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차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구당 부활 문제를 놓고 당내 논쟁이 벌어질 태세다. 앞서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구당 부활을 주장하고 당권주자인 나경원·윤상현 의원도 적극 찬성 입장을 밝혔지만,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 등 당 소속 광역단체장과 김기현 전 대표 등 중진들도 공개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오세훈·홍준표·김기현·김재원, 지구당 부활론에 공개 반대
특히 지구당 폐지의 근거가 된 정치개혁안이 이른바 '오세훈법'으로 불렸던 만큼, 오 시장의 논쟁 참전은 눈길을 끌었다. 오 시장은 31일 SNS에 쓴 글에서 "지구당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극 제왕적 당대표를 강화할 뿐"이라며 "원외 정치인들이 겪는 어려움이나 형평성 문제를 알기 때문에 지난 며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여야가 함께 이룩했던 개혁이 어긋난 방향으로 퇴보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려 한다"고 했다.
오 시장은 "오세훈법이라고 불리는 정치자금법·정당법·공직선거법 개정안의 당초 취지는 '돈 먹는 하마'라고 불렸던 당 구조를 원내정당 형태로 슬림화해 고비용 정치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보자는 것"이라며 "과거 지구당은 지역 토호의 온상이었다"고 지적했다.
오 시장은 특히 "여야가 동시에 지구당 부활 이슈를 경쟁적으로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당 대표 선거에서 이기고 당을 일사불란하게 끌고 가려는 욕심이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이라고 해 눈길을 끌었다. 한동훈 전 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모두 지구당 부활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힌 것을 싸잡아 겨냥한 셈이다.
오 시장은 "지구당을 만들면 당대표가 당을 장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국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라며 "러시아 공산혁명, 중국 문화대혁명, 통합진보당 사태 등에서 우리가 목도했듯 극단적 생각을 가진 소수가 상식적인 다수를 지배하는 가장 우려스러운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동훈 비대위 출범 직전까지 당 대표를 지냈던 김기현 전 대표고 같은날 SNS에 쓴 글에서 "일부 정치권에서 지구당 부활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 필요성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지금 고금리·인플레·일자리 문제로 고단한 서민들 입장을 고려한다면 정치적 이익을 염두에 둔 지구당 부활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표는 "정치 혁신안과, 국민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민생 현안은 뒷전으로 한 채,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른 지구당 부활을 주장하는 것이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 역시 한 전 위원장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앞서 반대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이날 재차 SNS 글을 통해 "지구당 폐지는 정치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된 지구당을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여야가 합의해 2004년 2월 일명 오세훈법으로 국회를 통과한 것이고 그 폐지의 정당성은 헌법재판소까지 가서 확정되기도 했다"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지구당 부활 논쟁은 반(反)개혁일뿐만 아니라 여야의 정략적인 접근에서 나온 말이다. 결국 정치 부패의 제도적인 틀을 다시 마련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홍 시장은 "민주당은 개딸정치를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고, 우리당은 전당대회 원외 위원장들의 표심을 노린 얄팎한 술책에 불과하다"며 "정치가 앞으로 나가는 정치가 되지 않고 부패로 퇴보하는 정치로 가려고 시도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주장했다.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박근혜 정부)도 이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정치권에 있는 분들 중에 지구당이 실제 운영되고 있을 때 정치를 한 분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지구당이 존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경험하지 않고, 막연히 '지구당이 운영되면 중앙당에서 자금도 지원해 주고 지구당 위원장들이 후원회를 만들어서 후원금도 거두고 해서 정치활동이 좀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결국은 지구당 운영이 소위 '돈 먹는 하마'가 되고, 그것이 오히려 신진 정치인들을 굉장히 어렵게 만드는 수단이 되고, 더 나아가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항상 따라서 굉장히 고통받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전 수석은 "지구당 부활 문제는 결코 정치개혁이 아니다"라며 "'정치 현실상 지구당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럴 수는 있다고 보는데 (이것이) '정치개혁'이라고 하는 데 동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구당이 있는 나라가 잘 있나? 일본식 정당 외에는 거의 지구당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공산당이나 조선로동당 같은 사회주의 국가는 다 있지만, 이건 좀 저는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찬성론 진영은 한동훈·나경원·윤상현 등…안철수는 "지구당까지는 아니지만…"
앞서 지구당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총선 패배 후 잠행을 이어오고 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었다. 한 전 위원장은 최근 수도권 원외 지역위원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구당 부활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데 이어, 지난 30일 SNS에 올린 글에서 공개적으로 같은 입장을 밝혔다.
한 전 비대위원장은 글에서 "'차떼기'가 만연했던 20년 전에는 지구당 폐지가 '정치개혁'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기득권의 벽을 깨고 정치신인과 청년들에게 현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같은날 나경원 의원도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지구당 부활 문제에 대해 "당연히 해야 된다"며 "저도 원외 4년 해보니까 중요한 것은 정치자금 모금 문제다. 원내 의원들은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고 원외는 못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윤상현 의원도 역시 30일 당 의원 워크숍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역당, 지역정치 활성화를 통해서 정치신인들이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는 장벽을 낮춰주겠다는 정치개혁 법안을 발의했다"며 "지구당이 과거에 '돈 먹는 하마'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지역정치 활성화 법안'(이라고 명명했다)"고 했다.
윤 의원은 "(현 상황에서는) 원외 위원장들이 지역에서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문자도 보낼 수 없고, 당협 사무실도 만들 수 없고, 한 마디로 정치 신인들 진입장벽을 쌓게 하는 게 현재의 시스템"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안철수 의원은 같은 워크숍 자리에서 해당 사안에 대한 입장을 묻자 "처음에 지구당 관련 여러 문제가 많아서 폐지하는 법안이 예전에 발의됐는데, 그 이후로 김영란법이 발의되면서 여러가지 부정부패나 폐해가 많이 줄었고, 작년에는 지방의원들이 사무실도 열고 보조금·기부금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 분들을 관리하는 당협위원장이 사무실도 열 수 없고 후원금도 받을 수 없다"며 "예전에 비해서는 부작용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이제야말로 지구당은 안 되더라도 당협위원장이라든지 지역위원장들이 사무실도 내고 후원금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함으로서 정치 신인들이 새롭게 등장해서 기존의 정치인과 경쟁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지구당은 아니더라도'라고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찬성 취지에 가까운 입장으로 풀이됐다.
당 지도부 차원의 논의는 아직 없는 상태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구체적 논의는 제가 듣지 못했다"며 "아직 지구당과 관해서 당 내에서 활발하게 많은 의견이 개진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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