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여성, 안전, 돌봄, 생태 잇기', 비개혁주의적 개혁전략은 무엇인가?" 올해 마지막 '함께맞는비 포럼'의 제목이다. 한국 사회의 다양하고 중요한 사회경제 의제가 분야별로 다뤄지고 있는 현실이고 그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 의제들이 복합적으로 실천되어야 하는 이유를 공유하고 그러한 복합적 실천을 전략적으로 모색할 필요도 있다는 문제의식이 이것을 기획한 배경에 있었다.
노회찬재단이 2023년부터 제기해온 한국사회의 '복합위기 시대'라는 화두는 '복합적 실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의 우선 과제가 노동자들의 일자리 안정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 실천이어야 하고, 돌봄의 위기 해결은 성평등 실현, 부유층의 조세부담 증대 정책과 병행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소멸 위험 대응은 인구정책뿐만 아니라 지역분권 정책,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 사회적경제 촉진 정책 등과 병행되어야 한다.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는 산업재해를 줄이고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고려하도록 하는 법적 규범의 준수 한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경제의 대외경쟁력은 EU 공급망 실사,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적극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위기에 처한 농업의 회생은 탄소중립 실천의 맥락에서 구상되어야 한다. 이처럼 '복합위기 시대'의 '복합적 실천'은 당면한 우리의 과제이고, 그것은 정부와 국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정치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치가 '반헌법적 비상계엄', '친위 쿠데타', '내란'의 상황을 맞이했다. 헌법이 정하고 있는 절차에 따라 비상계엄이 해제되긴 했지만 내란죄 피의자로 입건된 대통령을 탄핵시킨 상황이고 또 내란죄로 처벌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치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고, 그것 때문에 국민들은 혼란스럽고 불안한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오히려 이럴 때 일수록 한국사회의 '복합적 실천' 필요성과 요구도 함께 주목되어야 한다. 내란행위를 물리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다시 수립되어야 할 새로운 정권의 개혁과제는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복합적 실천과 평등사회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이게 나라냐?"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외쳤던 촛불시민혁명의 주역, 시민들은 촛불시민혁명 이후 아직 평등하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실감하지 못했다.
촛불시민혁명 이후 경제불평등은 더 심해졌고, 관리자 직종을 제외한 모든 직종의 임금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비중은 더 하락했고, 자영업자들은 빚더미에 짓눌리고 폐업에 내몰리고 있다. 노동시장의 성차별은 개선되지 않았고, 노동현장의 재해율은 더 상승했다. 농업에 대한 박대는 여전했다. 2021년 기준 농업소득은 1300만 원에 불과했고 경지면적은 줄었다. 수도권 인구가 2020년에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섰고 지역소멸 위험현상은 더 심해졌다. 그러는 사이 비정규직 관리자들의 임금만 급격하게 늘었고,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들도 해마다 늘어났다. 시중은행들과 지방은행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틈타 2020~2022년도 3년간 약 38조원의 당기순이익을 벌어들였다.
이제 우리는 '곤란함을 겪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곤이부지자, 困而不知者)가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복합적 실천'의 우선적 개혁과제로서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평등사회의 대안에 대해 지금 이 시기에 더 심도 깊게 논의해야 한다.
11월 27일 노회찬재단이 주최한 제8회 <함께맞는비 포럼>, '노동, 여성, 안전, 돌봄, 생태 잇기', 비개혁주의적 개혁전략은 무엇인가?"는 <불평등이데올로기>의 저자인 조돈문 전 노회찬재단 이사장의 발표와 청중들의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발표자는 다양한 측면에서 불평등 현실과 '불평등 이데올로기' 문제를 제기한 후 평등사회의 대안에 대해 주장했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세 가지 메카니즘과 한국사회
조돈문 전 이사장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내걸린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던 사진을 설명하면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상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이어서 조 전 이사장은 "한국사회 불평등은 OECD 최고수준이고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며 "2010년대 소득상위 10%의 총소득 점유율이 46%인 반면 소득하위 50%의 총소득 점유율은 16%"라고 통계자료를 소개했고, "한국 소득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은 1990년대 이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피케티가 자본주의에서 불평등이 심화되는 그 메카니즘 세 가지를 말했다. 1) 평균 자산 수익률이 국민소득 증가율보다 높다. 2) 그렇게 해서 축적되는 소득을 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자산을 더 증식하는 데 쓴다. 그래서 자산/소득 비율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고, 자본주의가 이제 세습 자본주의 단계에 진입했다. 한국은 제가 수저 계급 사회, 즉 세습 자본주의 플러스 알파다. 우리는 수저를 물고 태어난다. 그래서 금수저 흑수저란 말이 있다. 3) 이제 저성장 시대로 진입을 해서 자산수익률과 국민소득 증가율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진다. 이 세 가지는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이 되고 그래서 일시적으로는 불평등이 완화되거나 정체되는 듯 보일 수는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불평등 체제 유지는 계급 역학관계와 이데올로기 투쟁의 결과
조돈문 전 이사장은 "그런데 시장에서는 분배를 불평등하게 만들어내지만 그런 불평등 체제를 유지되게 하는 것은 바로 계급 역학관계와 이데올로기 투쟁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는 '2010년 KBS 조사'와 '2023년 2월 노회찬 재단/한국비정규노동센터 조사'를 비교해서 지배계급 이데올로기 효과를 설명했다. 세 가지 기본 명제와 8가지 하위명제로 나눠서 시민의식을 조사한 결과 "불평등 존재 은폐는 지배계급이 실패를 했고, 정당화의 세 번째 명제인 '상승이동 기회 보장'과 '평등사회 대안 부재'(미국식vs북유럽식)는 지금 각축을 하고 있다. '평등사회 이행 불가' 명제는 한국사회에서 수용되었다."고 분석했다.
또한, "한국 사회는 '수저계급' 사회라서 불평등이 대물림되어 실력이 있다고 해서 계층의 상승 이동이 불가능하거나 아주 예외적으로나 가능하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젊은 세대에서 더 그렇다."며 "앞으로는 청년 세대가 주류가 될 거고 그러면 이제 계층상승 이동 기회가 보장된다거나 불평등 체제를 정당화하는 건 앞으로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평등사회의 대안인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비개혁주의적 개혁전략
조 전 이사장은 "왜 어떤 자본주의는 덜 불평등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1900년에 미국보다 더 불평등했던 스웨덴, 척박한 땅이고 굶어 죽기 싫어서 떠났던 나라 스웨덴을 평등하고 먹고 살만한 나라로 만든 것은 노동계급이었고, 농민과의 계급 동맹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우리도 스웨덴처럼 가면 안 되겠나?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갈까?에 대해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을 모색해 불평등 체제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점을 해소하되 제도 개혁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높은 수준의 변혁을 제안한다."고 주장했다.
이행 주체는 노동계급 + 여성과 청년
그는 "스웨덴도 그런 경험을 했고, 스웨덴과 같은 스칸디나비아 모델 국가들을 맥락적으로 벤치마킹을 하자는 건데 두 가지 하위 전략으로 구성해야 된다. 하나는 주체형성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개혁 전략이다. 제도개혁의 내용도 계급형성 조건하고 소득 재분배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면 그 수혜자가 생긴다. 이 사람들이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데 지지 기반이 되는데, 그 역시 주체는 노동계급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제가 얘기하는 이행 주체는 노동계급 플러스 여성과 청년이다. 사회변화로 인해 기득권 세력은 손해를 보게 돼 있고 피해 대중들이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 우리가 얘기하는 사회 진보고 평등 사회로의 이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득권 세력은 저항할 것이다. 그러니 분명히 이행 비용을 치러야 되는데 그 이행 비용을 치르기 위해서는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동의 같은 게 강하게 형성이 되고 그 주체가 형성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안은 구체적이고 이행 전략은 과학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조 전 이사장은 "시민들의 80%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에 대한 비호감도가 86%이다. 뭔가 이유가 있는 비호감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게 되고 민주노총 입장에서 분명히 위기 상황인데 위기의식은 없다."며 "(민주노총에 대해) 시민들은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보호를 하라고 요구(35%)하고 있다. 현재 그렇게 취약계층 보호를 하고 있다고 보는 시민들은 6%에 불과합니다. 노조 활동에 대해 시민들은 현재는 이익 집단으로 보고 있고, 시민들이 요구하는 건 계급조직으로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평등한 사회로 가려면 스웨덴 모델을 경유해야 한다
끝으로 조 전 이사장은 "현재 한국은 노조 조직률이 10% 수준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계급 분절이 되어 있는데 대공장 노동조합은 두 계급 전략을 펼치고 있고 그러니까 계급 갈등 함정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웨덴을 넘어서 성평등이 완벽하고 완벽하게 평등한 나라로 한 번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완벽한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 나라는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다. 그런 나라로 가려고 한다면 그 이행 경로가 있을 텐데 그 이행 경로 상에서 보면 그 경계에 있는 체크 포인트는 스웨덴일 것이다. 어쨌든 스웨덴은 평등 사회의 이행 경로로서도 필요하다. 아마 그런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로 가려면 스웨덴 모델을 우회하는 게 아니라 경유해야 될 것이다."라며 발표를 마쳤다.
OECD가 2021년에 발표한 보고서(『Does Inequality Matter?-HOW PEOPLE PERCEIVE ECONOMIC DISPARITIES AND SOCIAL MOBILITY』,)는 "OECD 국가에서 평균적으로 4명중 1명은 국가 소득의 70% 이상이 가장 부유한 10% 가구에 분배된다고 생각하는 반면, 4분의 1은 30% 미만이 가장 부유한 10% 가구에 분배된다고 인식한다."면서 "1) 사람들은 결과와 기회의 불평등에 관심이 있으므로 두 측면을 모두 다루는 개혁 패키지가 지지를 얻을 가능성이 더 높다. 2) 특정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는 해당 정책이 불평등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인식될 때 더 높아진다. 이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투명한 방식으로 정책의 효과를 평가할 필요성을 강화한다. 3) 불평등에 대한 고품질 정보를 제공하면 여론 분열로 이어지는 인식의 광범위한 분산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넘어서기 위한 국가의 역할도 필요하다.
※ 노회찬재단이 주최하는 <함께맞는비 포럼>은 분야별 사회경제 이슈 및 시민들 삶의 실태에 대해 진보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공론화함으로써 회원 및 시민들과 사회현안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사회운동 주체들과 노회찬재단이 교류 및 소통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시민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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