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 파리기후변화협정 및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남부 국경 비상사태 선언, 의사당 폭도 사면, 표현의 자유 및 평등 정책 후퇴 등 여러 분야에 걸친 반동적 행정명령에 무더기로 서명하며 미국의 시계를 뒤로 돌렸다.
미 백악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파리기후협정에서 재차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탈퇴 이유로는 "경제와 환경 목표 추구에 있어 우리나라의 가치나 기여가 반영되지 않"고 "필요하지 않거나 그럴 가치가 없는 국가들에" 미국 납세자들의 돈이 흘러 들어간다는 것을 들었다.
미국은 각국이 온난화에 대처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도록 노력하도록 한 파리협정에서 트럼프 1기 때 탈퇴한 뒤 조 바이든 정부에서 다시 가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취임사에서도 석유 시추를 늘리고 전기차 장려책 폐지를 공언하는 등 환경 친화적 정책과는 거리가 먼 방향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세계보건기구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도 내렸다. 탈퇴 이유로는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에 대한 "잘못된 대처", 미국에 요구되는 "과도한 분담금"을 들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세계보건기구에서 탈퇴한다는 것은 이 기구가 제공하는 광범위한 자료에 미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접근하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로,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또 다른 유행병이 창궐했을 때 이에 맞서는 것을 어렵게 한다고 우려했다고 짚었다.
이민 관련해서도 첫날부터 강경한 정책이 쏟아졌다. 남부 국경엔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돼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추가 국경 장벽 건설이 추진되고 군이 배치된다. 출생시민권을 불법 이민자 자녀에게 적용하지 않는다는 행정명령도 내려졌다.
다만 국경 단속을 위한 군 배치와 미 헌법에 명시된 출생시민권 제한은 법적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뉴욕타임스>는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한 군 투입은 국내 치안 목적으로 연방군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1878년 포세 코미타투스법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짚었다. 엘리자베스 고이테인 미 브레넌사법센터 이사는 신문에 "정말 위험하고 잘못된 방향"이라며 이 명령은 국경 이민 문제를 법집행이 아닌 본격적 군사 작전으로 다루게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은 곧바로 시민단체의 소송으로 이어졌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명령이 발표된 뒤 몇 시간 만에 반대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헌법에 명시된 출생시민권을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으로 폐지할 순 없다.
<뉴욕타임스>는 법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이러한 명령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 의제 확대에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이날 바이든 정부에서 불법 이민을 막고 합법적 수단으로 입국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행한 망명 신청 프로그램도 곧바로 종료됐다. 20일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은 서류 미비 외국인들의 망명 신청 예약을 위한 앱(CBP One) 기능이 이날부터 제공되지 않으며 기존 예약도 취소됐다고 밝혔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에 불복해 2021년 1월6일 미 의회의사당을 습격한 자신의 지지자 1500명 이상을 사면하고 이 사건에서 선동적 음모 혐의로 18년형을 받은 극우 단체 오스 키퍼스 창립자 스튜어트 로즈를 포함한 14명의 형은 감형했다.
<AP> 통신은 사면 자체는 예상됐지만 "속도와 범위"는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운 날로 묘사되는 사건 관련자들에 책임을 묻고자 하는 법무부의 노력을 놀라울 정도로 무너뜨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신은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척 슈머가 성명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는 법을 어기고 정부를 전복하려는 사람들에게 황금기를 열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표현의 자유, 평등 및 다양성을 후퇴시키는 행정명령도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방 정부에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DEI는 채용과 조직 문화에서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등 차이점을 존중하고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주며 목소리를 부여하자는 취지의 평등을 위한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성소수자(LGBTQI+) 학생을 위한 포용적이고 차별 없는 학교 환경 만들기' 안내서를 포함해 다수의 성소수자 학생 지원을 위한 교육부 지침서를 폐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생물학적 진실 회복"을 위함이라는 해당 행정명령은 "미국의 정책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성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소셜미디어의 허위 정보, 선동, 소수자 공격 등에 대한 감시를 "검열"로 표현하고 이에 대한 "종료"를 선언한 행정명령도 나와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 명령이 백신, 선거, 자연재해 등 관련 거짓 정보 확산을 막는 데 반대해 온 보수주의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를 통해 온라인에서 허위 정보 확산을 막기 위한 수년 간의 노력이 동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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