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구호 식량을 전달 중이던 구호단체 활동가 7명이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숨진 것을 두고 국제적 비난이 쏟아지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또다시 궁지에 몰렸다.
2일(이하 현지시간) 네타냐후 총리는 "안타깝게도 어제 가자지구에서 우리 군이 의도치 않게 비전투원에게 해를 입힌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전쟁 중엔 이런 일이 일어난다"며 관련해 "철저한 조사를 진행 중"이며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알발라에서 국제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 차량을 이스라엘이 폭격해 활동가 7명이 숨진 사건에 대해 이례적으로 이스라엘 쪽 책임을 인정한 발언으로 보인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도 3일 영상 성명을 통해 "월드센트럴키친 활동가들에게 의도치 않게 해를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 그는 초기 조사 결과 "분명히 하고자 하는 건 이번 폭격이 월드센트럴키친 구호 활동가들을 해치고자 하는 의도에서 수행된 게 아니라는 점"이라며 "전쟁 중 밤에, 매우 복잡한 상황 속 오인에서 비롯된 실수였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다"고 해명했다.
1일 데이르알발라 창고에 구호품 100톤(t)을 하역하고 떠나던 월드센트럴키친 활동가들은 단체 표식이 새겨진 차량을 이용했고 이스라엘군과 미리 동선을 조율했음에도 피격 당해 목숨을 잃었다. 월드센트럴키친은 가자지구 활동 즉시 중단을 선언했고 <로이터> 통신은 2일 키프로스 당국자를 인용해 하역하지 못한 240톤 가량의 구호 식량을 실은 배가 키프로스로 돌아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싣고 간 물자의 3분의 1밖에 전달하지 못한 셈이다.
월드센트럴키친은 이스라엘군의 봉쇄 및 검문, 구호 전달 체계 파괴, 치안 공백 등으로 가자지구 북부에 구호 물자가 거의 전달되지 못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지난달부터 지중해를 통해 가자지구에 배로 구호 식량을 전달해 왔다. 단체의 두 번째 해상 구호품 전달 시도였던 이번 수송 구호품엔 쌀, 파스타, 밀가루, 야채 통조림을 비롯해 무슬림들이 이슬람 금식 성월인 라마단 기간 중 낮 동안의 금식을 끝내고 저녁 식사(이프타르) 때 즐겨 먹는 대추야자도 포함돼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위협을 느낀 다른 구호단체도 가자지구 활동 중단을 선언하며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 심화가 우려된다. 미국에 기반을 둔 의료구호단체 프로젝트호프는 2일 성명을 내 "월드센트럴키친과 연대하고 활동가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보안 상황을 재평가하기 위해 3일간 데이르알발라와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의 모든 프로그램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미 구호단체 근동난민지원(Anera)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과 가자지구에서 다른 구호 활동가들 살해로 "안전한 구호 전달이 더이상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가자지구에서 인도주의 활동을 중단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는 국제 인도주의 구호단체 국제구조위원회(IRC) 수석 부회장 시아란 도넬리가 IRC는 가자지구에서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면서도 "이번 공격이 구호 활동가 파견 의지를 위축시키지 않는다면 놀라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으로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강한 비난에 직면했다. 더구나 사망자 중 대부분이 전쟁 중 이스라엘을 가장 강하게 지지했던 나라들인 미국과 영국 출신이다. 월드센트럴키친이 3일 공개한 사망자 명단을 보면 이 공격으로 영국인 3명, 미국 및 캐나다 이중 국적자 1명, 호주인 1명, 폴란드인 1명, 팔레스타인인 1명이 숨졌다.
이번 공격으로 자국민 3명이 사망한 영국은 2일 런던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해 "명백히 규탄"하고 "신속하고 투명한 조사"를 요구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도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외무장관에게 월드센트럴키친 활동가들의 죽음은 "전혀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2일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해 "구호 활동가 살해에 경악했다"고 밝히고 "투명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수낵 총리는 가자지구에서 이미 너무 많은 구호 활동가들과 민간인이 목숨을 잃어 "상황이 점점 더 견딜 수 없게 되고 있다"며 "하마스 퇴치는 가자지구에 인도주의적 재앙을 허용하는 것에 의해 달성되지 않는다"고 일침을 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스라엘을 작심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일 성명을 내 "월드센트럴키친의 인도주의 활동가 7명의 죽음에 격분했고 비탄에 빠졌다"며 "더 비극적인 것은 이것이 단독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분쟁은 구호 활동가 사망자 수 측면에서 근래 최악의 것 중 하나"라며 "이스라엘이 민간인에게 절실한 도움을 전달하려는 구호 활동가들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또한 민간인 보호를 위한 충분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미국은 민간인 사상을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하마스에 대한 군사 작전과 인도주의적 작전의 충돌을 완화할 것을 거듭 촉구해 왔다"고 강조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언론 브리핑에서 해당 공격에 미 정부가 "분노했다"고 밝히고 "200명 이상의 구호 활동가가 이 분쟁 중 살해 당했다"며 "이번 사건은 더 큰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가자지구에서 구호 물자 분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에 대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앤서니 알바니즈 호주 총리도 이번 일은 "전혀 용납될 수 없다"며 이스라엘의 책임을 물었다.
이번 사건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가자지구 휴전과 민간인 보호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2일 영국의 앤드류 미첼 개발·아프리카 담당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은 인도주의적 접근을 확대하기 위해 즉각적이고 긴급하게 효과적인 분쟁 완화 매커니즘을 마련해야 한다"며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교전 중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낵 총리는 "영국은 이스라엘이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한 제한을 종료하고 유엔 및 구호 기관들과의 갈등을 피하며 병원과 수도망과 같은 필수 기반시설을 복구하고 시민들을 보호할 즉각적 조치를 취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캐머런 장관도 이스라엘이 "현장 구호 활동가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대대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국내에서도 인질 협상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에 직면해 있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서 2일 밤까지 3일 연속 인질 가족들과 반정부 활동가들 등이 모여 네타냐후 총리가 인질 협상의 걸림돌이라며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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