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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초·중·고에는 '포고령 1호'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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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의 초·중·고에는 '포고령 1호'가 필요 없다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계엄령이 학교에 던진 질문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말 그대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당황스러운 와중에 밤 11시경 '포고령 1호'가 나왔다. 그걸 보는 순간 사태가 분명해졌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 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 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그건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는 헌법과 기본권을 정지시키겠다는 선포였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포고령을 보면서 나는 다른 것이 연상되었다. 바로 학교와 '학생인권조례 폐지'였다. 윤석열 정권 들어 틈만 나면 '반국가세력'을 언급하는 대통령에게서, 항의 시위를 하거나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입틀막'하고 끌어내는 경호처의 모습에서 '계엄스러운' 냄새를 맡았던 사람이야 많을 것이다. 그런데 '입틀막'만큼 눈에 띄는 장면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윤석열 대통령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공공연히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겠다고 한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그 이상으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권 보장이 정부의 존재 목적이자 의무라는 것은 공리(公理)다. 그래서 반인권적인 정책을 펴는 정치인도 웬만하면 노골적으로 인권을 부정하거나 인권법을 직접 폐지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나서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를 아예 폐지하려고 추진한 것은 이미 충분히 '극우적'인 행태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며 인권활동가들이 외친 "인권은 폐지할 수 없다"라는 구호에도 그런 문제의식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끝내 학생의 인권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의 인권을 폐지·후퇴시키는 비상계엄을 시도했다. 윤석열 정권의 학생인권 후퇴 정책은 '학교에 미리 내려진 계엄령'이라고 할 법했다. 윤석열 정권이 고수하고 만들려 했던 학교의 모습이 비상계엄 포고령의 내용과도 닮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학교는 민주주의와 계엄 중 어디에 더 가까웠는가

사실 한국의 초·중·고 대부분에는 굳이 '포고령 1호'가 필요 없다. 이미 학칙에 의해, 관행과 관습에 의해 학생의 인권이 정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 보도로 조명되었듯이 상당수 학교가 여전히 학생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다.(경향신문, "'계엄사태 비판' 시국선언문 막은 학칙 "선거참여만 되고 정치관여 안 된다"고요?", 2024년 12월 16일)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한 포고령과 판박이다. '학생회는 학교 운영에 관여할 수 없다'라고 민주주의를 정면 부정하는 조문도 곧잘 발견된다.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말이 직접 없더라도, 학생들의 언론·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학칙은 훨씬 더 많다. 징계규정표를 살펴보면 반 이상의 학교가 '불온문서 게시·배포', '불법 집회 참여', '학교장 허가 없이 외부 행사 참가', '불량·불온한 단체 가입', '집단행동' 등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학교 안에서 유인물을 게시하거나 배포하려면 생활지도부의 사전 허가를 받으라는 학칙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집회, 시위, 파업은 금지'되며, '모든 언론과 출판은 생활지도부의 통제를 받는' 것이다.

보다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학교는 계엄에 가까운 환경이다. 획일적인 제복이나 두발규제가 군사주의적이라는 상징적인 측면만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들의 소지품을 특별한 절차 없이 검사하고 압수할 수 있다. '교사 지시 불이행'을 벌점 또는 징계 대상으로 삼는 학칙하에서 법과 규칙에 의하지 않고도 학생을 처벌할 수 있다. 몇몇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2010년대 이후로 이런 문제가 많이 개선되었기는 하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도 여전히 많고, 조례가 있어도 학생의 인권을 쉽게 정지시키고 제한할 수 있는 학칙과 관행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러한 조건들은 학생이 동등한 학교구성원으로 존중받지 못하게 하고, 학교 운영이나 정책에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열을 올린 '학생인권조례 폐지', '교원의 학생 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등은 이러한 학교의 계엄적 속성을 강화하려 한 것이다. 가령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사상의 자유',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명시했다는 것은 주요 공격 빌미였다.(도대체 민주주의에서 이게 왜 공격 대상이 되나 싶다) 교사의 교육활동을 면책시키겠다는 사고방식은 마치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이므로 문제 삼을 수 없다는 말과도 비슷하다.

또한 생활지도 고시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휴대폰을 비롯해 학생의 소지품을 교사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하거나 학칙에 금지물품으로 규정하면 '분리하여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요 내용은 교사가 학생을 교실 밖으로 '분리'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영장 없이' 학생의 소지품을 압수할 수 있고 교실 밖으로 강제로 격리시킬 수 있다는 법을 만든 셈이다. 그리고 이는 장애학생 등 수업 참여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교실에서 배제하는 등의 문제를 낳고 있다.

자의적 권력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한국 민주주의에는 큰 위기가 닥쳐왔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성찰하고 고쳐야 할지 논의가 오가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는 학교에도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동안 학교는 과연 민주적이었는가? 계엄령의 논리와 방식에 더 익숙해지게 만드는 장은 아니었는가? 민주적인 학교란, 민주주의 사회에 걸맞는 학교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윤석열 퇴진에 이어 사회대개혁 과제들도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학교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는 못한 것 같다. 윤석열 정권의 반민주적인 정책과 방침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는 교사가 필요하면 학생을 '제지'하고 '분리'할 수 있다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2023년 시행된 생활지도 고시에 있는 내용을 법률에 담으려는 것이다. 이런저런 엄격한 조건을 달겠다고 하지만, 교사의 판단에 따라서 '제지', '분리'를 할 수 있게 한다는 방식은 그대로다.

학교가 '계엄스럽다'고 비판받는 이유는 자의적인 권력에 의해 인권이 제한, 침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민주적으로 정해진 규칙이나 이의제기 및 감시가 가능한 절차 없이, 교사 개인의 판단으로 학생의 인권을 제한하는 강제적 조치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계엄령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화두가 된 이 시점에도 교육 정책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교사가 학생에 대해 여러 통제와 강제조치를 할 수 있게 권한을 부여하고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교사를 교실 안의 계엄사령관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수십 년 동안 익숙해진 학교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것이 윤석열 퇴진 이후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학교는 아닐 것이다. 비상계엄과 포고령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졌다면, 바로 그 감각으로 학생의 인권을 교문 안에서 정지시키고 있는 학교의 현실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인권을 존중하고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교육환경과 교육과정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학생과 교사의 어려움을 어떻게 지원하고 협력하는 교육을 만들어야 할지, 다시 한번 묻고 토론해야 할 때이다.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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