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거취와 관련해 당정 간 갈등이 일고 있는 가운데, 양측의 가교 역할을 하는 당내 친윤계에서는 갈등 봉합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총선을 80일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정면충돌할 경우 자칫 여권 전체에 치명적 결과가 올 수 있다는 우려다. 다만 갈등의 방아쇠 격인 대통령 영부인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대응 방안에 대해 아직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아 '봉합'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한 위원장은 22일 출근길 "제가 사퇴요구를 거절"했다며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가 있었음을 사실상 확인한 데 이어, 이날 오전 당 영입인재 환영식이 끝난 뒤 기자들이 '당내에서 위원장 거취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는 질문에 "거취에 대해 누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인가?"라고 되묻는 등 민감한 태도를 보였다. 다른 한편 윤 대통령은 전날 한 위원장이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 관련 보도에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관저에서 참모 회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고, 이날은 감기 기운을 이유로 민생토론회에 불참했다. 당정이 충돌 양상을 보이며 여권 내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
친윤계에서는 '갈등 봉합'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친윤계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당정 간 갈등에 대해 "당연히 봉합이 되지 않겠나"라며 "원래 정치를 하다 보면 서로 의사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는 것인데, 봉합이 잘 되면 또 잘 단단해져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면 의원총회를 열어서 '서로 괜한 혼선 없이 가자'는 방식으로 당을 다시 하나로 묶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핵관'으로 불리는 이철규 당 인재영입위원장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의 한 위원장 사퇴 요구에 동의하나'라는 질문에 "그런 것이 어디 있나? 그런 것 없다"며 갈등 확산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친윤 의원을 중심으로 한 위원장 사퇴 여론이 있다'는 질문에도 그는 "국회의원 개개인의 입장이다. 그것은 그것대로 존중하면 되고, 자기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다 하면 된다"며 집단적 움직임은 아니라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정영환 당 공천관리위원장도 갈등 봉합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날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정 간 갈등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나온 이야기와 한 위원장의 이야기가 보는 방향은 같다"며 "공정한 공천을 통해 선거에 꼭 승리하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총선) 시기가 지금 80일 정도 남았다"며 "빨리 (양측 입장이) 조율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또 대통령실의 당무개입이라는 정치권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도 "그렇게 구조적으로 개입할 수가 없고, 윤 대통령 성격상 그걸 가지고 얘기하거나 그럴 스타일은 전혀 아닌 것으로 안다. 그러니까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 없다"며 "대통령실에서 그것(입장)을 낸 건 '공정하게 하자'는 것이고, 결국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총선에서 승리해서 집권 후반기를 잘 이끌어가는 것이지 않느냐. 한 위원장도 거기에 대해 사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윤 대통령은 더 절실하다"고 했다.
다만 친윤계는 이른바 명품백 의혹에 대해서는 '덮고 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앞서 이 문제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이 걱정할 부분이 있다"고 했던 한 위원장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에게 '실망감'을 언급한 표면상 이유인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 두둔 논란도, 김 비대위원이 여권 지도부 중 처음으로 '김건희 리스크' 해소를 공개 주장한 인사라는 점이 진짜 이유 아니냐는 말도 나돈다.
이철규 위원장은 '명품 백 수수 의혹'에 대해 "그것은 몰카 공작"이라며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는데 그것을 갖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생각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한 위원장이 "국민들께서 걱정할 부분이 있다"고 한 데 대해 의견을 묻자 "국민들께서는 진실이 뭔지 다 모르니까 우려하실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기존 당협위원장 등의 반발을 산 김 비대위원의 마포을 출마 논란에 대해서는 정 위원장이 나서 "진정한 마음은 그게 아니라고 보는데 절차적인 부분에서 약간 오버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천이 다 된 것처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 측도 할 말이 있다는 분위기다. 한 위원장에 의해 발탁된 장동혁 사무총장은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명품 백 수수 의혹'과 김 비대위원 마포을 출마 관련 한 위원장의 행보에 대해 "당은 국민의 여론의 바람을 가장 최전선에서 가장 강하게 맞이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당이 느끼는 국민들의 여론 온도와 정부에서 대통령이 느끼는 온도는 조금 다를 수 있다"며 "한 위원장이 국민만 보고 할 일 하고 계시다고 생각하고, 또 그런 여러 여론에 대해 당이 전하는 것을 대통령실과 정부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고 판단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장 총장은 "당과 대통령실의 어떤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논의 내용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또 어떻게 정제돼 나가는 것이 당을 위해 바람직하고 도움이 될지 누구나 잘 알 것"이라며 "그런 과정 없이 날것으로 나가거나, 날것에 어떤 것이 덧붙여져 언론에 보도되고 그 언론을 또 의원들 단톡방에 올리거나 하면서 몇몇이 당 전체 의사인 것처럼 여론을 형성하는 방식은 당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고 건강한 방법도 아니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의중을 당에 전달해온 것으로 평가받는 이용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 대한 지지를 거뒀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를 여당 국회의원 단체 채팅방에 공유한 일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앞으로는 한 위원장의 거취에 대해 추가 입장을 내지 않고 사태 수습에 들어가야 한다는 기류가 흐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이제 차분하게 수습해야 할 단계"라고 말했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해 윤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 "전략공천이 필요하다면 특혜처럼 보이지 않도록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지역 등을 선정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며 한동훈 비대위와 각을 세웠던 전날과 기류가 달라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김경율 비대위원이 이날 아침 비대위 회의에서 "저는 민심을 따라 총선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우리 당과 지지자, 의원들의 뜻에 따르겠다"며 "제 거친 언행이 여러모로 불편함을 드린 면이 있었다. 정제된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고, 민심을 받드는 것과 총선 승리에만 매진하겠다"며 자신의 발언에 대해 공개 사과한 일도 갈등이 봉합 수순으로 가고 있다는 해석에 힘을 더하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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