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내 공천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19일부터 현역의원 평가 하위 20% 통보가 시작됨에 따라 통보를 받은 민주당 4선 중진이자 국회부의장인 김영주 의원이 즉각 탈당을 선언했고, 비(非)이재명계 현역 중진의원을 배제한 지역구 여론조사 실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천 갈등'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형국이다.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민주당이 저에게 의정 활동 하위 20%를 통보했다"며 "저는 이제 민주당을 떠나려고 한다"고 했다. 김 부의장은 자신이 '하위 20%' 통보를 받았다고 밝히면서 "영등포 주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모멸감을 느낀다"며 "대체 어떤 근거로 하위 평가됐는지 정량평가 정성평가 점수를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오늘 오전 공관위원장한테 직접 ('하위 20%' 통보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하위 20% 통보를 '낙인 찍기'로 규정한 이유에 대해 "예를 들면 적합도 조사에서 '김영주 의원을 지지하냐'고 하지 않고 '4선 국회의원 김영주가 다시 나오면 다시 지지하겠느냐'라고 해서 약간 의도가 있지 않았나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4년간 한해도 빠짐없이 시민단체, 모든 매체에서 우수 국회의원으로 선정될 만큼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평가받아왔다"며 "(당이) 저를 반명으로 낙인찍고 이번 공천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명분으로 평가 점수가 만들어졌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사당으로 전락했다"며 "저에 대한 하위 20% 통보는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당으로 전락했다고 볼 수 있는 가장 적나라하고 상징적인 사례"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을 반성한다"며 "민주당이 잘 되기를 바라겠지만 이재명을 지키지는 않겠다"고 했다.
김 부의장은 향후 거취에 대해선 "이후 일정은 아무 것도 생각한 게 없다"면서 "내가 앞으로 어떤 방법을 할지 이제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당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날부터 하위 20%에 해당하는 30명 안팎의 의원들에게 통보를 위해 연락을 돌릴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날 김 부의장을 시작으로 하위 평가자들의 '탈당 러시'가 본격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역구 현역 제외 여론조사에 부글부글…"이상한 여론조사에 당 혼란"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최근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메시지를 내며 인적 쇄신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일부 전현직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해 사실상 불출마를 종용하고,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 일부와 '밀실' 컷오프 논의를 했다는 설까지 제기되며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현역의원 평가 하위 20% 통보에 앞서, 일부 중진·다선 의원을 포함한 비명계 의원 지역구에서 현역의원을 제외한 총선 여론조사가 잇달아 실시된 것도 당내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 공관위는 '여론조사를 돌린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해당 지역구 의원 등을 중심으로 당내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4선 중진 홍영표 의원의 지역구인 인천 부평을에서 홍 의원 대신 이동주 의원(초선·비례대표)과 영입인재 박선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가 이뤄진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이외 이인영(4선·서울 구로갑), 노웅래(4선·서울 마포갑), 송갑석(재선·광주 서갑) 의원의 이름이 제외된 여론조사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노웅래(서울 마포갑)·기동민(서울 성북을) 의원 등이 배제된 설문조사도 진행됐으나, 이 의원들은 모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홍·송·이 의원과는 경우가 다르다. 일각에서는 '친명 후보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한 사전작업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홍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근에 정말 이상한 여론조사 때문에 당이 굉장히 혼란스러운 것 같다"며 "이렇게 당에서는 여론조사를 안 했다고 한다. 누가 했는지, 일부서 얘기하듯이 비선 조직에서 한 것인지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홍 의원은 "지금 우리 당이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고 당이 하나로 돼서 총선 승리로 나아가야 하는데, '내 사람 심기' 이런 것에 몰두해서 이렇게 당이 갈등과 분열로 돌아가는 이런 것들이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번 공관위 발표나 이런 것을 보고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송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요 며칠 저의 지역구에서는 여성 후보를 내세운 정체불명의 여론조사 2건이 진행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송 의원은 "2012년 19대 총선이 데자뷔처럼 떠오른다. 19대 총선도 민주통합당이 질 수가 없는 선거라고 예측됐으나, 결과는 민주통합당의 패배였다"면서 "2024년 2월 또한 판박이"라고 했다. 그는 "이 상황을 주도한 사람들만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자, 비겁하게 방관하는 자 모두 역사의 죄인”이라면서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온몸을 던지겠다"고 했다.
전날 민주당 의원들이 전부 참여한 단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이수진 민주당 의원(서울 동작을)과 공관위 간사인 김병기 의원간에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의원은 "험지에서 1~2% 차이를 두고 격전을 벌이고 있는데 공관위에서 지역구와 무관한 사람을 여론조사 돌리니 당원들도 힘이 빠지고 중도들도 어이없어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당 대표와 안규백 전략공천관리위원장은 더이상 공천에 능력도 신뢰도 없으니 2선으로 물러나 달라. 수도권 총선 폭망한다"고 까지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관위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공관위가 (돌린 여론조사가) 아니"라고 단체 대화방에서 해명했지만,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은 지난 16일 CBS 라디오에서 "추 전 장관이 상징적인 인물이라 몇 군데 정도 경쟁력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한 바 있다.
경기 광주을 지역 출마를 선언했으나 이 대표로부터 불출마 요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문학진 전 의원도 이날 국회 기자회견을 열고 "공천 난맥상에 대해 당 지도부의 책임을 묻는다"며 "비선의 장막을 거두라"고 주장했다. 문 전 의원은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기준과 절차로 장막 뒤에서 특정 집단과 특정인들을 공천하려 벌이는 일련의 행태에 대해 저는 개탄과 함께 즉각 시정할 것을 촉구한다"며 "공관위는 공신력 있는 복수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후보들의 본선 경쟁력을 철저히 검증해달라. 당 지도부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지라"고 밝혔다.
문 전 의원은 이날 TV조선 인터뷰에서 "'경기도팀', '비선 정 아무개 팀' 장막 뒤에서 이런 비선이 움직이고 있다"며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 "비선 팀 몇 개가 가동이 된다는 얘기가 몇 달 전부터 들리더라. 그 중 하나가 이제 지금 회자되는 경기도팀"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역구 출마 당사자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여론조사가 전략공천이나 지역구 재조정을 위한 사전 정지(땅 고르기) 작업일 가능성 때문이다. 친명계 황운하 의원은 이날 자신의 지역구인 대전 중구의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예고했다가 돌연 취소하기도 했다. 황 의원은 "(불출마를) 만류하는 의원이 많아 조금 더 생각해보는 상황"이라며 이날 기자회견은 당에 다른 지역구 출마 등 자신의 거취를 맡기려는 취지였다고 밝혔다. 현역의원이 불출마할 경우 해당 지역구는 전략공천 대상 지역이 된다. 지도부 차원의 출마지 재조정 작업과 교감이 이뤄진 게 아닌지 주목된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이 '당내 현역 의원을 빼고 여론조사를 돌린 것은 당 지도부와 논의한 것인가', '사천 논란을 어떻게 보나'라고 물었지만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민주당, 호남 지역구 경선 이의제기 일부 수용…광산을 '양자 →3자' 변경
이런 가운데 이날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광주 광산을 선거구에 대한 재심 신청을 받아들여 3인 경선(민형배, 정재혁, 김성진)을 실시하기로 했다. 광주 동남을에서 컷오프된 김성환 전 동구청장의 재심이 기각되면서 현역인 이병훈 의원과 안도걸 전 기획재정부 차관이 맞붙게 됐다.
민주당은 또 경기 고양병 김재준 예비후보의 재심 신청을 인용, 경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고양병 경선도 홍정민·이기헌 양자에서 김 예비후보를 포함한 3자 구도로 변경됐다.
민주당 지도부가 공관위에 대한 재심을 인용하면서 공천 과정에서 탈락한 후보들의 추가 항의 등 불씨가 예상된다. 앞서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15일 광산을 선거구를 민형배 국회의원과 정재혁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1대 1구도로 경쟁하는 2인 경선 지역으로 발표했다.
이에 김성진 전 산업통상자원부 대변인과 최치현 전 청와대 행정관이 "지지율 2·3위 후보를 배제한 근거와 경선 과정을 공개하라"며 경선 탈락에 반발해 민주당 중앙당 상경 투쟁과 함께 삭발과 단식 투쟁을 하는 등 강력 반발하면서 재심을 신청했다.
송갑석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광주 서구갑, 이용빈 의원 지역인 광산갑 지역구가 2차 공천발표에서 빠진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해당 지역 예비후보들의 경우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데도 심사가 미뤄졌다는 것.
지역 정가에서는 동남갑에서 노형욱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배제되고 윤영덕 의원과 정진욱 민주당 당대표 정무특보의 양자 경선 지역으로 발표된 것, 동남을에서 김성환 전 동구청장이 컷오프된 것을 두고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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