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건설', '한화', '현대건설', 'DL이앤씨', '중흥토건', '현대삼호중공업'. 노동계에서 2024 최악의 산재 사망사고 기업으로 선정한 곳들이다. 변함없이 건설업에서 사망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고, 예방할 수 있는 추락사고도 지속되고 있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대부분 하청업체 소속인 것도 바뀌지 않았다. 과거에 살인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업들이 지금도 그런 것을 보면, 이 기업들에게 노동자 안전은 그저 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산업재해가 반복되고 있고 차별적 위험도 변함없지만 새로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살인기업에 관대한 '검찰'과 함께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에 선정된 곳은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청년들' 이었다. 배달원들이 하나의 음식점에 속하지 않고 플랫폼 기업의 디지털 기술에 의한 통제를 받기 시작한 것은 스마트폰이 일상화되고 난 이후다. 이런 변화는 배달의 민족을 산업재해 발생 1위 기업으로 만든 중요한 계기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체감하는 사회 변화는 상당하다. 노동의 양상도 마찬가지인데, 기존의 모순과 위험은 그대로이거나 심화되고 있고 거기에 새로운 양상과 위험이 더해졌다.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준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한편에서 인간의 노동을 감시하고 자동화하면서 노동 강도를 높이고, 자율성을 빼앗으며, 대체하기도 했다.
플랫폼 기업의 많은 노동자들은 어떻게 일감이 배정되는지, 단가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지, 등급 평가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언제 어떻게 불이익을 받게 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알고리즘의 통제를 받는다. 사용자들은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 알고리즘 뒤에 숨어 노동자들을 최대한 쥐어짜면서도,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알고리즘의 통제가 전부가 아니다. 쿠팡과 같이 시간당 업무량을 체크하며 독촉하고, 화장실에 가는 것까지 눈치 보도록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의 이면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있었다. 게다가 앞으로는 AI의 영향이 커지면서 노동의 형태와 질, 이득과 피해의 배분이 달라질 전망이다.
한편, 건설업에서 사망한 노동자 10명 중 1명은 이주노동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갈수록 이주노동자의 규모가 늘어나고, 한국 사회와 기업의 이주 노동 의존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제도적, 비제도적 차별이 만연한 구조 속에서 위험의 이주화 경향이 나타난다. 출근하는 사람은 국적이나 원하청 소속 등과 상관없이 모두 안전하고 존엄하게 일하다가 퇴근할 수 있어야 하며, 국가와 기업에는 그 책임이 있다.
이주노동자를 타인에 위치시키고 한국 사회를 위한 도구로 설명하는 것이 마뜩잖지만, 그러한 인식을 따르더라도 지금의 방향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짚고 싶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의존은 지속해서 심화되어 왔지만, 지금이 최고치가 아니다. 저출생 고령화에 기반한 인구 감소가 우리나라 인구 구조 변화의 유력한 시나리오라고 한다면, 이때 이주노동자들은 단순히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노동력 차원을 넘어,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변화와 이주노동자들 간 상호연관성이 가지는 잠재력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으로 인해 지속해서 소진되고 있다. 한국은(한국만의 일은 아니지만) 이미 장기적인 저성장에 진입했고, 이대로라면 앞으로 사회경제 모든 영역에서 활력이 떨어질 텐데, 그렇지 않아도 온갖 차별과 위험이 도사리고 자신을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를 보고 '코리안 드림' 같은 걸 품고 이들이 한국에 올 이유가 없다. 각국의 인적자본 확보 경쟁이 치열해진다면 더더욱.
훗날 돌이켜 보았을 때, 전 세계적 감염병 위기와 함께 시작한 2020년대는 국내외적으로 격변의 시기로 기억될 것으로 생각한다. 다르게 말하면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미래의 양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기술의 발전과 인구구조의 변화 및 저성장, 그리고 기후위기의 영향을 고려하면 새로운 노동에 대한 모색이 시급하다. 이를테면, 닥쳐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관계 맺고, 어떤 권리를 보장할 것인가 등을 노동에 국한하지 않고 전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덧붙이자면, 이 사회에서 이주민이 증가하는 과정에서 전혀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문제와 고통을 최소화하고 극복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혐오 프레임으로 문제를 확대하고, 비난하고 배척하는 태도는 결국 더 큰 고통과 비용을 가져올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바뀌는 가운데, 국가나 기업의 일부 사람들에게만 그 편익이 집중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기술의 진보가 곧 사람들의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질 것이라 낙관하지만,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은 책 <권력과 진보>를 통해 역사적으로 기술의 진보로 인한 생산성 증대의 열매는 왕족과 영주, 수도원, 자본가 등에게 집중되고 보통의 사람들은 생활 수준이 나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더 착취당했음을 조목조목 제시한다. 기술의 진보는 결코 저절로 모두의 번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노동자들이 조직되어 기득권에 대항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게 되면서 기술 진보 및 생산성 증대의 편익을 일부라도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사회 격변의 시기에 함께 논의하고 합의하고 대응해야 할 내용은 더 다양해졌지만, 핵심은 그대로다. 현실을 해석하고 문제화하며, 대안을 내놓는 데 과도한 영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에 맞서 사회·노동권력의 자장을 넓히고 압박하는 것 말이다.
에릭 올린 라이트의 사회권력 강화의 경로를 참고해 우리는가 나아갈 방향을 살펴보자면, 1) 먼저 사회·노동권력이 직접적으로 자원의 배분, 생산과 분배에 대한 통제에 관여할 수 있고, 2) 경제권력을 압박해 우리의 조건을 개선하며, 3) 국가권력을 압박해 우리의 조건을 개선하는 제도를 만들도록 하거나 경제권력을 규제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틀에서 몇 가지만 예시로 들자면, 사회·노동권력이 직접적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 기업과 투자자들이 무엇에 투자하고, 무엇에 투자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것, 직접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데 관여하기 위해 사회·노동권력이 정치세력화 하는 것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사항은, 그 경로가 어떠하든 간에 '젊고 신체 건강한 정규직 한국인 남성'뿐 아니라 주변화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과 노동절을 맞이해 거리로 나온 라이더들과 이주노동자의 목소리에 동참하는 것, 그리고 아직 들려지지 않는 목소리를 조직하는 것이 새로운 노동 환경에서 모두의 번영으로 가는 밑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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