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10일(이하 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제안에 기초한 가자지구 전쟁 휴전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휴전안 동의 관련 미국, 이스라엘, 하마스가 각기 다른 입장을 취하고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며 이행에 난관이 예상된다.
미국이 지난달 31일 바이든 대통령이 내놓은 휴전안을 기반으로 초안을 작성한 이번 결의안은 기권한 러시아를 제외하고 나머지 14개 이사국 모두의 찬성으로 이날 긴급회의에서 채택됐다. 결의안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쪽이 "지체 없이, 그리고 조건 없이" 이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결의안엔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휴전을 위한 3단계 휴전안이 담겼다. 1단계에선 즉각적이고 완전한 휴전과 함께 여성, 고령자, 부상자 인질을 석방하고 사망한 일부 인질 유해를 돌려주며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인들 또한 석방한다. 피난민이 된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 북부를 포함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하며 대규모 인도적 지원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분배도 이뤄져야 한다.
특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스라엘이 지난달 지상 침공을 시작한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는 현재 피난민이 몰린 밀집 지역이다.
2단계에선 남은 인질 전원이 석방되고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이 완전히 철수하며 적대행위 완전 중단이 달성돼야 한다. 3단계에선 가자지구에 대한 다년간의 대규모 재건 계획이 시작되고 아직 가자지구에 남아 있는 사망한 인질의 유해가 송환돼야 한다.
안보리는 1단계 협상이 6주 이상 걸릴 경우에도 협상이 계속되는 한 휴전이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가자지구 영토 축소를 포함해 어떠한 인구학적, 영토적 변경 시도도 거부했다.
그러나 휴전안 동의 여부를 둘러싸고 미국, 이스라엘, 하마스가 각기 다른 말을 하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결의안이 조속히 이행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10일 안보리 표결 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스라엘이 휴전안에 이미 동의했다며 "하마스가 상정된 휴전안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그는 하마스가 동의한다면 "전투가 오늘 끝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동 순방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10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기자들에게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휴전안을 "이스라엘이 받아들였다"며 휴전안에 "동의하지 않은 유일한 당사자는 하마스"라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의 안이 "이전에 하마스가 동의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며 역내 정부들이 하마스에 휴전안 동의 압박을 넣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 국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날 이스라엘로 이동한 블링컨 장관이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협상을 타결할 준비가 되어 있음"에 찬사를 보냈고 "(휴전안을) 받아들일 책임은 하마스에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휴전안을 받아들이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은 상태다. 10일 안보리 투표 뒤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표부의 레우트 샤피르 벤 나프탈리 조정관은 "우리는 모든 인질을 돌려 받고 하마스의 군사 및 통치 역량을 해체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며 "이러한 목표가 달성되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시간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는 무의미하고 끝없는 협상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바이든 대통령이 휴전안을 제시한 다음날 하마스 군사 및 통치 역량 파괴, 모든 인질 석방 등 조건이 충족되기 전엔 이스라엘은 "영구 휴전"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0일 안보리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진 러시아의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대사는 이스라엘 지도부의 이러한 입장을 상기시키며 "이스라엘이 동의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모호함" 탓에 결의안 채택에 찬성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전날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의 이스라엘 전시 내각 탈퇴로 협상에 반대하는 극우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스라엘 전후 가자지구 통치 관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이견 등으로 이러한 결정을 내린 간츠는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 탈퇴를 위협하는 극우에 휘둘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전시 내각에서 비교적 온건한 의견을 제시해 왔다. 간츠가 전시 내각 탈퇴를 밝히자 극우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은 곧바로 자신의 전시 내각 합류를 요구하기도 했다.
오히려 하마스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반겼다. 10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하마스는 성명을 내 "하마스는 가자지구의 영구적 휴전, 완전한 철수, 수감자 교환, 재건, 피난민의 거주지로의 귀환, 가자지구의 인구학적 변화 혹은 영역 감소 거부, 가자지구 주민들에 필요한 지원 제공을 확인한 안보리 결의안에 포함된 내용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가자지구의 또 다른 무장조직 이슬람 지하드도 결의안 내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도 이번 결의안 채택을 환영했다.
10일 <로이터>는 하마스 고위 관리 사미 아부 주흐리가 "우리는 미국 정부가 점령군(이스라엘)에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끝내라는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는 "하마스 운동은 전쟁 종식을 보장하는 모든 이니셔티브에 긍정적으로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하마스, 이스라엘의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지난 8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인질 4명을 구출하며 적어도 수십 명의 가자지구 주민이 죽거나 다친 것이 휴전 협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지켜봐야 한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군이 인질 구출 과정에서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 난민촌을 공격해 주민 274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했다. 이스라엘군은 사상자를 100명 미만으로 보고 있으며 사상자 중 무장 조직원이 포함돼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관련해 10일 안보리 표결 뒤 나프탈리 조정관은 인질들이 주거용 건물에 억류된 동안 "소위 무고한 민간인들"이 간수 역할을 했다고 비난하며 가자지구 주민 희생을 정당화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스라엘은 민간인 피해를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하마스에 협력하고 그들의 전쟁 범죄에 가담한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와) 전혀 연루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일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정부 내에서도 하마스의 휴전 협상 동의에 대해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미 정부 일부 당국자들이 결국 최종 결정은 가자지구 내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가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신와르가 하마스 해체로 이어질 수 있는 휴전안에 동의하기보다 이스라엘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킨 데 만족하고 순교자로서 죽음을 택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반면 낙관적인 이들은 협상 타결 땐 신와르가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해방한 영웅으로 여겨질 수 있으며 이스라엘의 이번 인질 구출 작전으로 협상 없이도 인질이 풀려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돼 하마스가 약간의 수정만 있으면 협상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또 민감한 주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익명을 요구한 4명의 당국자를 인용해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완전한 해체를 공언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마스 쪽이 이스라엘이 영구적 휴전 관련 합의를 준수할 수 있는 서면 보장을 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이스라엘 지도자가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보는 외교관은 거의 없으며 결국 미 당국자들이 협상 중재국인 카타르와 이집트에 하마스에 현재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에 카타르와 이집트 당국자들이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에게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하니예와 다른 하마스 당국자들이 카타르를 떠나도록 요구 받을 것이라고 압박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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