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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정국 '최악의 장면', 윤석열 석방은 법원의 '자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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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정국 '최악의 장면', 윤석열 석방은 법원의 '자해극'

[박세열 칼럼] 법치주의 협박범 윤석열에, 법원 스스로 날개를 달아준 꼴

헌법재판소 윤석열 탄핵 심판 과정에서 최악의 장면 중 하나는 조지호 경찰청장이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다. 조 청장은 혈액암으로 투병중이다. 3년 정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을 상대로 윤석열 측 변호인은 "수사를 받을 때 섬망 증세가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섬망은 뇌기능 악화로 인한 주의력 저하, 언어력 저하 등 인지 기능 전반의 장애, 정신병적 장애 등을 말한다.

조 청장은 12.3 비상계엄 당일에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국회에 들어가는 국회의원들 다 잡아 체포해, 불법이야"라는 지시를 들었다고 진술한 인물이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체포자 명단'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 명단은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들었다는 명단과 거의 같다.

투병 중에 양심 선언을 한 핵심 명령 수령자를 환각에 시달리는 '정신질환 환자'로 몰아가려 한 게 윤석열 일당의 전략이다. 아무리 사실관계를 다투는 법정이라지만 윤석열이라는 인간의 밑바닥을 엿본 느낌이 들어 섬뜩했다. 윤석열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상대의 인격이라든지, 사정따위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냉혈한이다.

본인이 최종 검수한 문건조차 부인하고, 자신의 명을 따른 부하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심지어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윤석열의 목표는 단 한가지다. 스스로 벌인 최악의 범죄가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의 정당한 통치 행위로 예외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 끝없는 소송에서 벗어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혼자 일상을 회복해 성군의 자리로 왕정복고하는 것을 꿈꾸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카프카의 소설 속 심판의 요제프K가 되어 출구 없는 법정을 헤매고 호수에 비친 달 그림자에 쫓기고 있다는 걸 믿는 실존주의적 망상에 빠져 있다.

사실 윤석열은 하나의 거대한 부조리의 표상 같은 인물로 우리에게 교훈점을 준다. 윤석열이란 법비의 잔기술에 세상의 법이 농락당하고 있음에도 손을 쓸 수 없는 현실은, 윤리적 당위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를 부조리한 현실의 시궁창으로 내동댕이친다. 그리하여 비로소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좌절해 가는 것이다.

브레히트의 희곡 <예외와 관습>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석유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여정에 오른 상인은 길잡이(중간자)와 쿨리(짐꾼)을 고용한다. 길이 바쁜데 상인은 길잡이가 쿨리를 관대하게 다루고 있는 게 불만이다. 길잡이는 쿨리를 부려야 할 관습을 잊고 쿨리와 친해진다. 혹독한 사막을 건너는 과정에서 상인은 길잡이와 쿨리가 공모해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두려워 쿨리를 가혹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이유로 길잡이를 해고한다. 당연하게도 상인과 쿨리는 사막 한 복판에서 길을 잃게 되는데, 상인은 오히려 쿨리에게 더욱 가혹하게 굴며 매질을 하고 그의 수통을 빼앗아버린다. 물이 떨어져가는 상황, 상인은 자신이 살기 위해 쿨리로부터 수통을 숨긴다. 하지만 쿨리는 심한 갈증을 느끼는 상인을 보면서, 길잡이가 자신을 위해 몰래 챙겨 준 여분의 수통 꺼내 상인에게 건네려 한다. 상인은 쿨리가 돌맹이를 들어 자신을 해치려 하는 줄 알고 권총 꺼내 쿨리를 죽인다.

이 극의 핵심은 재판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쿨리의 아내가 상인을 살인죄로 고소해 벌어지는 재판을 보면서 관객은 상인이 유죄라는 걸 확신한다. 쿨리가 건네려 한 게 돌맹이가 아니라 수통이라는 게 밝혀진 이 명백한 상황에서 재판은 엉뚱하게 진행된다. 판사가 상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관객은 혼란에 휩싸인다. 판사는 "물을 나누어 마실 때 손해를 보지 않게 조심하는 것이 오로지 이성적인 행위"라면서 "수통으로 상인을 때려죽일 의도였다"고 보는 게 관습적으로 타당하다고 판결한다. 쿨리는 노예여야 하고 노예는 공격적일 수밖에 없으며 인간성이 존재할리 없는 사람이다. 상인은 그런 관습에 충실했다는 게 무죄의 이유다. 그러자 브레히트는 코러스의 입을 빌려 극에 난입한다.

"저들이 만든 체제에서 인간성은 예외입니다. (...)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는데, 늑대가 마시는구나."

현대 사회 법치의 아이러니를 표현한 이 극은, 관객의 상식적 기대를 벗어난 흐름으로 교훈을 주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꼴은 하나의 거대한 교훈극이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세워놓은 법치가, 형법상 최악의 민주주의 파괴 범죄를 저지르고 법정에 서 있는 윤석열에게 관대하게 작용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이 체제는 윤석열과 같은 '법비'에게 휘둘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그 추종자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권력 유지에 필요한 가짜 서사를 만들어 불리한 진실을 죽여버렸다. 윤석열은 야당이 반국가 세력이고 그들이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선거를 교란시켜 북한과 중국 공산당에게 나라를 넘겨줄 것이라는 극우적 '관습'을 신봉하면서, 목마른 자에게 수통을 건네려는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민의의 전당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사람에게 마실 것을 건네니, 늑대가 그 물을 마시는 꼴이다.

국가의 기간인 헌법을 팽개치고 국회 침탈을 노려 내란의 죄를 범한 자에게, 법원이 발부한 체포 영장에 저항하고 사법 기관의 집행을 방해한 자에게, 지지자의 법원 난입 폭동을 선동하고 지금도 폭력 시위를 부추기고 있는 자에게, 법원은 관습을 인정하고 그를 석방했다. 사법 체계 질서 자체를 무시하고 짓밟고 조롱했음에도 법원은 공수처와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절차상 불비점을 집요하게 파고든 윤석열의 손을 들어줬고, 윤석열을 기소한 검찰의 정당성을 흔들어댈 명분을 극우 세력에게 던져주고 있다. 현직 대통령 최초의 '내란 현행범' 혐의라는 사안의 중대성과 특수성을 따질 판사의 '재량권'은 어디로 갔나? 그 재량권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법정의 '재심 걱정'에서만 작용하는 건가?

법원은 그를 석방함으로서 그에게 증거인멸의 기회와 함께 더 많은 거짓말을 꾸미고, 더 많은 지지자들을 선동해 법원을 협박할 용기를 줬다. 윤석열 석방, 내란 정국에서 최악의 장면 중 하나가 또 탄생했다.

우리는 상식을 조롱하는 법을 무시하는 힘있는 자에게 관대한 세상을 풍자한 100년 전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여전히 통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이 거대한 교훈극은 우리를 계몽으로 이끈다. 윤석열을 보면서, 법원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계몽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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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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