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다시 공화당 대선후보로 지명된 건 저에게 2016년의 당선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트럼프는 여러 면에서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았고, 그 결과 2020년 재선이 좌절됐으며, 심지어 자신이 패배한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음모론을 퍼뜨리고 국회의사당 폭동까지 사주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란 선동 혐의로 하원에서 탄핵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기성 사회와 제도에 대한 불만, 분노, 불신으로 가득 찬 그의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유일한 지도자라고 확고히 믿었던 모양입니다. 성추문도 형사소추도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트럼프의 독주를 막지 못했습니다. 트럼프에 대한 비판은 모두 당파적 편견이나 음모로 일축되었습니다.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지목하는 정치적 반대자, 언론인, 소외된 지역 주민 등을 적으로 규정하고 맞서 싸웠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열성 지지층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포퓰리즘, 민족주의,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한 반항과 전복을 앞세운 팬덤 마케팅에 충실했습니다. 지금 지지율만 놓고 보자면 그런 그가 다시 미국 대통령직에 오를 가능성이 절반쯤은 돼 보입니다.
잠시 책 하나 소개하고 갈까 합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정치 분석가인 에즈라 클라인(Ezra Klein)이 쓴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Why we’re polarized)>입니다. "선택지가 단 두 개뿐인 정치는 우리를 어떻게 바꾸어놓았을까?" 이 책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찾아보고 싶어서입니다.
저자는 '양극화'가 현대 미국 사회를 정의하는 특징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념이나 노선, 지지층의 구성 등 공화당과 민주당은 과거에 비해 더욱 극단화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정당과 정치인이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전통적으로 접근했던 방식인 '설득(persuasion)'은 효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대신 현대의 정치 캠페인과 선거는 자신들의 지지 기반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는 '동원(mobilization)'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입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유권자가 결심이 선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와 관련해서 그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은 우리 편을 자극하는 일이었다." 조시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 전략가였던 매슈 다우드(Matthew Dowd)의 깨달음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려 보죠. 우리나라에서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이거나 한 개인의 이념성향과 지지하는 정당 간의 관계는 어떨까요? 한국갤럽의 3월 셋째 주(19~21일) 여론조사 결과, 자신이 보수적이라고 응답한 사람 중 69%가 국민의힘을 지지했습니다. 진보 성향에서는 60%가 더불어민주당을, 15%가 조국혁신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수 응답자 중 64%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라고 답했지만, 진보에서는 8%만 긍정 평가했습니다. 조사 결과를 보지 않더라도 '보수-국민의힘', '진보-민주당'의 관계와 대통령에 관한 평가는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1년간 우리나라 경제가 현재에 비해 어떨 것으로 보십니까? 좋아질 것, 나빠질 것, 비슷할 것.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응답자가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와 관련될 거라고 누군가가 주장한다면, 여러분은 그 의견에 선뜻 동의하시겠습니까?
다시 조사결과를 보겠습니다(한국갤럽, 3월 19~21일).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사람은 7%만이 경기·살림살이가 '좋아질 것'이라고 답한 데 비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40%가 경기를 낙관적으로 전망했습니다. 민주당 지지층은 66%가 비관적으로 보았으나,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그 비율은 18%에 불과했습니다. 지지하는 정당에 따른 의견 차이가 경제 체감의 주요 변수로 여겨지는 직업이나 생활 수준보다 훨씬 크게 나타났습니다.
이념 성향이 특정 정당에 대한 선호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개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판단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면, 지지 정당은 그 사람의 정체성 일부를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보수 성향의 유권자라면, 이번 국회의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하기 위해 꼭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의 정책이나 공약이 무엇인지 애써 찾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의회 권력이 또다시 야권에 넘어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게 제1의 선택 기준이니까요.
여기서 어떤 정치인이 등장해 상대를 악마화하고 편 가르기를 시도한다면, 대번에 팬덤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일부 유튜브 채널 등 정치적 경도가 뚜렷한 미디어는 강력하고 충성스러운 팬덤을 조장하고 장려합니다. 그럴수록 구독자가 늘어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열성적인 팬덤은 '내 편'을 대표하는 그 정치인이 더욱 극단화되도록 추동합니다. 이렇게 양극화와 팬덤은 끝없이 맞물려 악순환합니다.
이제 우리 정치에서 타협이라든가 초당파성은 배신의 강력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우리 정치는 한 쪽의 승리가 다른 쪽의 패배와 같은 것으로 인식되는 제로-섬 게임이 되었습니다. '우리 편'에 도움이 되는 것은 모두 정당화됩니다. 내부를 향한 비판은 적을 도와주는 일이므로 용납되지 않습니다. 당내 문제는 '방 안의 코끼리'가 되어, 모두가 알지만 거의 아무도 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상화된 양극화와 팬덤 정치가 그토록 우려스러운 현상인 것은, 원칙보다 개인에 대한 충성을 우선시함으로써 민주적 거버넌스의 기반을 침식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원칙의 훼손은 결국 권력 남용의 길을 열어주게 마련입니다.
정치세력 간의 의미 있는 대화가 불가능해져 국가가 직면한 시급한 문제의 해결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도 짚고 싶습니다. 정책 토론은 개인 간의 싸움이 돼 버리고, 말다툼과 인신공격만 남았습니다. 그 결과 의료, 기후변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시급한 현안들은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습니다.
정당은, 정치인들은 더 이상 우리를 '설득'하지 않습니다. 국민의힘은 안정과 번영을 약속하는 대신 진보 진영을 범죄집단, 종북세력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희망과 변화를 이야기하는 대신 무능하고 무책임한 보수정권을 처벌하자며 선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양자택일의 정치에서 우리는 동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설득 가능한 유권자'라는 존재는 멸종위기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 정도로 탄압받고 박해받았던 정치인이 과거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건넨 화해와 화합의 메시지였습니다. 많은 반대에 부딪혀 착공이 미뤄지고 공사가 중단되는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만, 민주주의 정착과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해 정치 보복 대신 용서를 택한 정치 지도자의 용기 있는 결단만큼은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은, 그리고 그의 극단적 주장에 열광하는 트럼피즘은 미국만의 걱정일까요? 네 편, 내 편의 단단한 우리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쳇바퀴 돌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정치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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