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또다시 공수표를 날리고 있다. 지난 1월 11일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2024년 설 대비 체불예방 및 조기청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벌금만 내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바꿔나갈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신고가 어려운 재직자를 대상으로 익명신고센터 등을 통해 선제적 기획 감독을 실시하고, 악의적인 사업주는 구속 수사하겠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 발표 내용 아닌가? 명절을 앞두고 발표되는 노동부의 체불과의 전쟁, 이번에도 대책은 없고 다짐뿐이었다.
비임금 노동의 증가와 노동부의 헛스윙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2017~2021년 인적용역 사업소득 원천징수 성별·연령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5년 동안 비임금 노동자가 약 223만 명 증가하여 2021년 778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2023년에는 8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 비임금 노동의 규모만큼 중요한 것은, 비임금 노동이 증가하는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플랫폼 노동의 증가로는 이 가파른 증가세를 설명할 수 없다.
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2020년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업자등록증도 없는 가짜 사업소득자가 4년 사이 200만 명 증가하였고, 연간 사업소득 2000만 원 이하 저소득 사업소득자가 사업소득자 증가분의 81%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도·소매, 음식·숙박업에서 사업소득자 소득 증가분(3조4532억 원)과 일용근로자의 소득 감소분(2조 9495억 원)이 거의 같다. 비임금 노동의 증가 원인을 신(新)산업과 신(新)고용형태의 증가로 추정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반복해서 '건설업 등 취약업종에 대한 선제적 체불예방 활동을 전개'한다면서 기존 대책의 자기표절만을 반복하였다. 정작 발 빠른 사업주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사업소득자로 위장해 임금체불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도록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노동자에 대한 체불을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않는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은 무작정 배트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스트라이크를 던지게 만드는 것이다. 즉, 사업주가 의도적으로 노동자를 오분류하는 경우 과태료, 벌금, 그리고 징역형까지 부과하면서 고용의 오분류에 단호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실제로 미국 연방정부 국세청은 이렇게 대응하고 있다.).
책임의 외주화 : 이윤은 있되 책임은 없다
주 15시간 이상을 일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누구든지 주휴수당, 퇴직금(1년 이상 근속 시), 연차휴가를 받을 수 있다. 반대해석상 사업주는 도급·위탁계약, 프리랜서 계약 등을 통해 노동자를 사업자로 위장하면 근로기준법상 사용자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1년은 52주(소수점 생략)이기에 주휴일은 52번 발생하고, 퇴직금은 30일 이상의 평균임금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으며, 연차유급휴가는 11일(1년 미만)에서 15일 이상(1년 이상 근속) 발생한다. 즉, 위장을 통해 유급으로 지급되는 90일 이상의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공휴일법이 제정되면서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공휴일 및 대체공휴일 유급휴일과 인건비의 약 10%를 차지하는 4대 보험료 사업주 부담분을 고려하면 사업주가 노동자를 사업자로 위장하면서 얻는 인건비 절감분은 1년 기준으로 5개월이 넘는다. 클릭 몇 번으로 인건비 3분의 1 이상을 절감할 수 있는 요술램프가 따로 없다.
부지런한 사업주들은 여기에 안전장치를 하나 더 걸어놨으니, 바로 간접고용의 방식으로 원청업체가 하청업체를 이용해 노동자를 무늬만 프리랜서로 위장하는 것이다. 이 경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더라도 그 책임은 하청업체가 지면된다. 그렇게 2020년 타다와 VCNC, 2021년 우아한 형제들, 2023년의 쿠팡, 2021년부터 2024년까지의 SK커뮤니케이션즈는 이윤을 극대화하고 책임을 외주화하는 마법을 부렸다.
특수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한 사람들
신분은 사업자인데 근무시간과 장소가 고정된 '무늬만 프리랜서'의 노동조건은 처참하다. 밤새 일하더라도 야간수당이 적용되지 않아 최저임금만을 받고, 명절이라고 예외는 없다. 오히려 휴일과 명절이 인터넷 세상의 성수기지만, 늘어난 모니터링 양과 무관하게 시간당 급여로 계약되어 손만 바쁘다. 출산휴가는커녕, 아파도 연차가 없어 쉴 수 없고 교대근무도 연속 3일 이상은 못하도록 금지되어 산후조리원에도 노트북을 들고 가야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사업자로 분류된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의 콘텐츠 모더레이터(모니터링 요원)들의 이야기다.
'의도된 고용 오분류' 바로 잡아야
결국, 고용노동부의 임금체불 예방과 선제적 기획근로감독 선언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임금체불에 페널티 부과를 통해 체불 유인을 통제해야만 한다.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체불액 규모도 이미 역대 최고 수준이라지만, 정확한 실태 파악을 위해서는 '고용의 오분류'에 의해 체불로 분류되지 않은 임금체불에 대한 조사가 절실하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국세청에 사업자등록증도 없이 연간 2000만 원 이하의 저소득 자영업자가 다수 고용된 사업장 자료를 요청하면, 선제적 기획·감독이 필요한 사업장은 자연스럽게 추려질 것이다. 자, 고용노동부는 과연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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