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구석기 시대 돌도끼와 동굴 몇 개 암기하다 보면 역사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곤 했다. 그러다보니 정작 우리 시대의 역사, 생활사, 풍속사는 살피지 않았다. 사실 읽을만한 책도 드물었고.
역사 공부는 고대사가 아니라 당대사여야 한다는 믿음으로 산다. 예나 지금이나.
'옛 우물에서 맑고 새로운 물을 긷는다.(舊井新水)'라는 신념을 가진 저자 유승훈은 "나는 거대한 역사를 꿰뚫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산업화 사회를 치밀하게 분석하는 사회학자도 아니다. 내가 단지 관심을 두는 것은 왕십리 똥파리요, 강남 복부인이요, 손 없는 날이요, 자동차 고사요, 소개팅이요, 마담뚜 등등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다."라며 겸손을 과장한다.
베이비부머 세대로 태어나 살아온 나로서는 <서울 시대>가 보여주는 서울의 당대사, 변천사가 곧 우리 세대의 시대사다. 그래서 전혀 낯설지 않다.
고향 해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로 유학을 가 생활하면서 도회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서울 정도는 아니지만 거의 달동네였다. 이 책의 1장처럼 그때는 푸세식이었고 똥파리가 날라다녔다. "연탄을 갈아본 사람만은 안다."라고 소제목을 달았는데 그렇다. 자다깨서 연탄불을 갈아야 했고 연탄가스 중독을 걱정해야 했다. 광주에도 학생용 시내버스 승차권이 있었다. 교통은 지옥이었고 만원이었다. 정말 고생했을 버스안내양이 있었다. 위험천만했던, 지금은 위법인 개문발차의 시대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에 정착하여 몇 년 간 남의집 살이를 할 때도 아파트였고, 내 집의 시작도 아파트였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비탈진 음지>에서는 농촌을 떠나 서울에 온 복천 영감이 아파트를 보고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초가집이나 기와집 등 단층 주택만을 봤던 영감에게 6층 아파트가 집이라는 사실은 놀라웠다. 게다가 사람들이 층층이 포개져 살림을 살고 있었다. 사람 머리 위에서 불을 때서 밥을 먹고, 똥을 싸고, 그 사람 머리 위에서 또 다른 사람이 자식을 낳고 키웠다. 사람 위에 사람이 포개지고, 살림 위에 살림하는 적층 주택은 시골 영감에겐 정말 놀라운 건물이었다."
그랬을 것이다. 내가 다니던 면소재 초등학교는 1층이었다. 학력경시대회를 치르느라 군단위 초등학교에 갔더니 2층이었다. 학교가 2층이라는 것이 놀라워 한동안 친구들에게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남아있으니.
저자의 덕분에 서울 시대사가 복원됐다. 생각이 있다면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서울시교육청은 이 책을 버려둘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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