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는 아이를 둔 한국 학부모들의 큰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혹시 내 아이가 의대에 들어가 의사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와 신경을 곤두세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과 인공일반지능(AGI)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면 자기 자식을 의대에 보내려고 하는 부질없는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변호사, 판사, 검사 등의 법률 서비스 관련 업무는 법과 판례 등 데이터를 유형별로 잘 분류해서 재판에 인용하고 적용하는 것이 유능함의 기준입니다. 대용량의 데이터를 정확하게 패턴으로 인식하는 인공지능이 가장 잘 하는 분야입니다. 의사들의 진료 업무 또한 수많은 임상경험 데이터를 유형별로 잘 분류하고 분석해서 환자의 상태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일입니다. 이 역시 인공지능이 너무나 잘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의학 분야 인공지능은 아직 의사를 대체할 수준이 안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는 인공지능이 아직 의료 데이터를 그렇게 많이 학습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공지능이 개별 환자의 병력과 각종 의료장비 데이터까지 대용량을 학습하고 나면 얘기는 금방 달라집니다. 한국의 건강보험 데이터를 비롯한 전 세계 의료 데이터를 모두 학습한 인공지능 의사를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시간문제일 따름입니다.
AI 하나가 억대 연봉 수천 수만 수십만 명의 의사보다 더 뛰어난 진료와 처방을 내릴 수 있다면 종합병원 경영자나 국가 의료보험 체계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자명합니다. 다른 분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뇌 과학의 연구 성과가 밝히고 있듯이 인간은 세계와 사물을 유형(패턴)과 언어의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사자가 나타났을 때 즉시 사자라고 알아차리고 나무 위로 도망치지 않으면 잡아먹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껍질이라는 뜻의 인간 신피질은 거대한 패턴인식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 3억 개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눈을 통해 고해상도의 영상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합니다. 착각입니다. 실제로는 시신경이 뇌에 전달하는 정보는 시야에 들어와 관심을 끄는 몇몇 대상의 윤곽과 실마리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수십 개의 시신경 통로를 통해 들어오는 소량의 시공간 가장자리 정보만을 가지고 세상의 모습을 패턴과 언어의 개념으로 분류해서 재구성해 인식할 뿐입니다.
가열되는 냄비 속 개구리와 같은 인간 일자리들
인간은 어떤 분야든 약 10만 개 정도의 지식 덩어리를 갖추고 있으면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의료진들의 지식공유 시스템을 분석해본 결과 의학전문가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약 10만 개 정도의 개념에 통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약 3만여 개의 단어와 10만여 개의 어휘(단어, 숙어, 구동사, 속담 등)로 희곡을 썼습니다.
체스의 1인자 카스파로프는 약 10만 개 정도 경우의 수를 안다고 합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10의 170승 정도 됩니다. 사실상 무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세돌을 4대 1로 이긴 알파고는 약 400만 개의 대국을 학습해서 1초당 약 10만 개 정도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은 다음 수를 둘 때 보통 약 100개 정도 경우의 수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지식 덩어리는 10만 개가 아니라 이미 천문학 단위입니다. 인간 일자리의 대부분은 패턴을 분류하고 개념과 지식 덩어리를 적용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인공지능이 어떤 분야의 일자리부터 대체해 나갈지 불문가지입니다.
'냄비 속 개구리 가열하기'라는 말을 아실 것입니다. 기후지옥을 설명할 때 흔히 쓰는 비유입니다. 뚜껑을 연 채 냄비를 가열하기 시작해도 개구리는 밖으로 뛰쳐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다 뚜껑을 닫고 계속 가열하면 어느 순간 임계점을 지나게 되고 개구리는 뛰쳐나오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못 나오고 죽습니다.
지금 AI의 인간 노동자 일자리 대체가 기후지옥과 똑같이 그런 상황으로 빠르게 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노동자들 대부분이 아직 실감을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어느 순간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미 미국의 변호사들은 미국 변호사 시험에 상위 10%의 성적으로 합격한 인공지능에 급속하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2023년 5월 1일 노동절에 파업을 벌인 1만1500여명 조합원의 미국 할리우드 영화-방송작가 노조는 요구조건에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작가 권리 보호책 마련을 내걸기도 했습니다.
AGI는 이미 개발돼 있는 상태이고 안정성 문제 때문에 공개시기를 늦추고 있을 뿐이라는 설이 나오고 있는, 어떻게 보면 혁명 전야의 고요함 같은 시점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노동조합이나 국가와 정당, 시민사회단체의 대응은 말 그대로 너무나 조용하기만 합니다. 아무런 저항이나 규제 없이 가속화하고만 있는 AI 플랫폼 경제는 인간 노동자의 삶을 더할 수 없는 극한으로 내몰고 주변부 슬럼으로 추방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불어난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자산은 전 세계 80억 인구 모두에게 안전하게 백신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백신을 맞을 수 없거나 음식을 살 수 없어 수백만 명이 죽어가고 있을 때인 2021년 7월 베조스는 몇몇 친구들과 호화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모든 비용을 지불해 준 아마존의 전 직원과 고객에게 감사드립니다."
제프 베조스의 자산은 2023년 3월 기준 114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50조 원이나 됩니다. 전 세계 억만장자 26명의 재산은 전 세계 하위 인구 절반의 재산과 같습니다.
이 같은 극단의 불평등은 제동장치 없는 디지털 경제의 당연한 귀결입니다. 사람 몸과 마음의 디지털 데이터화를 통한 착취와 자연 착취 또한 극단화된 자유 시장 경제 논리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깨어나지 않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미세노동이 보여주는 과도기 인간 노동자들
미세노동자(microworker)는 인공지능이 패턴을 인식할 수 있도록 날것의 데이터에 라벨을 붙이고 데이터를 분류하는 등의 일을 하는 노동자를 말합니다. AI가 고양이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귀가 잘린 고양이, 로드킬로 죽은 고양이 등등 각양각색의 수많은 고양이 이미지에 '고양이'라는 태그를 붙여 이게 고양이라고 학습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인간 아기가 고양이를 고양이로 알게 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인간 아기 부모와 가족들이 하는 이 같은 일을 미개발 AI에게는 수백만의 인간 미세노동자들이 합니다. 주로 아프리카 분쟁 지역의 난민촌이나 전 세계 빈민촌의 고학력 여성들입니다.
이들의 노동력은 그 자체가 데이터로서 아마존이 2005년 세계 최초로 만들어 지금도 가장 규모가 큰 미세노동 중개 사이트 '아마존 메커니컬터크' 등에서 분과 초 단위로 실시간 경매됩니다. 플랫폼에 들어간 미세노동자들이 경매로 올라온 일거리를 클릭해서 태그 작업이나 분류 작업을 해 올리면 돈을 주고, 미세노동자는 또 다음 일거리를 클릭하는 식입니다. 월급 노동자, 연봉 노동자에서 일당 노동자, 시급 노동자를 거쳐 이제는 분급 노동자, 초급 노동자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이들 미세노동자들이 없었다면 알고리듬도 작동할 수 없고 챗GPT도 지능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인간 미세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이 자기 일자리를 빼앗을 인공지능을 교육하기 위한 것인지, 자기 고향을 타격하기 위한 살상용 드론을 제작하기 위한 일인지 알 수조차 없습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미세노동자들의 임금을 ‘단돈 몇 센트’라고 푼돈으로 표현했습니다. 베조스가 시간당 1300만 달러를 벌 때 이들 미세노동자들은 2달러도 못 법니다.
노동의 미래, 기후변화 대응, 경제계획을 조사연구하는 '오토노미(autonomy)'의 선임연구원 필 존스는 <노동자없는 노동>이란 책에서 디지털 경제는 이 같은 인간 노동자들이 없으면 결코 작동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필 존스는 자본주의 거대 빅테크 기업의 인간 미세노동자 보육노동 착취로 일단 AI 또는 AGI가 만들어지면 인간 미세노동은 필요 없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인간 미세노동자들은 AGI 이전의 과도기 인간노동을 상징할 따름입니다. 학습이 끝나고 스스로 인간보다 더 뛰어난 미세노동 알고리듬까지 만들 수 있게 된 인공지능에게 보육인간이나 창조자 인간은 필요 없는 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지금처럼 인공지능의 알고리듬에 자연과 세상의 주인이자 소유주 자리에 앉히는 임명장을 계속 주고 있으면 말입니다.
기후지옥, 물과 자원 고갈을 앞당기는 AI 개발
AI의 개발과 이용에는 엄청난 물과 자원, 에너지 착취와 낭비가 필수입니다. 당연히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프랑스 정부가 지원하는 파리 소재 비영리 기후변화 연구단체 더 시프트 프로젝트(The Shift Project)는 2020년 보고서에서 2017년 데이터 센터의 온실가스 배출량만 해도 2.5~3.7%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항공업계의 배출량이 약 2.4%입니다. 데이터 센터가 항공업계 전체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셈입니다.
보고서는 또한 디지털 경제의 분야별 에너지 사용량 가운데 데이터 센터는 19%를 차지할 뿐이고, 디지털 기기 사용 20%, 네트워크 운영 16%, 컴퓨터 제작 17%, TV 제작 11%, 스마트폰 제작 11%, 기타 6% 순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PD 기욤 피트롱의 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산업의 전기소비량은 2017년 전 세계 소비량의 약 10%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해마다 5~7%씩 증가하고 있고 2025년이면 무려 20%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전기소비량으로 치면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입니다.(기욤 피트롱,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삼성전자 한 기업이 소비하는 전기량만 해도 한국의 재생에너지 총생산량을 투입해도 80% 정도밖에 못 채웁니다.
이메일 1통을 발송하는 데 약 4g에서 용량이 큰 붙임파일이 더해질 경우 20g 정도까지의 이산화탄소가 필요합니다. 스팸 메일을 보관하는 데만 연간 17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필요합니다. 이런 메일이 전 세계에서 날마다 3190억 통이나 발송됩니다. 지금 이 순간 스마트폰을 들고 우리가 무심코 '좋아요'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는 순간 아프리카의 어떤 희토류 광산에서는 유소년 노동자가 시간당 1달러도 안 되는 임금으로 착취당하고, 석탄과 석유를 불태워 만든 전기가 소비됩니다.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숨통을 조여옵니다.
인간의 지능은 무엇을 위해 어디에서 작동해야 할까
2번째 인간의 지능폭발 이래 국가 간 반복되는 전쟁과 폭력으로 대량살육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불평등은 극에 달해 인민들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습니다. 바로 그런 시기였던 기원전 9세기에서 2세기까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삶을 스스로 실천하고 모범을 보이는 현자와 예언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칼 야스퍼스는 이 시기를 '축(axle)의 시대'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인도에서는 붓다와 우파니샤드 명상가들이, 중국에서는 공자와 맹자, 노자, 묵자 등의 사상가들이, 이스라엘에서는 엘리야, 에레미아, 이사야 등의 선지자들이, 그리스에서는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철학자들이 그들이었습니다. 몇백 년 지나 이스라엘에 등장한 예수도 이 계보를 잇는 유대교 개혁가였습니다. 예수는 단 한 번도 자신을 그리스도 교인으로 생각하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울리히 두크로 등, <탐욕이냐 상생이냐>)
이들 선각자가 한결같이 인민들에게 사자후를 터뜨리며 깨우친 지혜는 자기중심주의를 버리라는 상호주의의 도덕이었습니다. 선지자의 주장은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는 당연한 상식에서 출발합니다. 타인과 타민족에 대한 공감과 자비행의 실천이야말로 나의 삶을 고양하고 전쟁과 폭력을 근절하는 지름길입니다. 나는 곧 너이고 우리이며,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돼 있는 '서로 주체'의 이웃입니다.
붓다는 사람은 다섯 종류의 덩어리(오온, 五蘊)라고 설파했습니다. 내 몸이 나라는 개념의 덩어리, 눈귀코입살갗마음의 느낌 덩어리, 생각의 덩어리, 의지의 덩어리, 지식의 덩어리입니다. 한자로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켜켜이 쌓여있는(集) 일종의 패턴 덩어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과학 용어로 말하면 태어나면서부터 행동을 통해 인간의 감각기관과 신경계가 만들어낸 개념의 덩어리입니다.
붓다는 인간의 이런 실상을 깨닫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이 우주 속에서 기적같이 태어난 삶을 온전히 다른 모든 지구생태계의 생물과 무생물 이웃들과 함께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연결된 서로존재(interbeing)로서 서로행동(interdoing)의 진정한 자비행을 실천하라고 가르칩니다.
예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나의 삶을 해방하기 위한 가장 강렬한 메시지입니다. 증오와 혐오를 버리라는 붓다의 가르침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인간 마음의 혁명과도 같은 전환이 없으면 이런 마음의 자유는 불가능합니다.
요즘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화제입니다. 그런데 과연 전두환을 사랑할 수 있을지 사실 저도 자신이 없습니다. 1980년대 내내 원주의 장일순은 당시 민주화운동 하던 젊은이들에게 늘 전두환을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말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저는 한 번도 장일순을 만나러 원주로 간 적이 없었습니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1승을 거둔 것은 기존의 바둑 수와는 전혀 다르게 패턴을 따르지 않는 수를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알파고보다 훨씬 뛰어난 바둑 AI가 7~8급 수준의 바둑 초보자에게 패하는 놀라운 일도 사실은 초보자가 패턴에서 벗어난 바둑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패턴에서 벗어나는 지식 덩어리의 새로운 행동을 우리는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혁명이라는 개념과 같습니다.
AGI의 등장이 머잖았다고 생각되는 2023년이 지나갑니다. 인간은 과연 지금과 같은 패턴의 삶을 과감하게 탈피해 AI의 3차 지능 폭발과는 전혀 유형이 다른, 완전히 새로운 인간 삶의 지능폭발을 창조해낼 수 있을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통해 AGI를 통제 제어할 수 있는 공존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돌이켜보게 되는 세밑입니다.
(* 마지막 글로 이어집니다. 이 글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웹진나비>에 동시 게재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