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2012년 18대 대선 직후, 방송인 김어준 씨는 투표지분류기 해킹 의혹을 제기했다. 2017년 4월에는 <더 플랜>이라는 영화를 제작해 개표과정에 부정이 있다는 의혹을 증폭시켰다. 13년이 지난 지금, 반대 진영에서 같은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부정선거론의 선봉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섰다. 내란수괴 혐의로 체포된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3차 변론기일에서 재판이 끝나갈 무렵 발언기회를 직접 요청해 "(청구인 대리인단이) 부정선거 의혹이 '음모론'이라며 계엄을 정당화하는 거라고, 사후에 만든 논리라고 하는데 이미 계엄을 선포하기 전에 여러가지 선거 공정성에 대한 신뢰에 의문이 드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2023년 10월 국가정보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산장비의 아주 극히 일부를 점검한 결과 문제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부정선거 자체를 색출하라는 게 아니라 '선관위의 전산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스크린할 수 있으면 해봐라. 어떤 장비들이 있고, 어떤 시스템이 가동되는지.' 그런 것이기 때문에 저희가 선거가 부정이어서 믿을 수 없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게 아니라 팩트를 확인하라는 차원이었단 점을 이해해달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의 부정선거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2일 대국민담화에서 그는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를 관리하는 전산 시스템이 이렇게 엉터리인데 어떻게 국민이 선거 결과를 신뢰하겠냐"고 했다. 이어 같은달 15일에는 페이스북에 올린 '국민께 드리는 글'에서 "부정선거"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고 근거를 제시하며 구체적으로 부정선거론을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이 적었다.
부정선거론의 주장과 실체 살펴보니…
중앙선관위는 윤 대통령의 입장 발표 직후 언론에 설명자료를 배포해 윤 대통령의 '부정선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선관위는 "개표 결과 조작이 가능하려면 선거인이 직접 투표한 투표지를 미리 조작된 위조 투표지와 교체 하는 작업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①선거 소송의 투표함 검표에서 엄청난 가짜 투표지가 발견되었다
선관위는 "과거 여러 차례 선거소송 재검표에서 정규의 투표지가 아닌 가짜 투표지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실제 투표용지와 동일한 투표용지를 발급하기 위해서는 청인, 사인 외에도 투표용지 발급기 및 전용 드라이버, 프로그램을 모두 취득해야 한다"며 '투표관리관 도장 이미지를 절취해 사전투표용지와 동일한 투표용지를 만들 수 있다'는 대통령 측 주장에도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② 선관위의 전산 시스템이 해킹과 조작에 무방비이고 이를 시정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선관위는 "2023년 합동 보안컨설팅 당시 중앙선관위는 국정원이 요청한 시스템 구성도, 정보자산 현황, 시스템 접속 관리자․테스트 계정을 사전에 제공했다"며 "침입탐지·차단 등 자체 보안시스템을 일부 적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의 해킹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김승주 선관위 선거정보시스템 보안자문위원장은 "국가정보원이 처음에 해킹툴을 설치했을 때 보안관제시스템 자동차단을 실시해서 시스템을 점검할 수 없기 때문에…(이를 해제하고 모의해킹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안관제시스템을 전부 끈 상태에서 보안 취약점들이 일부 발견됐고, 그 점에 대해서 선관위도 인정하고 총선 실시 전까지 보완 조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국정원의 '보안 컨설팅' 이후 TF를 구성해 지적된 취약점을 대부분 조치했다고 밝히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 전에 정당 참관인의 입회 하에 2차례 국정원과 합동으로 이행 여부 현장점검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당시 선관위 보안점검 결과를 발표한 백종욱 당시 국정원 3차장도 "과거의 선거 결과 의혹과 결부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며 부정선거 의혹에 거리를 둔 바 있다.
③발표된 투표자 수와 실제 투표자 수의 일치 여부에 대한 검증과 확인을 거부한다
선관위는 "개표 결과는 선거 통계 시스템과 방송사를 통해 실시간으로 일반 국민에게 공개되며, 개표 상황표 사본을 개표소에 게시하거나 참관인 등에게 제공하여 개표소 안에서 실시간으로 개표 결과를 확인·대조할 수 있다"며 "또한 시·도선관위는 개표 상황표를 팩스로 송부 받아 선거 통계 시스템 상의 입력 수치와 교차 확인 하여 개표 결과 이상 유무를 확인·대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선관위는 지난 21일 '사전투표 제도는 누가 몇 명이 투표했는지 알 수 없고 서버에 들어가서 허위로 사전투표자 수를 부풀려도 알 수 없다'는 대통령 측의 주장에 "중앙선관위는 사전투표 기간 중 1시간 단위로 사전투표 현황을 집계해 구·시·군별(선거인의 주소지 기준)로 선거통계시스템 홈페이지(https://info.nec.go.kr)에 공개한다"며 "사전투표통신망은 인터넷과 분리된 폐쇄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중의 보안체계를 뚫고 통합명부시스템에 접근해 사전투표자 수를 허위로 부풀릴 수 없다"고 일축했다.
또한 "사전투표는 선거일 투표 방식과 마찬가지로 종이 투표용지에 기표해 투표함에 투입한다. 따라서 사후에 개표상황표와 실물 종이투표지를 대조해 선거 결과에 대한 검증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사전투표소에 설치된 통신장비에 인가받지 않은 외부 PC 연결이 가능'하다는 주장에도 "모의 해킹 상황이 아닌 현실에서 시스템 인증 및 침입 탐지·차단시스템 등 다중의 보안체계를 뚫고 비인가된 장비가 통합명부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실제 시스템을 조작하려면 다수의 내부 조력자가 있어야 하며, 위원회의 모든 정보보호시스템을 불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이와 같이 물리적 통제 방안, 법적 통제 방안을 배제하고 단순히 기술적으로만 통신망 등 시스템 연결 여부로 시스템 조작이 가능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도 지적했다.
'선거함에 검은 종이 씌워놓고 얼마든지 열어서 (투표지를) 집어넣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주장에는 "선거에 사용하는 투표함은 투표함 앞·뒤쪽과 투표지 투입구에 특수봉인지 를 부착한다"며 "투표함 앞·뒤쪽의 특수봉인지는 투표개시 전 투표관리관이 투표참관인의 참관하에 투표함 이상유무를 확인하고 자물쇠로 투표함 앞·뒤쪽을 잠근 후 투표관리관과 투표참관인이 서명하여 자물쇠 위에 부착한 것이며, 투표지 투입구의 특수봉인지는 투표마감 후 투표관리관이 투표참관인 참관하에 투입구 덮개를 닫고 봉쇄 잠금핀을 끼운 후 투표관리관과 투표참관인이 서명하여 그 위에 부착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봉쇄·봉인된 투표함은 개표소에서 개표 참관인의 참관 하에 투표함 봉인 등의 이상유무를 확인한 후 투표함 앞·뒤쪽에 부착된 특수봉인지를 제거하고 니퍼 등을 이용해 자물쇠를 제거한 후 투표함 뚜껑을 열어 투표지를 꺼내 개표한다"며 "투표함 봉쇄를 위해 사용하는 자물쇠와 잠금핀은 일회용으로 투표함에 한번 장착된 후에는 니퍼 등의 도구를 사용해 절단했을 때(에만) 제거가 가능하며, 재사용이 불가능하고, 자물쇠 위에 부착하는 특수봉인지는 투표함에 부착 후 떼어낼 경우 훼손표시(OPEN VOID)가 나타나 그 기능이 상실돼 재사용이 불가능해 높은 보안성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 개표기'를 이용한 방식이 해킹에 취약하다?
부정선거의 핵심적 주장인 수작업이 아닌 '전자 개표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해킹에 취약하다는 주장도 우리나라 개표시스템의 현실과는 다르다. 한국은 개표시 사람이 직접 투표용지를 확인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투표지 분류기와 계수기를 이용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을 뿐이다. 전자분류기와 계수기는 말 그대로 분류와 수를 세는 것을 담당하기 때문에 투표용지에 이미 표기되어있는 내용 자체를 조작할 수 없다.
선관위는 지난 21일 "투표지분류기는 랜카드가 장착되지 않아 외부와의 통신이 단절되어 해킹·조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투·개표는 '실물 투표'와 '공개 수작업 개표' 방식으로 진행되며 정보시스템과 기계장치 등은 이를 보조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며 "또 투·개표 과정에 수많은 사무원, 관계공무원, 참관인, 선거인 등이 참여하고 있고 실물 투표지를 통해 언제든지 개표결과를 검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투·개표소에는 약 34만 명의 투·개표 사무원 외에도 정당이나 후보자가 선정한 투표 참관인 약 27만 명, 개표참관인 약 1만7000명이 참여한다. 특히 개표 참관인은 모든 개표 과정을 감시·촬영하고, 개표 결과는 실시간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다"며 모든 투·개표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감시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표장에 참관인으로 참여해 본적이 있다고 밝힌 정치평론가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20일 YTN라디오에 출연해 "우리나라 개표 시스템상 부정 선거는 이뤄질 수가 없다"며 "대부분 전자개표가 아닌 수기로, 참관인이 연필이나 볼펜으로 숫자를 적고, 앞에 있는 큰 판에도 적는다. 그리고 이것을 전산화된 수치랑 맞춰본다"고 지적했다. 장 소장은 박근혜 대선캠프 공보팀장과 김무성 전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냈다.
장 소장은 "어디서 부정선거가 나올 수 있을지 참 의아한데, 제가 개표장에 가보지 않았으면 유튜브 알고리즘에 뜨는 '부정선거의 증거' 등 이야기만 들으면 혹할 것 같다"며 "개표장을 한 번 가보셨으면 부정선거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0년 4.15 총선에서 인천 연수구을 지역구에 출마했던 민경욱 전 의원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 극우세력이 부정선거의 근거로 내세우는 '수도권 평균득표율 63대 36 고정비율' 주장은 선관위는 물론 대법원도 "이례적·비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선관위는 지난달 19일 "전체 253개 선거구 중에서 17개 선거구(6.7%)만이 63 대 36의 비율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득표 비율만으로 선관위가 사전투표를 조작했다는 (것은) 근거도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들은 세부 데이터를 공개하며 "서울·인천·경기지역 사전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후보들만으로 계산한 득표 비율은 서울 평균 63.95 : 36.05, 인천 평균 63.43 : 36.57, 경기 평균 63.58 : 36.42이다. 그러나 대구 39.21 : 60.79, 경북 33.50 : 66.50, 울산 51.85 : 48.15 등 지역마다 다른 결과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따라서 양당 외 정당 추천 후보와 무소속 후보의 득표를 제외하고 일부 지역에서 두 정당의 득표율만을 비교한 수치로 결과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22년 7월 28일 민경욱 전 의원이 제기한 2020년 4.15 국회의원선거 무효 소송이 대법원에서 기각됐을 당시 재판부는 "수많은 사람의 감시 하에 원고의 주장과 같은 부정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산기술과 해킹 능력뿐만 아니라 대규모 조직과 막대한 재원이 필요할 것"이라며 "원고는 부정선거를 실행한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증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사안을 2년여 동안 심리한 대법원은 "사전투표에 참여한 선거인과 당일투표에 참여한 선거인의 지지성향 차이나 선거일 당시의 정치적 판세에 따라 전국적으로 특정 정당의 후보자에 대한 사전투표 득표율이 당일 득표율에 비해 높거나 낮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그것이 이례적·비정상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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