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간첩 99명 체포' 가짜뉴스. 시작은 극우의 열광이었으나 끝은 치욕이었다. 이 가짜뉴스가 외려 윤석열과 그 추종자는 물론이고 극우‧보수집단 전체의 질 낮은 수준과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일등 공신 노릇을 톡톡히 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마구 우기고 거짓이 드러나도, 가짜뉴스도, 계엄도, 내란도 모두 민주당 탓, 기승전이(이재명)로 돌리는 민낯 말이다. 사과도, 반성도, 수치심도 없다. '좀비'인 탓이다. 남은 과제는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라는 말이 있다. 미꾸라지 두 마리, 세 마리가 되면 더 빨리 더 심하게 온 웅덩이를 흐린다. 거짓말, 가짜뉴스, 음모론을 만들고 퍼트리는 이들이 바로 그 미꾸라지들이고 우물은 대한민국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가짜뉴스, 극우 집단 광기에 빠지도록 만드는 마약
거짓말, 가짜뉴스, 음모론의 세계에서 우뚝 서고 싶은 이들이 개인, 소속 정당, 소속 진영, 소속 기관만의 이익을 위해 깨어있지 않은 시민들을 속이고 세뇌하려 퍼트리는 거짓말, 가짜뉴스가 사리분별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뇌를 오염시켜 극우 집단 광기에 빠지도록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는 거짓말과 가짜뉴스, 음모론이 서로 얽히고설킨 뫼비우스띠 위를 걷는 좀비다. 사실이 아닌 증거가 차고 넘쳐도 개미지옥에 빠진 음모론 신봉자들은 진실과 사실의 단단한 동아줄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썩은 가짜 동아줄이 자신과 사회의 안녕과 안전을 지킨다고 믿는다.
이들의 증상은 날이 갈수록 특효약도 듣지 않을 만큼 심해지고 있다. 그 결과 망상에 빠진 이들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이 곧 중국의 속국이 된다거나 좌익·빨갱이의 나라가 된다거나, 종교의 자유가 사라진다고 믿고 분신하는 일도 생겨났다. 우리 사회는 간첩들로 득실거리고 5‧18유공자들이 조직적으로 부정선거 선봉에 서고 있다고 믿으며 대중 앞에서 이를 설파하고 있다.
문제는 망상에 빠진 이들이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교사, 교수, 법조인, 유튜버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갈수록 그 수가 눈에 많이 띄고 있다. 그동안 조용히 있던 사람들이 최근에는 앞다퉈 아스팔트 위와 사회관계망, 그리고 댓글에서 소리를 높이고 있다.
알고리즘에 포획돼 망상에 빠진 정치인, 종교인, 교수, 법조인, 유튜버
알고리즘에 포획돼 파시즘적 증상을 보이는 이들은 진보언론은 물론이고 공영·민영 공중파 방송과 조중동과 같은 보수언론을 포함한 레거시 미디어에 불신을 넘어 극도의 혐오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을 지하 세계에서 지상으로 끌어올린 인물은 윤석열이다. 극우들에게 힘을 실어줘 과격한 폭력을 죄책감 없이 행사토록 부추긴 이가 바로 그다.
세계대전이나 공상과학(SF)영화, <반지의 제왕>과 같은 판타지 영화를 보면 대회전의 화려한 전투 장면이 눈길을 끈다. 한국에서도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고 그것이 바로 윤석열의 비상계엄이다. 많은 국민이 가슴 졸이며 본 첫 대회전이 12월 3일 밤에 있었다면 두 번째 대회전은 긴 호흡을 갖고 인내심을 발휘하며 보아야 할 부정선거 음모론과 중국 간첩 이야기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 힘든 전투라면 중국 간첩 체포 이야기는 너무나도 일찍 싱겁게 결말이 난 이야기다. 중국 간첩 이야기는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를 뒤집었다. 다시 말해 '시작은 창대하나 끝이 미약했다.' 이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주연보다 조연이 더 주목받았을 것이다.

허무 개그-왜 중국 간첩이 99명이나 모여 있다 체포되지?
허무 개그 같은, 코웃음만 나오는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동안 가짜뉴스를 많이 보도해 온 극우 매체 <스카이데일리>는 1월 16일자에서 '[단독] 선거연수원 체포 중국인 99명 주일 미군기지 압송됐다'란 제목으로 중국 간첩 체포를 보도했다. 지난해 12월 3일, 바로 그 계엄의 날에 당시 계엄군이 미군과 공동 작전을 펼쳐 선관위 선거연수원에서 99명의 중국인 간첩을 체포했다는 것이다.
이 가짜뉴스가 탄생하기까지 극우세력들은 상당한 뜸을 들였다. 계엄 직후 누군가가 디시인사이드에 완전 상상에 의한 소설이라며 90명의 중국인이 계엄 당시 선관위 연수원에서 연수받고 있었다는 글을 올린다. 이 글은 다시 성창경 TV 등 여러 극우 유튜브에서 조금씩 조미료와 양념을 쳐 제법 그럴듯한 음식으로 만들어진다. 마침내 이 인터넷 사이트와 유튜브에서 관련 내용을 보고들은 한 청년이 <스카이데일리>의 기자와 만나 '짜고 치는 고스톱' 식으로 가짜뉴스를 완성한다. 둘 다 모두 가짜임을 알면서.
필자는 우리나라 주요 일간지 환경 보도 오보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을 쓴 바 있고 최근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2020년)과 <인포데믹 또는 정보감염병>(2022년)이란 저서를 낸 적이 있어 이 뉴스가 가짜임을 단박에 알아봤다. 읽고 난 뒤 너무나 허술한 내용과 근거에 한 번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는 기사라는 사실을 아는 데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스카이데일리>에는 발행‧편집인 조정진뿐만 아니라 기자 같은 기자가 단 한 명도 없는지 이후 계속해서 중국 간첩 체포 관련 가짜뉴스를 10건 가까이 쏟아냈다. '선거연수원 체포 中 간첩단 국내 여론 조작 관여'(1월 18일), '中 부정선거 간첩단 일부 美 본토 압송'(1월 20일), '한국 선거 조작 中 간첩단 분리 수용'(1월 22일) 등 하루 걸러서 한 건씩 보도했다. 보도가 사실인 것처럼 보이도록 할 때 잘 쓰는 전형적인 쪼개기 가짜뉴스 보도 수법이다.
反中이면 가짜뉴스도 오케이, 확증편향에 빠진 극우
이런 물량 공세 탓인지, 아니면 유유상종이라고 반중 혐오 정서로 가득한 이들의 확증편향 탓인지 '중국 간첩 체포' 보도 진원지 중 하나로 알려진 디시인사이드의 '미국정치갤러리(미정갤)'를 드나드는 이들 가운데 70%는 이 가짜뉴스를 진짜뉴스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보도에 비판 기사를 쓰기 위해 <미디어오늘> 기자가 '미정갤'에서 지난달 23~24일 이루어진 투표에 참여한 결과였다.
<스카이데일리> 보도 직후 우리 선거관리위원회, 수사 당국, 심지어는 주한미군이 이례적으로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하는 공식 보도자료까지 냈음에도, 그리고 이를 국내 대부분 언론사가 비중 있게 다루었음에도 <스카이데일리>는 아예 완전 무시하고 더욱 가짜뉴스 보도에 열을 올렸다.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이가 바로 조정진이다. 그는 최근 '부정선거를 음모론이라고 주장하는 무리에게'라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카이' 발행인 "스카이가 특별한 게 아니라 다른 언론사가 이상해"
"스카이데일리가 특별한 게 아닙니다. 다른 언론사가 이상한 겁니다. 스카이데일리는 그냥 현재 일어나는 현상을 적확하게 취재해 보도할 뿐입니다. 가끔은 5·18 같이 지난 사건 중에 잘못 알려졌거나 왜곡된 내용이 발견되면, 그것도 파헤쳐 보도합니다. 물론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지만, 모든 취재는 어느 정도의 품은 팔아야 단독이든 특종이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빤히 눈에 보이는 숱한 부정선거 현상을 외면하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이라 왜곡 단정하는 언론의 씁쓸한 뒷모습이다. 그런데, 그동안 대부분의 언론이 '윤석열 대통령=내란 수괴'로 단정했는데 헌법재판소와 '진짜 내란당' 더불어민주당이 "12.3 계엄은 내란이 아니다"며 탄핵소추 사유에서 뺐다. 우리나라 언론들 불쌍해서 어쩌나."
칼럼의 극히 일부분이다. 이것만 봐도 그가 극우 사이비 언론인임을 잘 알 수 있다. 민주당이 내란 부분은 형사 재판에서 다루기 때문에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발동‧실행하면서 벌어진 국헌문란과 위헌 여부를 집중적으로 따지기 위해 뺀 것을 오랜 기자 생활을 한 사람이면 모를 리 없는데도 허위 사실을 일부러 적시한 것만 봐도 정상 언론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는 1988년 <부산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해 스포츠신문을 거친 뒤 주로 <세계일보> 편집‧문화‧국제‧통일부에서 언론 활동을 했다. 문화부장과 논설위원 등 간부로 있다 레거시 미디어를 떠나 한 <스카이데일리>란 '자그마한' 신문사에 의탁했다.
그와 함께 신문사 공동대표를 맡았던 남북하나재단 조민호 이사장은 최근 직원 성범죄 사건으로 정부에 의해 해임됐다. <스카이데일리>는 2011년 서초‧강남‧용산구 등 이른바 부자 동네의 부동산을 핵심으로 한 경제 뉴스를 다루는 동네신문에서 출발해 주간지를 거쳐 2019년부터 일간지로 체급을 올린 신생 언론사다. 2022년~23년 사이비 논란을 빚고 있는 신흥종교 신천지 옹호 기사를 여러 차례 써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최근 윤석열 대선 기간 중과 그 후 신천지 신도를 대거 국민의힘 당원으로 가입시켰다는 유착 의혹 보도가 잇따르고 있어 <스카이데일리>와 신천지, 윤석열의 관계를 언론계와 정치권에서는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