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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불평등의 종합판, 아리셀 산재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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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불평등의 종합판, 아리셀 산재 참사

[인권의 바람] 누구도 죽으려고 경계를 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는 죽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안전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

지난 3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아리셀 산재참사 추모행동에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이 한 말이다. 희생자 23명 중 18명이 이주노동자였기에 서울에서도 함께 추모하고자 만들어진 행사였다.

아리셀 산재 참사는 한국 사회 불평등의 현실이 종합적으로 드러난 참사다.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30분, 화성에 있는 리튬 1차전지 공장인 아리셀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가장 큰 이유는 폭발이 난 3층 아래 2층에 있던 노동자들이 문이 있는 곳이 아닌 반대로 가다 연기에 질식했기 때문이다.

사망 과정 자체가 참사의 원인을 짐작하게 한다. 왜 공장 노동자들에게 대피로 안내 등 기본적인 안전교육도 안 했는가. 배터리 보관 장소와 노동자 업무 장소도 혼재됐고, 화재 대비용 물품도 제대로 없었다. 일용직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다. 희생된 이주노동자 18명 중 17명이 중국 동포이고 한 명은 라오스 출신이다. 노동자들에게 대피 안내도만 주고 교육도 한국어로 형식적으로 했다고 증언한다. 비정규직에 이주노동자이니 회사는 안전 교육에 소홀히 한 것이다.

▲7월 3일 이주노동인권단체들이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아리셀 산재참사 추모 행동을 열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위험신업의 다단계 하청구조가 재벌기업의 안전의무 빠져나가게 해

아리셀은 에스코넥이 96%의 지분을 갖고 있는 자회사다. 에스코넥은 갤럭시 핸드폰 금속부품, 리튬 1, 2차전지 생산을 하는 업체다. 에스코넥은 아리셀의 운영, 매출 등 실질적인 지배관리를 해온 원청기업이다. 게다가 자회사인 아리셀은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메이셀과 도급 계약을 맺고 있었다. 제조업에서는 파견을 금지하고 있으니 법망을 피하려고 도급 계약을 맺는 꼼수를 쓴 것이다.

메이셀도 인정했듯이 불법파견이다. 안산시흥공단 등 많은 사업장에서 인력소개소 같은 곳을 통한 제조업 일일 불법파견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비정규직 불법파견을 사용하는 기업이 안전교육을 제대로 할 리 없다. 원청에게도 안전 배려 의무는 있지만 직접적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피해갈 구멍이 많으니 불법파견 하청노동자, 일용직 노동자들은 죽음이 상존하는 곳에서 일하는 셈이다.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노동비용을 최소화하고 산업재해의 위험을 이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기업에서 노동자의 노동권을 박탈하는 하청·파견·독립계약자 제도 등을 활용하는 것을 여전히 우려한다"고 한 이유가 이번 사건에서도 잘 드러난다.

1차전지 산업이 화재 폭발 위험이 많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리튬전지는 화재나 물에 취약해서 화재 폭발 위험이 높다. 국방부도 이 때문에 보관 시설을 바꾸기도 했다. 아리셀은 이번 참사 이전에도 화재 폭발이 있었다.

위험산업은 노동자를 직접고용을 하고 안전교육과 안전조치를 충분히 해야 '일하다 죽는 참사'를 막을 수 있다. 그래서 노동계는 위험업무 외주화, 도급 금지를 주요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의 도급 금지 조항은 매우 협소하고, 1차전지나 신소재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갈수록 전기차 등의 폭발적 수요로 리튬전지의 생산은 확장되고 있는 현실인데도 도급 금지 조항은 여전히 그대로다.

리튬산업은 다단계 하청산업 구조다. 에스코넥은 삼성SDI에 2차전지 생산에 필요한 부품(CID)을 납품한다. 삼성SDI는 2차전지 회사다. 위험산업이므로 원청 대기업이 유해위험업무 과정 전체를 책임지고 안전관리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위험업무는 다 하청기업에 준다. 그리고는 원청이 안전관리 책임을 다했다고 말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그러고도 삼성SDI 울산사업장은 정부의 동탑산업훈장 사업장 상을 받았다. 아리셀 산재참사가 발생한 후인 지난 1일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삼성SDI가 "협력사의 안전 협력사의 안전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고 가상현실(VR) 안전체험장 설립 등 산재 예방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며 수상이유를 밝혔다.

유럽연합(EU)의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에서도 기업 공급망 전반의 인권·환경 관련해 원청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글로벌 기업인 삼성SDI는 아리셀 참사에서 책임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위험은 하청업체, 협력업체에 떠넘기고도 안전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위험 업무를 하청업체나 영세업체에 맡기고 정부는 영세업체니 안전체계가 부족해도 괜찮다며 제대로 안전관리 감독도 하지 않는다. 아리셀은 고용노동부로부터 2021년부터 3년간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돼 산재보험료를 감면받은 적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화학물질 특성에 맞는 소방기술을 개발하고 AI 등 과학기술"이 없어서 산재가 발생한 것이 아니고 위험 업무를 외주화하고 기업의 안전의무를 면제했기 때문에 발생한 참사다. 유해위험산업에서 다단계 하청구조를 없애고 안전시설을 제대로 갖출 수 있는 기업만이 생산을 할 수 있도록 해야 죽음의 외주화, 이주화를 멈출 수 있다.

▲4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청에 설치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영정과 위패를 안치한 후 슬퍼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소재 일차전지 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체류자격에 따른 위험의 이주화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일'(3D)은 이주노동자에게 온다. 지난해 KBS의 통계청 분석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10명 중 7명 정도가량이 3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대부분 영세 사업장이니 통역 등 최소한의 정보 접근도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의 중대재해 사망은 정주노동자보다 3배가량 높다.

그런데도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과 추방에만 여념이 없다. 이주노동자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필요하다. 자신이 다루고 있는 물질이 무엇인지, 작업이 어떤 것인지 알 권리가 있어야 한다. 산재보상 기준도 이주노동자에게 차별적이다. 정부와 기업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동등한 노동조건 등의 처우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값싼 인력으로 여기며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이번에 희생된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중국동포다. 재외동포비자(F-4)로 온 사람들이다. 그 외에도 방문취업비자(H-2)와 결혼이민비자(F-6)인 분도 있다. 이들은 사업장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직업소개소를 거쳐 일용직 파견으로 일한다.

안전교육도 없다. 사용자가 안전의무를 하지 않아도 드러나지 않으니 위험하게 일한다. 체류자격에 따른 노동 통제가 이주노동자 중간착취로 이어지게 한 것이다. 이제라도 다양한 체류자격에 따른 노동 재해의 양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리셀 화재 희생자 유가족 등 교섭단이 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청에서 열린 아리셀 사측과 첫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소재 일차전지 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이주노동자 혐오를 이용하는 세력들

산재 참사 후 정부는 발빠르게 대응하는 듯했다. 대통령이 찾아가고 화성시청에 분향소도 차렸다. 그러나 역시나 일주일이 지나자 화성시는 태도를 바꾸었다. 영정이 있는 분향소로 만들려니 반대했고, 희생자 유가족에게 편의를 최대한 제공하겠다고 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태도를 바꿨다.

화성시는 직계존비속과 형제자매는 오는 31일, 친인척 및 지인은 10일까지만 지원한다며, 빨리 끝내라고 압박을 줬다. 대책위와 유가족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그러자 언론 등에서 유족들을 이기적인 폭력세력인 양 호도한다. 산재참사 유가족에 대한 비난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까지 덧붙여진 것이다.

김용균 발전 비정규직 산재참사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와 기업의 자료 은폐나 책임 회피로 진상규명 과정은 시일이 오래 걸리기 일쑤다. 유가족들이 이주민인 경우 오래 한국에 머물지 못해 제대로 진상규명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익스프레스 산재참사에서도 이주노동자가 3명이었으나 제대로 사과받고 보상받았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이주노동자에게,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위험을 떠넘긴다고 우리 사회가 안전해지는 게 아니다. 누구도 '죽으려고 국가의 경계를 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과거 한국의 경제력이 약했던 시절 독일에 갔던 광부와 간호사를 떠올려보라.

세계화로 우리는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 즉, 언제든 이주노동자가 될 수 있다. 그들이 돈을 벌러 온 것이든, 한국의 문화가 좋아서 온 것이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온 것이든 간에 그것이 비난을 받거나 혐오받을 이유가 될 수 없다. 우리도 작게는 국내에서도 다양한 이유와 욕망으로 이주하며 노동하고 있지 않은가.

현재 아리셀 사측은 제대로 진상규명과 교섭에 응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익은 챙기면서 노동자의 목숨은 챙기려 하지 않는가. 더 많은 정주민들의 관심과 연대가 필요한 때다. 이주노동자를 생명과 존엄을 가볍게 여기는 '예외적 존재'로 인정한다면, 가진 자들은, 정부와 자본은 필요할 때 우리도 예외적 존재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 이주노동자의 목숨도 소중하다. 이것이 대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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