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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사람들, 개인의 선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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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사람들, 개인의 선택일까?

[서리풀연구通] 마약 중독,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로 봐야

한국 사회의 마약 확산 속도가 가파르다. 지난해 마약 성분이 함유된 불법 의약품의 국내 반입이 4년 만에 약 43배 급증했으며 지난해 적발된 마약류 사범의 수도 2만 명을 초과했다. 마약류를 처방 받은 환자 수와 마약류 처방건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23년도 기준 마약류를 처방받은 환자 수는 1900만 명을 초과하였으며(☞관련자료 바로가기), 의료용 오피오이드(아편류의 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사망 또한 증가하고 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마약이란 무엇일까? 세계보건기구에서는 마약을 '①약물사용의 욕구가 강제에 이를 정도로 강하고(의존성), ②사용약물의 양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내성), ③사용 중지 시, 온몸에 견디기 어려운 증상이 나타나며(금단증상), ④개인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사회에도 해를 끼치는 의약품'이라 정의한다(☞관련자료 : 바로가기1, 바로가기2). 구체적으로 어떤 의약품이 마약에 해당하는지는 국가별, 시기별로 차이가 있으나, 세계보건기구의 정의를 참고한다면 '개인을 중독에 빠지게 하며, 스스로를 파괴하는 의약품'이라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인간에게 가장 강렬한 본능은 '자기 보존의 본능'이라 주장했다. 그렇다면 자기 보존의 본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자기파괴적 행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스스로를 파멸로 치닫게 하는 결정은 오롯이 개인의 선택일까?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은 오피오이드, 헤로인, 펜타닐의 시작 경로에 개인적·사회적 요인과 약품 시장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오피오이드, 헤로인, 펜타닐 시작 경로의 특성화: 질적 연구>).

미국에서 마약은 중대한 사회 문제이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였으나 미국 사회에서 마약은 급속히 확산했고, 2022년에는 펜타닐의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이 미국의 18~49세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했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마약 과다복용과 관련된 위기는 세 번의 물결로 정의된다. 첫 번째 물결은 1990년대 후반 오피오이드의 처방 증가로 시작된다. 두 번째 물결은 2010년경 헤로인 사용 증가로 정의되며, 세 번째 물결은 2013년부터 불법적으로 제조된 비약학적 펜타닐의 사용 증가로 정의된다.

세 물결에 해당하는 오피오이드와 헤로인, 펜타닐 시작 경로를 이해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최근 30일 이내 헤로인 또는 펜타닐 사용 경험 있는 6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질적연구를 수행하였다.

첫 번째 물결: 오피오이드 처방 증가와 불법 사용의 시작

연구 참여자들은 대부분 의학적 처방을 통해 오피오이드 사용을 시작했다고 응답했는데, 대부분은 매달 처방받는 오피오이드가 지니는 위험성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사용을 시작했다. 참여자들은 또한 약물 모니터링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인해 처방 방식이 바뀌었고, 이는 사용 경로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특히 고용량 오피오이드를 장기간 처방받던 이들은 갑작스러운 용량 감소 조치로 인해 금단 증상을 겪으며 불법 경로를 통해 마약을 구하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의학적 처방 없이 오피오이드 사용을 시작한 참여자들은 호기심과 또래의 영향을 주요 동기로 꼽았고, 일부 참여자에게 오피오이드는 가족 내에서 공유되는 통증 관리 수단이었다.

대부분의 참여자는 처음에는 간헐적으로 오피오이드를 사용하다가, 의료진, 친구, 또는 연인을 통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점차 일상적인 사용으로 전환되었다고 설명했으며, 신체적, 정서적 트라우마는 참여자들의 오피오이드 사용의 빈도와 패턴에 영향을 미쳤다.

두 번째 물결: 헤로인 사용의 시작

대부분의 참여자는 오피오이드 처방 중단으로 인해 불법 마약 복용을 시작했다. 참여자들은 의료진이 신체 의존이 의심되거나 불법 마약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의사-환자 관계를 종료하면서도, 치료 기관이나 약물 중독 치료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오피오이드의 가격이 너무 비싼 경우에도 헤로인으로 전환을 고려하게 되었다.

또래 친구들은 오피오이드에서 헤로인으로 넘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구입처를 알려주거나 첫 사용을 도와주기도 했다. 가족 내 약물 사용도 헤로인으로의 전환에 영향을 주었는데, 한 참여자는 처방받은 오피오이드가 떨어졌을 때 사촌이 헤로인을 주사해줬다고 답변했다.

또한 오피오이드와 마찬가지로, 많은 참여자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수단으로 헤로인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세 번째 물결: 펜타닐 사용의 시작

의도적으로 헤로인으로 전환했던 두 번째 물결과 달리,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펜타닐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처음 펜타닐을 사용했다. 지역 내 펜타닐의 공급이 빠르게 변화하고 펜타닐이 혼합된 헤로인이 증가하면서 참여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펜타닐이 포함된 약물을 구매하고 있었다. 이들은 펜타닐의 강력한 효능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고 이로 인해 과다복용이 증가했다.

세 번째 물결과 그 이후: 펜타닐의 미래

대다수 참여자는 헤로인 사용 이후 펜타닐을 사용했으나, 헤로인 사용 경험 없이 펜타닐을 바로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오피오이드에서 펜타닐로의 전환에는 펜타닐의 저렴한 가격이 영향을 미쳤다.

본 연구는 마약 사용자의 경험과 그 배경에 있는 경제적·사회적 요인을 분석함으로써, 마약 중독이 의료 시스템, 마약 시장, 사회적 네트워크, 그리고 경제적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임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마약 중독이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나 도덕적 결함으로부터 발생한 개인적 차원의 결과가 아닌 사회 구조적 결과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마약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한국 사회는 여전히 마약 사용을 도덕성이나 인내심의 부족에서 비롯한 문제로 인식하며, 마약 중독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도 치료나 회복, 재활보다 처벌하는 정책이 우세하다. 개인적 차원의 접근을 통해 마약 중독의 근본적 원인에 접근할 수 있을까?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야말로 마약으로부터 희생당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서지 정보

Perdue, T., Carlson, R., Daniulaityte, R., Silverstein, S. M., Bluthenthal, R. N., Valdez, A., & Cepeda, A. (2024). Characterizing prescription opioid, heroin, and fentanyl initiation trajectories: A qualitative study. Social science & medicine. 340, 116441. https://doi.org/10.1016/j.socscimed.2023.116441

▲관세청이 18일 인천 중구 운서동 인천공항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적발된 마약류 성분이 함유된 불법 의약품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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