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서부 피난민촌 공격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이 다시금 끓어 오르며 라파 공격 중단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해당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가 "비극적 사고"라며 드물게 이를 인정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27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 연설에서 "우리는 라파에서 100만 명 가량의 민간인을 대피시켰다"며 "비극적이게도, 비전투원에 대한 피해를 막으려는 우리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제 사고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비전투원 피해는 비극"이라며 "철저히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전날 이스라엘의 라파 서부 탈 알술탄 지역 피난민촌 폭격으로 수십 명이 숨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가자지구 보건부는 폭격으로 최소 45명이 숨지고 249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이달 초부터 라파 동부 지역에서 지상전을 벌이고 대피령을 내리며 라파 서부 지역으로의 피난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탈 알술탄 피난민촌에도 수천 명의 난민이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해당 피난민촌은 이스라엘 지정 대피 구역 밖에 있었고 공습 전 떠나라는 명령도 없었으며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지정한 인도주의 구역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인접해 있어 많은 난민들이 이곳을 안전지대로 믿고 있었다고 전했다.
국제사회는 인도주의적 재앙을 우려해 이스라엘에 100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몰린 라파를 공격하지 말 것을 촉구해 왔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난민촌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은 "이스라엘에 (라파 공격에) 신중을 기할 것을 촉구했던 사람들이 우려했던 바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가족을 잃은 생존자들은 산 채로 불타는 이들을 구하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가자지구 중부 출신 피난민 모하마드 알할리아(35)는 당시 장을 보러 나갔다가 거대한 섬광과 굉음, 이어지는 불꽃을 보고 급히 피난민촌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는 "불길이 치솟고 시체가 불타고 사람들이 사방에서 달려오고 도움을 구하는 소리가 커져갔"지만 "그들을 구할 힘이 없었다"고 신문에 말했다. 이 공격으로 네 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7명의 친척을 잃은 그는 "주검이 불에 타 오늘 아침까지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얼굴이 망가져 이목구비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고 했다.
가자지구 북부 출신 피난민 아흐메드 알랄(30)은 <워싱턴포스트>에 천막에서 가족과 함께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무렵 큰 폭발음을 들었고 난민촌이 거대한 혼란에 휩싸였으며 어린이들이 몸에 불이 붙은 부모를 구해 달라며 달려 왔다고 전했다.
그는 주변에 "토막난 주검, 불 탄 주검, 머리 없는 아이들, 녹아내린 듯한 주검"이 널려 있었다며 "몸에 불이 붙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목격하고도 살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모하마드 아부 샤흐마(45)는 공습으로 그의 형이 가슴과 목에 파편을 맞아 숨지고 3살 조카는 머리에 파편을 맞아 목숨을 잃었으며 9살 조카는 부상을 입었다고 신문에 전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적신월사가 운영하는 야전병원 인근에 있던 프리랜서 언론인 아들리 아부 타하(33)는 <뉴욕타임스>에 두 번의 큰 폭발음이 들린 뒤 사망자와 부상자가 병원에 도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몇몇 부상자는 하나 이상의 팔다리가 없는 채 도착했고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탈 알술탄 보건소에 있던 의사 마르완 알함스는 자신이 본 사망자와 부상자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였다고 신문에 말했다. 그는 "주검 상당수가 심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고 사지가 절단돼 있었으며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라파 공격 즉시 중단을 다시금 촉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라파의 많은 피난민을 죽인 이스라엘 공습에 격분했다. 이러한 작전은 중단돼야 한다"며 "국제법에 대한 완전한 존중과 즉각적 휴전을 촉구"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이번 공습을 "가장 강력한 말로 규탄한다"며 이스라엘에 라파 공격 중단을 명령한 국제사법재판소(ICJ) 결정 준수 및 "공격 즉시 중단"을 촉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을 "규탄한다"며 "이 공포는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가자지구 전쟁 휴전 중재국인 카타르 정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폭격이 현재 진행 중인 중재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고 가자지구의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휴전 및 수감자와 억류자 교환을 위한 합의 도출을 방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미국은 이번 공격이 하마스 제거를 위한 것이었다는 이스라엘의 명분을 비호하며 라파 공격 중단을 촉구하진 않았다. <로이터>는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이 "이스라엘은 민간인 보호를 위해 가능한 모든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도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쫓을 권리가 있다. 우리는 이번 공습으로 이스라엘 민간인 공격에 책임이 있는 두 명의 고위 하마스 테러리스트가 죽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만 미 매체 <악시오스>는 미 정부가 이번 피난민촌 공격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설정한 "레드 라인"을 넘은 것인지 여전히 평가 중이라고 두 명의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매체는 이달 초 바이든 대통령이 라파를 전면 공격할 경우 이스라엘에 공격용 무기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강수를 뒀지만 지난주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라파 공격 계획에 대한 보고를 들은 뒤 우려의 상당 부분이 해소돼 미국이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에 대한 반대 입장을 완화한 상황이었다고 한 미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설명했다.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정밀 탄약"으로 공격을 진행했다고 밝힌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일방적으로 설정한 가자지구 서부 지중해 연안 알마와시 '인도주의 구역'과 이번 공습 위치를 소셜미디어(SNS)에 공개하며 인도주의 구역에 공습을 가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스라엘 국방 당국자는 <악시오스>에 폭탄이 피난민촌에서 40m 가량 떨어진 곳에 투하됐고 이로 인해 화재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 CNN 방송은 이스라엘 쪽이 바이든 정부에 정밀 탄약을 사용했음에도 폭발로 인한 파편이 인근 연료 저장고에 불을 붙이며 피난민촌에 화재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고 미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AP> 통신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알제리의 요청에 따라 28일 이번 사건에 대한 긴급 회의를 갖기로 했다고 두 명의 안보리 외교관을 인용해 전했다.
국제사회의 강한 비난에도 네타냐후 총리는 27일 연설에서 "우리는 모든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전쟁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로이터>는 27일 이스라엘 전차(탱크)가 라파 동부 및 중부 지역에 대한 포격 강도를 높여 최소 8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보건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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