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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양극체제, '폭력의 폭력의 폭력'의 정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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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양극체제, '폭력의 폭력의 폭력'의 정치 구조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극우를 위한 자유민주주의는 없다

12.3 내란 사태는 괴물과 같은 윤석열 한 사람에게서 기인한 문제가 아니다. 12.3 내란 이후 국민의힘 행태에서 볼 수 있듯, 윤석열이라는 극우의 상징이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폭력을 휘두르게 방관한 것은 한국의 양극체제 구조이다. 작금의 상황 속에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내란이라는 범죄에도 오르는 국민의힘 지지율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내란과 한국 정당정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폭력의 폭력의 폭력'의 정치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배태한 한국의 정당체제는 단순한 양당체제가 아니다. 극심한 양극체제다. 단순한 분열이 아니다. 치명적 대립, 적대, 혐오가 각 정당 지지자들의 정서 밑바닥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어떠한 이성적 협의나 자정도 불가능하고, 오직 파당적인 이해에 따른 옹호와 합리화에 따른 소속 정당만의 세계관이 존재한다. 내란 수괴 윤석열의 경호처를 동원한 무력시위와 사법 절차 기만, 역사의 죄인 국민의힘의 연이은 윤석열 옹호와 궤변 선동, 극우 지지자의 법원 점거와 폭동은 '폭력의 폭력의 폭력'의 정치 구조 속에서 파국을 향해 내달리는 한국 민주주의의 서막을 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습니다. 수사권이 없는 기관에 영장이 발부되고, 또 영장 심사권이 없는 법원이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수사 기관이 거짓 공문서를 발부해서 국민들을 기만하는 이런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무효인 영장에 의해서 절차를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보고 정말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2025.1.15. 공수처 체포 직후 윤석열 담화 중)

윤석열은 자신의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연이어 수사기관의 권한 행사를 거부하고 기만해 왔다. 결국 체포에 이르자 그는 대한민국 법치주의가 무너졌다면서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며, 적반하장식 궤변으로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지지자를 향한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연이은 발언 속에서 한국 정치의 오래된 문제가 도드라진다. 한국의 정치세력들은 예외 없이 헌법기관을 하나의 정치적 객체로, 헌법기관의 절차에 따른 권능 행사를 하나의 정치적 행위로 전락시키며, 헌법기관에 대한 불신과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려왔다. 그 결과 입법, 사법, 행정 각 권력 기구에 대한 삼권분립과 견제의 제도적 원리와 권위가 희화화되고, 국가 정체가 허물어졌다.

▲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시민이 내란공범 국힘해체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강지헌 제공)

사법의 정치화, 내란의 희화화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응당한 사법부의 법적 권능 행사 앞에서도 궤변과 낭설로 절차 이행을 방해하고, 극우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사법 권한을 무력화하려는 양상을 보인다. 이 같은 준동은 또 다른 의미에서 사법의 정치화다. 그 결과 내란 범죄의 엄중함은 희화화되고, 가치가 상대화되면서 서울서부지법을 점거 파괴한 1.19 극우 폭동 사태로 이어졌다. 서울서부지법에 테러를 가한 폭도들이 민주화운동 운운하며 5.18과 국민 저항을 명분으로 외치는 황당한 장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국가 정체가 허물어지고 선진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걸러져야 할, 극단 정치세력에 '아니면 말고' 식의 음모론이 더해지면서 무정부에 가까운 정치문화가 자리 잡았다. 비참한 상황이지만, 우리는 삼권분립 등 가장 기초적 국가 설계 원리부터 회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행정이 입법이 사법이 제각각 권능에 따라, 제도 절차에 따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학계와 시민사회는 한국 정치가 협상과 타협 등의 민주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모든 정치적 갈등을 사법화하여 법적 분쟁으로 끌고 가는 것을 비판해 왔다. 사법기관이 정치적 중립을 잃고 정치화된 판단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견제해 왔다. 하나 오늘날 한국은 비정상적으로 모든 행위를 정치화한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윤석열 행정부의 폭주와 권위주의로의 퇴행, 양극으로 치우친 입법부의 대립은 역설적으로 두 헌법기관의 비정상적 행태 속에서 사법부의 역할에 큰 비중을 두도록 만들었다. 그럼에도 극단화된 정치가 내란 수사 과정에서의 사법 절차와 헌정 최후 보루로서 헌법재판소의 권위마저 실추시키며, 민심의 향방에 큰 혼란이 도래하고 있다.

양극체제와 갈 곳 잃은 민심

지난 20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도는 46.5%, 더불어민주당은 39.0%로 집계되어 정치권에 파란이 일었다. 12.3 내란을 일으키고 내란을 비호하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을 오차범위 넘어 앞섰기 때문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기존의 뻔뻔함에 득의양양한 행태를, 더불어민주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단순히 더불어민주당은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 구조적인 문제다. 각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마저 가치 상대화된 한국의 정치문화 속에 내란 범죄의 엄중함조차 희화화된 현상을 주시해야 한다. 그 심부에 심판받지 않는 정당정치 구조, 대안이 없는 양극체제가 있다.

지지율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정당정치의 왜곡이다. 정당정치 본령은 대의자로서 민심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민심의 향방을 선도하기도 한다. 인민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열린 귀로 받아들이고, 시대정신으로서의 개혁에 있어서는 국민보다 한 발짝 더 앞서 나가며 민심을 선도하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양극체제에 있는 양당 모두 반대다. 평시에는 국가의 지속가능성과 무관한 포퓰리즘 경향을 띠지만, 위기 시에는 불의하더라도 당리당략에 따라 민심을 좌우지하려 한다.

한국의 제도 정당이 이렇게 안하무인할 수 있는 것은 당장 다음 선거에서는 패배할 수 있더라도, 공고한 양당체제 속에 버티기로 일관하면, 양대 정당으로서 지위는 절대 상실하지는 않는 불사의 정당 체제를 영위하기 때문이다. 정당의 심판 그리고 자정을 막는 공고화된 양당제, 극단 세력일수록 당 수뇌부를 점하는 양극체제는 죽지 않는 악성 종양이 지배하는 신체와 마찬가지다. 불의가 합리화되고 일상화되는 것이다. 그 세태 속에서 민심은 왜곡되고, 향방을 잃는다.

12.3 내란 직후부터 지금까지 지지율 변화 추이를 보라. 그리고 국민의힘의 일련의 행태를 덧대어 보라. 국민의힘이 자성보다 끊임없이 내란을 비호하며, 하나의 해석된 세계관을 제시하고, 극우세력을 결집할 때마다, 사법 정의가 지연되고, 민주당의 정치적인 선택이 늘어날 때마다 지지율은 출렁였다.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은 역사의 죄인 국민의힘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다. 대안세력 없는 양극체제 속에서 갈 곳 잃은 혼란한 민심의 방증이다.

그러나 여론조사에 감춰진 민심은 더욱 엄혹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도화된 다당제 속 대안정당이 있고, 심판과 자정작용이 이뤄지는 선진 민주주의였다면, 탄핵 반대와 내란 옹호만으로도 국민의힘 소멸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민심의 바로미터는 무엇이 정의로운 선택인가, 무엇이 전체 인민을 위한 선택인가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내란 앞 양비론 위험하다

최장집 선생은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평가하며, '정치 없는 민주주의' 즉 교과서적 의미의 정치가 부재함을 꼬집는다.(☞ 관련 기사 : <중앙일보> 2025년 1월 18일 자 "정치 없는 민주주의 위험천만…유사내전 쉽게 못 벗어날 듯") 하지만 모든 행위가 가치 상대화되는 현 시국에서 절제와 관용, 타협과 경합의 가치를 중시하는 교과서적 정치만 강조하면, 현 사안의 본질을 가리거나 부당한 양비양시론으로 빠질 수 있다. 국민의힘이 12.3 내란 사태 후 자당 대통령의 쿠데타에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 '내란 원인은 민주당에 있다' '민주당도 잘한 것 없지 않느냐' 같은 물타기에만 열중하는 맥락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물론 민주당 또한 잘한 것은 없다. 민주당도 국민의힘과 데칼코마니로서 양극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국가 정체 자체를 허무는 내란 범죄 앞에서 한국 사회에 당장 필요한 것은 명명백백 드러난 범죄에 대한 일벌백계다. 진보 보수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의 공동 가치 규범으로서의 헌정질서 회복이다. 군사쿠데타와 폭동은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는 인식을 모든 정치행위자에게 각인해야만 한다. 그 후 선진 민주주의 필요충분조건인 교과서적 정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제도 개혁에 나설 수 있다. 최장집 선생이 말한 교과서적 민주주의는 정치행위자의 태도나 절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승자독식 패자전몰, 극한 대립이 제도화된 양극체제 구조 속에서 행위 유인이 제한되어있는 한, 정치행위자의 바른 선택을 요구하는 것은 실리가 없다.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 제도의 한계이며, 정치제도 개혁의 문제다.

윤석열은 결국 사법 판결로 인해 공공연히 저지른 12.3 내란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윤석열 이후를 생각할 때, 단순한 정권교체로 멈추면 안 된다. 두 번째 탄핵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우리는 얼마나 나아왔는가.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윤석열을 마주하게 되었다. 양당은 언제나 정치적인 노림수를 깔고 개헌을 이야기해 왔지만,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자세로 민주적인 개헌을 논의해 나가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위해 결선투표제, 분권형 대통령제, 대통령 인사권 제한, 4년 중임제 등을 논해야 할 것이고, 제도화된 양극체제를 해소하기 위해 비례성 높은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개혁 등으로 연립정부 구성이 원활한 다당제 환경을 향해가야 한다.

극우를 위한 자유민주주의는 없다

"국민 여러분께서 그동안, 특히 우리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정말 재인식하게 되고, 여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시는 것을 보고, 저는 지금은 법이 무너지고 칠흑같이 어두운 시절이지만 이 나라의 미래는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2025.1.15. 공수처 체포 직후 윤석열 담화 중)

윤석열과 폭도로 돌변한 극우 지지자들이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극우를 위한 자유민주주의는 없다는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상의 결합이다. 자유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은 부당한 국가폭력에 대한 '개인의 보호'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은 인민주권이다. '다수에 의한 지배' 즉 인민주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서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을 창출하고 정치적 반대 세력의 생존을 보장한다. 개인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와 인민의 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는 그 정신들 사이의 긴장으로 부조화의 정치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긴장을 완화하고, 다수에 의해 선출된 통치자라고 하더라도 독재와 같은 권위주의로의 이행을 견제하기 위해 법치주의가 제 역할을 한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선언, 즉 헌정질서 아래에서 권위주의에 대한 길항으로 법치주의가 작용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의 상호 견제를 제도화하여, '삐걱'거리는 정치체제로 설계해 두었다. 입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행정부 수장이 입법부를 침탈하고, 사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절차를 불법이라 외치며 사법부를 기만할 권리의 근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개인에 대한 부당한 국가폭력은 안 된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윤석열로 대표되는 극우주의자들이 신봉하며 주창하는 자유민주주의에는 피땀으로 응축된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사상적 배경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냉전 시기 체제 대립 산실로서 적대와 혐오, 반공 이데올로기가 버무려진 극우세력의 상징 체계로, '폭력의 폭력의 폭력'으로 점철된 정치구호로 전락했다. 윤석열과 지지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짓밟고, 헌정을 유린하는, 민주공화국을 파괴하는 내란 수괴와 폭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12.3 내란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87체제 이전 권위주의 시대로 단번에 후퇴했다. 두 번 이상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민주주의 공고화의 척도로 본다. 그러나 12.3 내란은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나라일지라도 민주주의는 언제든 위태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닫게 한다. 보통 제도적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나라에서는 민주주의 개혁과 민주주의 급진화를 기획한다, 전자는 선진적인 선거제도가 유인하는 유능하고 온건한 다당제에 기반한 합의제 민주주의이며, 후자는 민중의 직접 정치와 광장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우리 민주주의는 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박근혜에서 무너지고 전화위복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서 윤석열에서 몰락했다. 군사쿠데타가 남발되는 권위주의 정치 망령이 어른거린다. 혼란 속에서 모두가 사회대개혁의 명분과 깃발을 내세우지만, 절박한 것을 되새긴다.

민주주의만큼 지록위마하기 쉬운 정치체제도 없다. 역설적이지만 민주주의만이 그 모든 왜곡을 감내하면서도 다원화된 생각을 폭력으로 눌러 배척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고령에 적힌 '처단'이라는 단 한 단어가 응축하는 폭력성과 배제의 신념 체계는 12.3 내란 사태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서슬 퍼렇게 알게 한다. 이제 원점이다. 민주주의 회복이 절박하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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