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19일) 새벽 내란수괴 혐의로 윤석열이 구속되었다. 위헌적 폭거가 민주적 기본질서에 따라 처벌과 회복의 절차를 밟고 있다는 안도도 잠시, 우리는 곧 탄핵 반대 극우집단이 자행하는 사법부와 경찰력에 대한 끔찍한 테러를 목격했다. 실체를 드러낸 극우의 폭동을 멈춰 세워 더 이상의 사회혼란을 막으려면 내란모의세력 뿐만 아니라, 동조세력을 빠짐없이 찾아내고 엄중하게 책임을 지우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12.3 내란사태 이후 지금에 이르는 과정에서 다수 시민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윤석열들'을 몰아낸 이후의 세상은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민주주의와 헌법의 기본 가치를 고르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 공동체를 겁박한 위헌불법 세력을 발본하는 과정에서 국회와 사법부를 포함하는 모든 국가 기관과 공권력이 철저하게 제 직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요구는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권력은 개발독재와 군사독재를 거쳐 신자유주의적 국가로 전회한 지금까지 권위와 폭력을 동원해 시민들을 억압∙착취해왔던 존재로서 시민들에게는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에 비춰 의미가 있다. 그 요구는 일시적으로는 독점적 폭력기구인 국가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내란세력에 대한 법제도의 집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가기구를 신뢰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는 예외적인 국면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크게는 시민들이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국가권력의 쇄신, 즉 우리 삶에 직접 관여하는 모든 국가조직의 지향과 계획들이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바로 세우며 전면적으로 시민들의 편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주권자의 의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권력은 이런 시대정신에 조응하고 있을까? 계엄선포를 인지했을 뿐만 아니라, 계엄해제 이후에도 내란세력에 동조하고 있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시간 동안 행정부처에서 추진된 몇 가지 사업들을 보자.
1월 9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정책토론회' 를 열었다. 이날 정부는 '병행진료 급여제한', '관리급여', '중증 중심 실손보험 개편' 등을 발표했는데, 그것은 쉽게 말하면 현행 제도에서 민간보험사의 손해가 커지므로 정부가 '보험금 지급기준 강화' 라는 정책개입을 통해 이들의 이익을 개선해 주겠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민간보험사들이 실손보험을 판매하기 위하여 비급여진료 보상을 약속했고 결국 이용자가 많아져서 손해율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잘못 설계된 상품을 판 보험사의 책임이 제일 먼저이다. 그러나 정부는 소수의 과잉∙남용 이용자의 문제뿐만 아니라, 의료공급의 왜곡을 만들어 내도록 애초에 잘못 만들어진 보험상품의 문제를 나머지 대다수 가입자의 편익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은 기존 보험을 국가가 매입하는 방안을 포함시킴으로써 보험사의 이익을 위해 사적 계약에 불합리하게 개입하려고까지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어디에도 환자에게 적정하고 적합한 진료를 제공하기 위한 검증된 시스템, 실손보험사들이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던 중증질환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의무화하는 조치와 같이 정부와 보험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대책은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비급여 진료관리와 실손보험 개혁 의지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바이오헬스 또는 디지털 헬스케어 무엇이라 부르건 보건의료부문이 산업화의 수단이 된 이후, 정부는 지속적으로 규제 완화와 개인건강정보 활용촉진 등 비급여시장 개발의 불쏘시개가 되는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안전성과 효과성이 확인되지 않은 채로 시장에 진입하여 3년간 비급여를 보장받는 '신의료기술 선진입-후평가 제도'나,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 민간보험사 개방 확대' 계획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시민들의 보편적 건강보장보다 보험산업과 제약의료산업이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일을 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으로 거래하고, 관련 자본이 이윤율이 높은 시장을 점유하도록 정부가 나서서 길을 열어주는 사이 2023년도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전년 대비 0.8% 포인트 하락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12월 20일 한국석유공사 주도로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불리는 동해 심해가스전 개발을 위한 시추가 시작되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재생에너지 3배 확대'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신규 원전을 증설하는 내용을 담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확정을 서두르고 있다. 기후에너지 전문가와 시민사회는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막대한 탄소배출을 우려하며 심해가스전 개발중단과 11차 전기본안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합리적 설명이나 대책 없이 강행하고 있다.
또한 12월 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는 지방공항들의 조류 충돌 위험성, 공항설계의 안전성, 운영의 경제성 등을 전국민적 관심사로 끌어올렸다. 환경운동단체들은 많은 신공항 예정지들이 무안공항보다 더 높은 조류 충돌 위험도가 예측된다며 신공항사업을 전면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부가 묵인한 채로 국토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국의 신공항사업은 이 참사 국면에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참사에 대한 애도가 잦아들기를 기다려 공항건설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한다는 신년계획을 내놓고 있다.
시민사회가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내란공모범의 혐의를 받는 장관들로 인해 행정부의 기능이 무력한 상황에서도 뜨거운 시대정신에 눈감은 일부 국가권력과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의 경제권력의 이익을 위한 특정 계획들은 어김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를 앞세워서 또는 국가의 혼란을 틈타, 미래세대와 동시대를 기만하고 자기집단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태는 자본주의 기업만의 것이 아니다. 내란의 주요 임무 종사자들인 김용현과 이상민 두 전직 장관의 퇴직금 신청 사실을 보라. 이들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한 행위에 대한 반성은 없지만 개인의 경제적 이해에는 빛의 속도로 민첩했다.
12월 3일 이후 혹한의 50여 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광장을 열었던 사람들은 박탈되고 차별받고 자유롭지 못했던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해왔다. 그리고 지금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삶, 서로가 연결된 존엄하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을 서로가 약속하고 있다.
국가의 행정과 제도권 정치가 분노하고 또 열망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단지 한시적인 것 또는 정권 창출의 기회로만 여기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려면, 현재 기득권 세력들이 추진 중인 반(反)기후, 반생명, 반노동, 반안전의 정책 사업들을 즉각 중지시켜야 한다. 시민의 삶을 돌보는 정치, 체제와 담론에 깊게 자리 잡은 불평등에 개입하는 정치를 주도하지 못한다면, 다음 세상을 열고자 하는 시민들과 함께 광장을 함께 할 자격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