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가 2024년 한 해 윤석열 정부의 인권 상황을 짚으며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온 국민의 인권을 동시에 침해한 희대의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9일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연 '2024 한국인권보고대회' 현안 대담에서 김동현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계엄 포고령에 담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 그리고 계엄 선포를 정당화하는 사유가 없다는 점이 명백하다"며 "이 상황 자체가 인권침해"라고 밝혔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윤석열을 제외한 온 국민의 인권을 동시에 침해한 희대의 사건"이라며 "21세기에 일어난 온 국민의 인권이 동시에 침해된 정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장한 군인들을 동원해 실제로 인권을 침해, 출판의 자유·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 집회 결사의 자유 억압을 실제로 실행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더 이상 할 얘기는 없다"며 윤석열의 12.3 사태는 온 국민의 인권을 침해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12.3 사태 발생 엿새가 지나도록 침묵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김동현 변호사는 "인권위는 그 존재 자체가 국가 기구, 즉 권력 기구를 견제하는 게 본령"이라며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인권위가 (또는) 위원장이 성명을 밝히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권위가 직권으로 (12.3 사태를) 조사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오면 진정에 따라서 (조사)하면 되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조사가 어떻게 발동하게 되느냐가 아니라, (조사할 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조사를 하느냐가 사실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김용원 상임위원이라고 하는 문제적인 인물, 되게 많은 영향력을 (조사) 결과에 부정적으로 미칠 수 있는 인물을 배제하고 기피시킨 채 조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도 "인권위가 입장을 빨리 냈어야 한다"며 이날 열린 전원위원회를 비공개로 전환한 것만 봐도 "인권위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인권위는 이날 23차 전원위를 열고 '대통령의 헌정질서 파괴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및 의견표명의 건'을 비공개로 심의했다. 그러나 직권조사 여부는 결정하지 못한 채 논의를 다음 전원위로 미뤘다.
또 윤 대통령이 계엄 사태 와중인 지난 6일 인사권을 행사해 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의원을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한 데 대해서도 강한 반발이 나왔다.
권태윤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 위원장은 "윤석열이 위헌적인 계엄을 선포하고 그에 대한 어떤 사과도 하기 전에 박선영에 대한 임명을 재가했다"며 "'내란죄' 우두머리 윤석열이 국가 기관의 장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권태윤 위원장은 "진화위는 국가가 공권력으로 중대한 인권침해를 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국가 기관에 그에 대한 조치로 사과를 권고하는 기구"라며 "그런데 그런 기관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될 사람을 국가 폭력, 국가 범죄를 일으킨 사람이 (인사권을 행사해) 책임자를 임명했다. 이 자체가 사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용납할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디딤돌 판결 '동성 배우자 건보 피부양자 자격 인정'…걸림돌 판결 '이태원 참사 관련자 형사 무죄'
민변은 올해 최고의 디딤돌 판결로 '동성 배우자에 대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서울경찰청·용산구 관계자 등 이태원 참사 관련자에 대한 형사 무죄 판결'을 각각 꼽았다.
디딤돌·걸림돌 선정위원장을 맡은 조숙현 민변공익인권변론센터 소장은 동성 배우자 건보 피부양자 자격 인정 판결을 올해 최고의 디딤돌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 판결이 확정된 이후 실제 건보에서는 동성 배우자를 피부양자로 등록하는 것이 받아들여지는 등 아주 큰 사회적 변화를 이루었다"고 했다.(☞ 관련 기사 : "사랑이 또 이겼다" 대법원, 동성 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조 소장은 또한 이태원 참사 관련자 무죄 판결을 최악의 걸림돌로 선정한 데 대해 "사회 재난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예결 가능성 기준을 과도하게 보수적으로 제한하는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며 "향후 유사 사건에서 책임자 처벌을 어렵게 만드는 부당한 면책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련 기사 : 김광호 전 서울청장 무죄 선고…이태원 유가족들 "기만적 판결" ,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박희영 '무죄' 받았지만, '유죄' 근거 차고 넘쳐")
동성 배우자 건보 피부양자 자격 인정 판결 외 최고의 디딤돌 판결로는 △탄소중립기본법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 △플랫폼 노동자인 쏘카 노동자들의 근로자성 인정 판결,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발언하고 축복식을 한 이동환 목사에 대한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출교 처분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 판결, △임대인 실거주 이유로 갱신이 거절된 데 대한 입증책임이 임대인에게 있다는 대법원 판결, △여성 난민신청자의 본국 사회·문화적 규범과 정부·사법기관으로부터의 보호 가능성 토대로 젠더폭력을 난민협약상의 '박해'라고 인정한 판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최초로 인정한 판결,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를 허용할 것을 명하는 적극적 조치를 내린 최초의 판결, 청소노동자들의 미신고 집회 중 소음에 대해 학습권을 침해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에 대하여 청구기각한 판결, △방송문화진흥회 보궐이사 임명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통해 이른바 '2인 방통위'의 위법성을 처음으로 밝힌 판결 등이 선정됐다.
이태원 참사 관련자 판결 외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는 △사법농단 사건에 대하여 대법관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 △고(故) 김용균의 사망에 대한원청 서부발전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무죄를 확정한 판결, △미추홀구 건축왕 일당에 대한 감형 및 무죄 선고 항소심 판결, △사회주의 신념이 대체역 편입신청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확정한 대법원 판결, △대통령의 실언 논란 보도에 대하여 외교부가 제기한 정정보도청구를 인용한 사례, △'IS 가입 선동' 테러방지법 기소사건에 대해 파기환송을 선고한 대법원 판결, △설악산 오색삭도 공원사업시행허가한 판결, △우유성 간첩 조작 안동완 부장검사 탄핵기각 결정, △코로나19 관련 이태원 기지국 접속자 정보수집 합헌 결정 등이 선정됐다.
조 소장은 마지막에 "부디 내년 2025년 12월에 열리는 인권보고대회에서는 윤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과 내란죄 유죄 판결이 최고의 디딤돌 판결로 선정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한편, 민변은 올해 주요 인권 이슈로 '이주노동'을 선정해 집중조명했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 노동자 로이 아지트 씨가 직접 한국의 이주노동 실태를 고발했다. 그는 지난 2021년 경기도의 한 농기계 업체에서 일하다 간질성 폐질환(폐가 점점 굳어지는 병)을 얻고 현재 투병 중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두 번에 걸친 그의 산업재해 요양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그는 현재 '산재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이다.(☞ 관련 기사 : "'더스트' 천국서 10개월 일하니 폐가 60%만 남았어요",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산재 신청 취소하라고, 시X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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