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핵심 참모들이 참석한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채상병 순직사건 관련 대통령실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인 '대통령 격노설'에 대한 여야 위원들의 공방이 이어졌다. 쟁점 가운데 하나는 '02-800 전화번호'의 정체였다. 문제가 된 번호는 격노설이 제기된 지난해 7월31일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가 끝난 직후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건 번호다. 야당 의원들은 번호의 주인을 밝히라고 따져 물었고, 여당 의원들과 대통령실 참모들은 "기밀 사항"이라고 맞섰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1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31일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격노'했는지에 대해 추궁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그 날은 정확히 기억 못 하지만 보통 안보실 회의에서 격노하신 적은 없다"며 "저희 앞에서 화를 내신 적이 없다"고 거듭 격노설에 대해 부인했다.
고 의원은 "지난해 7월 31일 국가안보실 회의가 끝나고 02-800-7070으로 이종섭 국방부장관에게 전화가 간 후 일사천리로 일 처리가 진행됐다"며 "누가 전화했길래 국방부 장관이 움직였느냐"고 안보실 회의가 끝난 뒤 이 장관에게 전화를 건 전화번호의 주인을 물었다. 김태효 차장은 "그것은 제가 잘 모르는 내용"이라며 "대통령 입장에서는 궁금한 게 생기면 어떤 실무자에게든 수시로 전화하신다"고 즉답을 피했다.
고 의원은 정진석 비서실장에게도 해당 유선 전화번호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지만, 정 비서실장은 "(해당 번호를) 처음 듣는다"며 "대통령실의 전화번호는 기밀상 외부로 유출할 수 없게 되어있다"고 잘라 말했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도 "제 번호는 아니다. 제가 알기로 저희는 4자로 시작한다"고 답했다.
민주당 곽상언 의원도 "02-800-7070 번호는 기밀 사항이냐. 아니냐"고 정 비서실장에게 질의했다. 같은 질문이 계속되자 정 실장은 "지금 이 회의는 실시간으로 북(北)에서도 시청하고 있을 것"이라며 "대통령실의 전화번호는 기밀 보안사항"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많은 분들이 대통령실의 7070 번호가 기밀이 아니라고 보고 있는데 대통령실 입장은 다른 것 같다"며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 번호를 누가 어디서 언제 썼는지를 밝히지 않고서는 지나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왜냐하면 이 번호로 전화한 사람이 외압 사건의 핵심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 비서실장은 "제 상식으로는 대통령실 번호를 외부에 유출하는 것이 금기사항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대통령실 번호의 내용을 공개적으로 유출할 권한이 저에게는 없다"고 재차 답변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실의 전화번호는 '기밀사항'이라고 엄호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대통령실 전화번호가 국감장이든 상임위든 문제가 됐던 게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며 "문재인 정권 청와대에서도 울산시장 선거 방해 사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있었다. 국회에서 그때마다 자료 요구를 했고 민주당에서도 계속 기밀 사항이라고 답해왔다"고 방어했다.
민주당은 이날 운영위를 통해 채상병 특검법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여론전을 펼친 데 이어, 이튿날인 2일 국회 본회의에 채 상병 특검법을 상정해 바로 표결까지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해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해병대원 특검법을 이번 본회의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고, 김 위원장에 대한 탄핵안과 방송4법도 신속처리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법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로 맞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택할 경우 의석수를 무기로 '토론 종결권'을 이용해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최종 관문이 남아 있다. 정진석 실장은 이날 운영위에서 "여야 합의에 의해서 특검법이 성안돼야 한다"며 "야당만의 추천으로 이루어진 특검 임명 절차는 대통령의 임명권을 훼손·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권력분립의 원칙에 어긋나고, 그래서 재의요구권을 행사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이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법안은 대통령이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재의요구권은 대통령의 권한인 동시에 의무"라며 "위헌이 분명한데도 재의요구권을 행사 안 했다면 대통령의 직무유기"라고 했다. 여야 합의 없이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윤 대통령이 바로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여야 설전·조롱…"민주당 아버지는 그렇게 가르치나" vs "입 닫으라"
이날 운영위에선 여야 간 설전이 오간 끝에 한 차례 파행이 빚어지기도 했다. 민주당 정을호 의원이 정진석 비서실장을 상대로 질의를 하다 위원장에게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조태용 안보실장의 위증에 대해 국회법에 따라 고발해달라. 거짓말 방지를 위한 처벌방안 등제도 개선도 검토해달라"고 하면서다.
임 의원의 이같은 요청에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은 마이크가 꺼진 상태에서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라고 고성으로 항의했고, 민주당 의원들도 "다른 사람 질의 시간에 이렇게 하는 것이 어디 있나", "기본도 원칙도 없다"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박찬대 운영위원장이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등에게 "입 닫으시면 진행하겠다", "입 닫으라고 했다. 조용히 하라"고 하면서 여당 의원들이 재차 거세게 항의한 끝에 결국 회의가 정회됐다. 박 위원장은 결국 회의 속개 후 "'입 닫으라'는 표현에 기분이 많이 언짢으셨다면 유감을 표명한다"고 유감 표명을 했다.
여야는 회의 시작부터 신경전을 주고받았다. 대통령실의 업무보고 자료 제출 여부를 두고 박찬대 위원장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발언 시간을 제한당하자 강민국 의원은 "이게 (박찬대 원내) 대표님이 말씀한 협치냐"고 반발했다. 박 위원장은 "손가락질 하지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강 의원은 "위원이 얘기하는데 아주 못배웠다. 민주당 아버지는 그렇게 가르치냐"고 비꼬았다. 최근 논란이 된 민주당 강민구 최고위원의 "민주당 아버지는 이재명 대표"라고 한 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강 의원은 본 질의에서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정청래 의원을 겨냥해 "군대도 안 갔다온 정청래 의원이 평생 명예와 긍지로 사는 제복을 입은 군인을 모욕을 주고 압박했다"고 비난하며 정 비서실장에 의견을 물었다. 이에 정 비서실장은 "국회의원의 추궁과 질의도 최소한의 금도를 지켜야 한다"며 "제복을 입은 공직자, 군인에게는 그 명예를 지켜주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라며 동조했다.
정 실장은 한편 이날 회의에서 "정무장관직을 신설해 국회와 정부와의 실효적이고 실질적인 소통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정무장관직 신설 구상을 공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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