규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참고로 한국도 이와 매우 유사한 형태의 규정이 있다. 한국은 우연적인 방법으로 득실을 결정하여 재산상의 이익이나 손실을 주는 행위를 진작부터 도박법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한국 게임들은 게임 내에서 우연적으로 또는 확률적으로 획득한 아이템(경품)을 실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지 않는다. 현금으로 게임 내 아이템과 가상화폐를 구입할 수만 있을 뿐 이걸 다시 수익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막혀 있는 셈이다. 그러나 '게임 화폐 거래소' 또는 '캐시 환전소' 등 제3자가 끼어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국 방패가 있으면 창이 있고, 법이 있으면 그것을 빠져나갈 구멍은 또 어떻게든 나온다는 이야기다.

독일 - 아동 보호정책으로 바라보기
독일은 확률형 아이템 관리를 아동 보호 정책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는 나라다. 독일은 범유럽 게임 정보 PEGI(Pan European Game Information) 와 함께 독일 만의 USK (Unterhaltungssoftware Selbstkontrolle) 시스템을 통해 게임물 이용 등급을 표기하고 있는데, USK는 확률형 아이템이 포함된 게임은 무조건 '12세 이상 이용가' 또는 그 이상을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12세 미만 아동의 확률형 아이템 사용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그 이상 청소년과 성인의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는 없다.
USK의 이러한 규정은 2023년부터 소격 적용되었으며, 이에 2023년 전에 출시된 게임들도 기존 '전 연령대'에서 확률형 아이템 포함을 이유로 '12세 이상 이용가'로 일괄 상향되었다. 참고로 구글 플레이와 앱스토어에서 '확률형 아이템 포함'이 명시되어 있는 게임들 모두에 자동으로 USK 12세 이상 이용가를 받게 되고, 이후 게임사 또는 게이머들이 후속 수정을 신청해야 심사 후 풀어주는 방식을 취한다. 나아가 이때 "인앱 구매 + 확률형 아이템"이라고 문구도 표기가 되어야 한다. (☞관련 규정 링크)
다만 이 과정에서 범유럽 PEGI와 독일의 USK가 서로 다른 게임물 이용 등급을 매기는 미묘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PEGI는 귀엽고 폭력적이지 않은 게임이라고 하여 '전 연령 이용가'라고 표기하지만 독일 USK는 확률형 아이템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12세 이용가'라고 딱 잡아 표시를 해놓는 식이다. 독일 공장에서 생산된 게임 DVD가 다른 나라에서 포장지만 바뀌어 판매되는 경우, 포장지는 '전연령 이용가'인데 안에 들어있는 CD에는 '12세 이용가'라고 표시되어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영국 – 업계 자율규제 정책 중. 성과는? 글쎄…
영국은 몇 년 간에 걸친 논의 끝에 결국 2024년 7월 부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산업계의 자율규제 방침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관련 규정 링크) 이에 영국은 UKIE 게임 자율규제 위원회의 모니터링 하에 (1) 게임사들은 확률형 아이템을 포함하는 게임인지 여부를 광고물에 표기해야 하고, (2)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고지해야 한다. 나아가 (3) 어린 아동들이 무분별하게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시스템이나 후속 방안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한다. 그 외 여러 다른 규정들이 있다. 문구만 본다면 한국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업계 자율규제'라는 점이 다르다. 참고로 한국도 2024년 3월 전까지만 해도 업계 자율규제로 확률형 아이템을 관리해왔으니 어찌 보면 우리의 과거와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자율규제이기 때문에 게임사들의 선한 양심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 거기에 '어떤 방식으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이 맹점으로 지적된다. (한국도 자율규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에 반발한 게이머들의 시위로 인해 2024년 3월 부로 강제적인 규제 방침으로 선회했다.)
예를 들어, 광고물에 '확률형 아이템 있음'을 표기하는 규정의 경우 만약에 해당 문구가 1분짜리 광고에서 1초도 안 되어 스윽 지나간다면 이걸 두고 '규정을 지켰다'라고 할 수 있을까?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이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자그마한 아이콘을 눌러야만 나오는 방식이고 검색도 안 된다면 그건 자율규제를 잘 지킨 거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게임 기업이 있다면 어떻게 이를 처벌할 것인가? 한 연구에 의하면 2024년 하반기 기준, 영국 앱스토어에서 판매되는 Top 100 게임 중 확률형 아이템 여부를 표시한 게임은 23.5%에 불과했고 확률을 고지한 게임은 8.6%에 불과했다. 어린 아동들의 구매를 사전에 방지하거나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게임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관련 연구 링크)
핀란드 – 유럽 모바일게임 강국의 딜레마
핀란드는 유럽 내에서 모바일 게임 강국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클래시 오브 클랜(Clash of Clan)>, <브롤 스타즈 (Brawl Stars)>, <앵그리 버드 (Angry Birds)> 등 다수의 유명 게임 타이틀을 보유한 나라다. 핀란드 게임들은 부분유료화를 주요 수익 모델로 사용하고 있으며, 여기엔 당연히 확률형 아이템들도 다수 포함된다. 물론 중국, 미국, 한국 게임들에 비해선 확률형 아이템 종류와 시스템이 덜(?) 복잡하기에 논란이 비교적 적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핀란드에서 게임은 첨단 IT 서비스 산업의 일환으로 인식되고 있고, 특히 노키아(Nokia)가 몰락한 직후 거리에 내몰린 유수의 개발 인력들이 게임 산업 진출에 성공한 역사적 선례가 있다. 이에 게임 산업에 대한 여론이 남녀노소를 떠나 제법 긍정적인 편이다. (핀란드 국민의 게임이용률은 89%에 달한다. 보드게임을 포함한 수치이긴 하나 상당히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관련 연구) 그래서 (굳이) 정부가 나서서 게임 수익 모델을, 확률형 아이템 판매를 관리할 필요까진 없다고 보는 여론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핀란드에도 당연히 도박 규제법이 있고, 이를 근거로 확률형 아이템을 서비스하는 게임사에 대한 수사가 시도된 적이 있긴 하다. 2018년, 핀란드 경찰당국은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Counter Strike: Global Offensive)>가 도박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기소를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철회되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해당 게임이 미국산 온라인 게임이라 도박 행위가 '핀란드 내'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고 그렇기에 핀란드 국민 또는 거주자에게 직접적인 재산적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판가름할 근거가 애매하다는 점이 핵심 쟁점이었다고 한다. 결국 핀란드는 자국 법으로 외국산 게임사들을 기소 및 처벌하기 어렵다는 선례를 남긴 셈이 되었다. 핀란드 정부는 이후 확률형 아이템과 도박의 상관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명시하는 법을 제정코자 논의를 시작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2022년 총선으로 정부가 바뀌면서 이는 흐지부지된 상태다. (이 부분은 네덜란드와 사정이 비슷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정도의 기소 시도와 법적 논의 정도로도 핀란드 현지 게임업계에 무언을 압박을 주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여론의 동요가 일기 시작하고 비슷한 시기 벨기에가 확률형 아이템 규제법을 마련하자, 핀란드 게임사들은 말 그대로 화들짝 놀라 확률형 아이템 보다는 확정형 아이템 쪽으로 선회를 시작한다. 이후 2022년, 핀란드 국민 게임사 슈퍼셀(Supercell)이 <브롤 스타즈(Brawl Stars)> 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 판매를 모두 내리는 과감한 수익모델 개편을 내놓기도 했다. (☞관련 외신 보도) 그러나 그 대담한 시도는 결국 수익 악화로 인해 철회되었다. 확률형 아이템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해서 내려보니 수익이 곤두박질치고, 나아가 '게임하는 재미가 없어졌다'라며 <브롤 스타즈> 노잼 논란이 쏟아진 것이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결국 슈퍼셀은 수익모델 개편 1년 반 만에 확률형 아이템을 되살렸다. (☞관련 슈퍼셀 관계자 발표 영상) 확률형 아이템 문제가 단순히 선/악으로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유럽연합(EU) –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중
최근 유럽연합은 각 회원국들이 자체적으로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쟁점화하자 '우리도 그럼…?'이라며 유럽연합 차원의 상위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인구 1억이 안 되는 작은 유럽나라들이 아무리 규제를 각자 시도한들, 미국에 거점을 둔 어마어마한 자본력의 대형 게임사들과 맞붙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유럽연합 차원의 공동 대응' 요구에 힘을 실어주는 양상이다.
다만 아직 유럽연합은 확률형 아이템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으로, 명확한 지침이나 규제 방안을 내놓고 있지는 않다. 아무래도 전쟁, 경제 등 여러 현안 중에서 게임이 후순위로 밀린 감도 없잖아 있다. 물론 물밑에서 여러 가지 논의는 진행되고 있고 이 때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소비자 권리 보호(네덜란드, 벨기에)' 차원에서 볼지, '도박' 규제의 영역에서 볼지(프랑스, 오스트리아), '어린이/청소년 보호' 관점에서 바라볼지(독일), 나아가 이를 규제한다면 자율규제(영국, 핀란드)로 나갈지 정부 차원에서의 관리를 할 것인지(한국) 여러 방향으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EU Digital Fairness Act (유럽연합 디지털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확률형 아이템과 가상화폐에 대한 부분을 통합적으로 관리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아직 검토 및 논의 중인 단계에 그치고 있어 이게 언제 법제화가 되고 시행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확률형 아이템은 비단 한국 만의 문제는 아니다. 부분유료화 모델의 게임들이 대세로 떠 오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세계 방방곳곳의 나라들이 비슷한 문제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확실하고도 명확한 파랑새와도 같은 해결책을 내놓은 나라는 아직까진 없어 보인다. (이번 글에서 미처 다루진 못했지만 미국, 호주 같은 나라들도 고민을 가지고 있는 건 매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세계 각국이 서로 협력하여 공동의 해결책을 함께 찾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확한 정보와 팩트 체크가 언제나 필요하다. '외국은 이렇다더라', '그래서 우린 안돼' 등의 루머와 소문에 휘둘리지 말자. 적어도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되어서 말이다.
참고 자료
• "Loot Box State of Play 2024: Another trip around the world of regulation" by Leon Y. Xiao. https://www.gamesindustry.biz/loot-box-state-of-play-2024-another-trip-around-the-world-of-regulation
• "Loot Box state of Play 2023: Law, Regulation, Policy, and Enforcement Around the World" by Leon Y. Xiao. https://law.stanford.edu/publications/no-110-loot-box-state-of-play-2023-law-regulation-policy-and-enforcement-around-th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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