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비, 국가가 해결하겠습니다." 길에 걸린 현수막 문구에 눈길이 갔다. 뇌출혈로, 파킨슨병으로 오랜 시간 머물렀던 병원에서 나왔지만, 이전과 같은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가족을 돌보며 간병인과 함께 살고 있는 지인들이 떠올랐다. 지난 12월 21일 정부는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방안'을 발표했다. 사적 간병비 지출 규모가 매년 증가하고, 2025년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앞둔 상황에서 간병 부담을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만 둘 수 없다는 이야기가 계속되어왔다. 간병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이 반가운 한편, 간병 생활을 하며 이전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지인이 어떤 시간을 기약할 수 있게 될지 질문이 뒤따랐다.
간병비 걱정 없는 나라?
우리 사회에 간병을 둘러싼 문제는 고통과 비극의 모습으로 등장해왔다. 2021년 여름 대구에서 한 청년이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퇴원시킨 뒤 방치하여 사망케 한 사건이 있었다. '패륜 범죄'라던 비난은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해 홀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청년의 상황이 알려지며 반전됐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유력 정치인들 모두 안타까워하며 돌봄의 국가 책임 강화를 앞다퉈 이야기했다. 하지만 국가 책임이라는 말만 떠다닐 뿐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돌봄의 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났던 코로나19를 겪으며 돌봄을 개인의 몫이 아닌 사회의 과제로 다루며 재구성해야 한다는 인식과 요구가 커졌다. 간병의 제도화는 이러한 변화를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간 가족구성원에게 떠맡겨져온 간병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지 않은 채 비용 문제만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간병비 걱정 없는 나라'를 내건 이번 정책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 요양병원 간병 지원, 간병서비스 시장 창출 3가지 방향을 담고 있다. 간병을 보호자의 책임이 아닌 환자의 권리로 제기해온 흐름 속에 2015년 메르스 사태로 병원 내 감염이 문제가 되면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보호자나 간병인을 따로 두지 않고 병원에서 간호와 간병이 함께 이루어지는 통합병동의 운영이 환자에게 더 안정적이며 비용 부담도 낮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한정된 인적·물적 조건으로 더 시급하게 돌봄이 요청되는 중증환자는 후순위로 밀려져 왔다. 지난 정부에 이어 통합병상을 늘리고 중증환자 우선으로 확대한다고 하지만, 이를 위한 필수 조건인 간호 인력이 부족한 문제는 계속 심화해왔다. 1년 내 그만두는 신규 간호사가 2명 중 1명으로 과중한 노동강도와 열악한 근무조건이 높은 이직률의 이유로 짚어지지만, 그 조건은 말하지 않고 간호 인력을 늘리겠다고만 할 뿐이다. 시행 효과로 1일 9만 원 간병비 절감만 강조할 뿐, 일선에서 짊어질 돌봄의 무게를 나누려는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간병을 둘러싼 조건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간병은 환자의 치료와 회복에 동떨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의료체계와 분리되어 간병은 사적 영역에서 가족이 하거나 간병인을 고용하며 이루어져 왔다. 의료비에서 유일한 비급여 항목인 간병비 부담의 문제는 '간병 파산'이라는 말로 드러나왔다. 통계청이 조사한 최근 5년 서비스품목 물가상승률에서 간병비는 37.7%로 전체 14.1%보다 2배가 넘는다. 2021년 기준으로 직장인 평균 월급 액수는 333만 원, 24시간 간병인을 써야 할 때 월 400만 원에 이르는 간병비를 감당하려면 직장을 포기하고 직접 간병하거나, 간병비를 벌기 위해 더 많은 일을 찾거나 두 가지 선택지만이 있을 뿐이다.
하반기부터 요양병원 간병 지원 시범사업을 시작한다는 계획이지만, 재원 조달 방안 논의는 미뤄둔 상황이다. 실효성을 뒷받침할 재정 계획을 마련하지 않은 조건에서 긴급한 필요에 제대로 부응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또한, 그간 복지체계에서 문제로 짚어졌던 것처럼 간병 급여로 지원하는 방식 역시 필요도가 아니라 한정된 재원을 기준으로 엄격하게 대상을 선정하며 배분하는 것에 그칠 공산이 크다. 간병시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혀온 간병비라는 문제를 다루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떤 관점으로 문제를 접근하며 다룰 것인가가 함께 이야기되어야 한다. 간병을 가족이라는 범주 안에서 해결해야 할 것으로 그대로 둔 채 그 부담이 과중하니 국가가 지원하겠다는 것에 그칠 때 돌봄을 둘러싼 문제가 달라지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간병 서비스' 산업과 시장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만은 선명한 정부의 '간병비 걱정 없는 나라'에 누구의 걱정이 어떻게 덜어질 수 있는 걸지 질문해야 한다.
간병, 비용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
그동안 아픈 가족을 돌보는 것은 가족의 역할 특히 아내, 딸, 며느리로 가족구성원 중 여성의 몫으로 떠넘겨져 왔다. 간병은 당연히 가족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로 오랫동안 비가시화의 영역에 있었다. 2000년대 들어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화와 요양병원의 확대 속에 요양보호사, 간병도우미가 직업세계로 나타나면서 간병이 노동으로 가시화됐다.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여성이 늘고, 돌봄을 나눌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가 드물어진 변화 속에서 간병인의 필요가 높아졌고, 그 자리가 중국동포/고령/여성들로 메워져 왔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처럼 더 쉽고 싸게 간병 인력을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은 간병 노동을 국적/연령/성별로 더욱 가르게 될 것이다.
한편, 돌봄에 대한 국가 책임을 말하면서 이러한 돌봄을 사회의 역할로 세워갈 공공성을 담보하려는 어떤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퇴원 후까지 아우르는 '간병 서비스'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으로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닌 민간 영역에서의 간병 인력 '관리'와 '확대'만을 말할 뿐이다. 지금과 같이 요양병원이 난립해온 데는 지난 20여년 공립요양병원 대신 민간요양병원을 중심으로 지원해온 배경이 있다. 전체 요양기관 중 공공 요양기관은 1%에 불과한 상황이다.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이 우선인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고 이러한 현실 속에서 좋은 돌봄을 기대하기란 요원하다.
어느 정부 할 것 없이 돌봄 영역에서의 정책과 제도가 비슷하게 반복되는 것은 비용을 중심으로 문제를 바라볼 뿐, 더 잘 돌보는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 간병휴직제도가 도입됐지만, 단기간 쓸 수 없는데다 무급이라 선뜻 쓰기가 어렵다. '가족돌봄휴직'이라는 명칭처럼 법적 가족 범위로 제한되고, '본인 외에는 간호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것을 요구받기도 한다. 가족이든, 주변의 누구든 아플 때 기꺼이 돌봄에 나서고 싶어도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일과 돌봄을 함께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조건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간병은 언제까지 짊어지게 될지 알 수 없는 무거운 짐, 비용을 들여 누군가에게 계속 위탁해야 하는 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가족이든, 간병인이든 돌봄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이 어떤 조건에 있는가는 돌봄 받는 이들의 돌봄 조건과 뗄 수 없다. 돌보고 싶은 사람이 돌볼 수 있는 조건, 돌봄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어떻게 가능한가. 간병의 제도화를 둘러싸고 비용 넘어 이러한 질문들이 이어져야 하며, 그 범주 또한 병원이나 가정이라는 경계 밖으로 확장하며 이야기가 펼쳐져야 한다.
간병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으로
일 년 전 이맘때, 수술하게 된 엄마의 보호자로 병원에서 함께 지냈다. 수술을 마치고 며칠 사이로 퇴원을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회복이 더뎌 전전긍긍하는 시간을 보냈다. 가족 중에 보호자를 교체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혹여 내가 엄마를 돌봐야 할 형편이라면 그렇게 시간과 마음을 쓸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곳에 속해있다는 것이 그 시기 불안과 걱정을 덜 수 있는 뒷배가 되었다.
이러한 뒷배가 개개인의 조건과 상황에 좌우되는 것이 아닌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간병의 제도화 방향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펼쳐져야 한다. 문제로 짚어진 간병비는 숫자 넘어 사회와 동떨어져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했던 무게를 드러내 온 현상으로 읽어야 한다. 비용 부담이 줄어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독박 간병의 굴레 안에 갇혀야만 할 때, 혹은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돌보고 돌봄 받는 관계가 존중되지 않고 무시될 때, 간병은 계속 고통으로 떠올려질 수밖에 없다. 가족이라서 짊어져야 하는 짐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요청하며 수행할 수 있는 돌봄으로, 간병비를 넘어 간병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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