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간 극한 대립으로 번진 이른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사퇴 요구 파문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만남 가능성이 있다는 여권발 보도가 나오며 한 위원장의 거취를 둘러싼 양측 갈등이 봉합될지 주목된다. 이철규 인재영입위원장(전 사무총장) 등 핵심 친윤계 인사들이 일제히 중재·봉합에 나선 가운데다.
23일 <중앙일보>는 "한 위원장과 용산 고위 인사가 곧 만나기로 했다"며 "어느 정도 수습이 된 후엔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남도 제안할 계획"이라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말했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참모들이 전날 밤 심야 회의에서 당정 갈등이 파국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뜻을 모았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21일 밤 관저 회의 당시 "조건 없는 사퇴 요구를 한 것이 아니라, 사천 논란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려는 취지였다"고 참모들에게 말했고, 대통령실은 "김 비대위원이 오늘(22일) 사과한 점도 유의 깊게 보고 있다"는 언급을 내놓기도 했다.
전날 채널A 방송도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의 의중이 한 위원장 사퇴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21일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통해 한 위원장에게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한 위원장의 김경율 비대위원 서울 마포을 출마 발표가 '사천 논란'으로 번지는 일 등에 대한 우려였고, '사퇴'가 부각된 것은 대화 과정의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또 "한동훈은 내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후배였다. 내가 오죽하면 신뢰와 지지를 철회한다는 말까지 했겠느냐"라며 관계 개선의 여지를 남기는 발언도 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다만 한 위원장의 '김건희 리스크' 대응에 대한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불만은 여전한 것으로 알려져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앞서 한 위원장은 지난 18일 '김건희 명품 백 수수 의혹'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이 걱정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이 직접 마포을 출마 사실을 발표하며 치켜세운 김 비대위원은 여권 지도부 중 처음으로 '김건희 리스크' 해소를 공개 주장한 이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영부인 문제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한 위원장에게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동아일보>가 이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이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서 뒤통수를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사람을 너무 의심하지 않고 썼던 나의 잘못인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그 많은 이슈 중에 하필 김건희 리스크를 건드려 치고 올라가려 하느냐"며 "자기 몸값 올리려고 망신 준 것밖에 더 되느냐"고 한 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간 가교 역할을 하는 친윤계에서는 김기현·이준석 전 대표 때와는 달리 봉합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윤핵관'으로 불리는 이철규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장은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간 갈등에 대해 "소통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긍정적으로 잘 수습되고 봉합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김건희 리스크'에 대해서도 이 위원장은 "한동훈 위원장께서도 이것을 몰카 공작이라고 정의하지 않았나?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 인식에 다름이 없다"며 지난 18일 한 위원장의 발언 취지가 용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당시 "기본적으로는 '함정 몰카'이고, 그것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맞다"면서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께서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다"고 했었다.
이 위원장은 "한 위원장의 해법도 크게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들께서 '이게 뭐냐' 하고 좀 의아스럽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상당수 계신 것도 맞다. 그러면 그분들께 '이게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을 말씀하신 게 아닌가 생각된다"며 "그러니까 '이것이 잘못이다, 사과하라'라는 측면에 방점이 있는 게 아니라, 이 몰카 공작 사건의 진실이 뭔지를 좀 국민들이 알 수 있게끔 설명하는 절차를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다만 김건희 전 코바나콘텐츠 대표를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김 비대위원에 대해서는 "마녀사냥하듯 하는 모습은 책임 있는 위치에 계신 분들이 좀 자제해야 할 부분"이라고 비판했다.
김종혁 국민의힘 조직부총장도 이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총선을 불과 70여 일 앞두고 있다"며 한 위원장 사퇴 가능성을 낮게 봤다. "성 상납 의혹"을 받은 이 전 대표 때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대패로 당의 리더십에 심각한 결함과 구멍"이 드러난 김 전 대표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이어 "당원들의 마음도 좀 다른 것 같다"며 "비대위원장과 대통령이 지금 절대로 싸우면 안 된다는 의견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한 위원장을 비토하거나 연판장을 돌리지 않겠나'라는 질문에도 그는 "의원총회를 열어 이 부분을 논의한다면 그런 일들은 없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