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결과는 '현상 유지'로 요약된다. 거대 양당 의석 수는 21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당시 의석수에 거의 고정되거나 소폭 줄어들었다. 양당 의석에서 줄어든 부분과 정의당(6석)이 사라진 자리는 조국혁신당(12석)과 개혁신당(3석), 진보당(3석)이 채우게 됐다.
11일 오전 총선 개표가 100% 완료된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와 위성정당 비례대표 당선자를 합쳐 171석의 당선자를 냈다. 지역구 당선자는 161명,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당선자 중 민주당으로 옮겨올 이는 10명이다.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개표 완료 시점에서 더불어민주연합이 14명을 당선시켰다. 이 가운데 2명은 진보당, 2명은 새진보연합(기본소득당 1명, 사회민주당 1명)으로 각각 '원대복귀'할 예정이다.
민주당 단독으로 171석의 의석을 확보했지만, 21대 총선 직후 177석으로 시작한 것에 비하면 의석이 다소 줄어든 결과다. 지난해 21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당시 민주당 의석은 168석, 민주당 출신 무소속(6명)을 합치면 174석이었다.
국민의힘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위성정당) 합산 108석을 얻었다. 지역구 90석,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18석이다. 지난 정기국회 당시 국민의힘 의석이 111석, 여당 출신 무소속 2명(하영제·황보승희)였던 것에 비하면 역시 의석 수가 소폭 줄었다.
조국혁신당은 비례대표로만 12석을 얻었다. 총 46석인 비례대표 의석은 국민의미래 18석(최종 득표율 36.67%), 더불어민주연합 14석(26.69%), 조국혁신당 12석(24.25%), 개혁신당 2석(3.61%)으로 배정된다. 지역구에서 각 1명의 당선자를 낸 개혁신당과 진보당은 비례대표 의석 2석씩을 더해 두 정당 모두 3석으로 22대 국회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의석 수 분포에 따른 정치적 의미 역시 21대 국회 하반기와 완전히 같다. 민주당은 단독 과반을 차지했지만, 패스트트랙 강행처리(180석이 요건)를 위해서는 다른 야권 정당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여소야대에 처했지만, 이른바 '개헌저지선'으로 불리는 자체 100석 이상을 확보해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여당과 다른 보수성향 의석을 다 더해도 패스트트랙 저지선인 120석은 채울 수 없다.
여야가 지난 4년간 펼친 극단 대결의 정치에 대해 민심이 보낸 경고임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앞으로의 4년간도 비슷한 양상이 반복될 조짐이기도 하다. 여야 의석 수 분포가 비슷하고, 양측의 대립이 완화될 소재는 별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비례대표 선거 결과나 여야 지역구 당선자 면면을 보면 이른바 '정서적 양극화'의 심화가 21대 국회 때보다 더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서적 양극화란 정책·노선 차이는 크지 않은데도 상대 정당에 대한 거부감이 지나치게 커져,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잘못에 눈을 감거나 나아가서는 민주주의 원칙을 포기하기까지 하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대립 격화와 '의사당 폭동' 배후로 지목받는 트럼프의 대선후보 재선출 상황이 대표적 예시로 꼽힌다.
앞서 김성연 건국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학술지 <한국정치연구> 최근호에 낸 논문에서 최근 3차례 대선을 거치며 한국 유권자들의 정서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상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인들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은 대의민주주의 작동의 핵심 기제"라며 "만일 유권자들의 선택이 당파적 적대감에 의해 편향된다면, 이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포퓰리즘 연구가 전공인 이상경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정서적 양극화는 전 지구적 현상이며 이는 포퓰리즘, 극우 민족주의 발호와 무관하지 않다"면서 "포퓰리즘의 핵심은 엘리트를 타도의 대상으로, 민중을 그 타도의 주체로 여기며 포퓰리스트 정치인 자신을 민중과 동일시하게끔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국혁신당은 '검찰독재 종식'을 주장하며 엘리트(검사)와 민중을 대비시켜 왔고, 조국 대표가 지난 8일 "야권이 200석을 갖게 되면 김건희 씨(윤석열 대통령 영부인)가 법정에 출두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공언하는 등 대중 정서를 파고드는 양태를 보이기도 했다.
진보당은 "일제 식민지배 잔재를 청산하고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해체해 민족자주권을 확립한다"는 강령을 채택하는 등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정당이며, 총선 직전 강성희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항의하다 이른바 '입틀막 퇴장'을 당한 사건은 이 정당의 대중적 인지도를 올리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개혁신당에 대한 우려는 더 크다. 이른바 '이준석 신당'으로 불리는 이 당을 이끄는 이준석 대표는 지난 2021년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선될 때부터 '안티-페미니즘(反여성주의)'를 자신의 브랜드로 내걸어 대중적 성공을 거둔 한국 최초의 정치인이었다. 개혁신당 창당 후에도 이같은 방향성은 그대로 유지됐다. (☞관련 기사 : "여성할당제, 비동의간음죄 반대"…또 '안티페미' 꺼낸 개혁신당)
이같은 노선을 내걸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는 점은 한국 시민사회의 주의를 끌고 있다. 이미 지난 2021년 당시부터 이 대표의 정치적 약진을 유럽 극우세력의 발호에 비기는 지적(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있었고, "여성, 노인,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여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형적 극우 포퓰리즘을 한국 정치에서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구사한 인물"(장석준 산현재 기획위원)이라는 평을 받는 등 현재 한국에서 유럽·미국식 우파 포퓰리스트에 가장 가까운 모델로 꾸준히 꼽히기도 했다.
이상경 교수는 "안티-페미니즘, 여성혐오와 포퓰리즘의 결합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이미 전례가 있는 것"이라며 "(이준석 신당의) 안티-페미니즘 전략도 포퓰리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나아가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이것이 일자리 감축, 재정-복지 축소로 이어질 경우 이로 인해 타격을 받은 남성들 일부가 반여성주의 포퓰리즘에 더 강력한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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