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는 사회성 뇌다
사회성 동물인 인간의 뇌 또한 사회성 뇌입니다. 당연한 말 같은데, 사실 그동안 뇌과학은 인간 뇌의 사회성에 대한 탐구는 소홀히 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가장 중요한 뇌의 사회성을 경시해온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몸과 마음의 고통과 쾌락을 인식하는 동시에 사회성 고통과 쾌락 또한 인식합니다. 1990년대부터 메튜 리버만을 비롯한 일군의 뇌과학자들은 새로운 학문 분야로서 사회인지신경과학을 개척해 왔는데, 인간에게는 사회성 고통과 쾌감의 신경 메카니즘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매튜 리버만, <사회적 뇌>, 시공사)
인간은 무리의 구성원으로서 소속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추구하고 연결이 끊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을 신체의 고통보다 더 강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무리에 속해 있어야만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돌볼 능력이 없는 상태로 태어난 포유류 새끼는 어미에 꼭 붙어있거나 어미-아비의 근처에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새끼는 어미와 떨어지면 공포의 울음을 터뜨리고 구조의 비명을 지릅니다.
인간 아기의 이런 애착과 연결 욕구는 성장하면서 또래 친구와 또래집단, 씨족과 부족, 나아가 사회와 국가로 확대됩니다. 스포츠팀과 선수, 정당과 정치인, 연예인 등에 대한 애착과 강한 유대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이기적 인간'이면서 동시에 이타성을 갖춘 인간입니다. 경쟁하면서 동시에 협력합니다.
인간은 사회성 욕구를 충족하고 무리의 응집력을 키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습니다. 인간의 이같은 '마음읽기' 능력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공감하고 서로 돕는 상호부조의 연대 행동을 통해 인간의 '도약'과 문명 발전을 추동하는 근본 동인이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질병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특성, 신념, 가치 등을 다른 사람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집단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가받는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자제력이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의 판단을 강하게 의식하고 자신이 사회 내의 존재라는 자각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사회에도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무리의 일원이라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1차 지능폭발
약 13만~19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선택을 통해 이런 사회성 뇌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현생인류의 출현 시기에 대해 수만년의 편차를 두고 다양한 설이 제기되는 것은 현생인류의 뼈 화석이 새로 발견될 때마다 새로운 주장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호포 사피엔스는 긴 세월을 두고 아시아와 유럽 등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문턱을 넘어 수많은 '원시 언어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어와 언어로 구성된 지능이야야말로 인간의 사회성 뇌가 창조한 가장 강력한 발명품입니다.
앞글에서 지적했듯 4만~4만 5천년 전에는 기술과 문화, 종교의 발달이라는 인류의 '도약'이 도처에서 일어납니다. 이 도약은 인간의 언어가 일으킨 첫 번째 지능폭발의 업적이자 성취입니다. 최근까지 수렵채취로 살아온 원시 부족들의 인류학 보고서는 자연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수렵채취인들의 놀라운 지능폭발 증거로 차고 넘쳐납니다. 1차 지능폭발의 증거는 다름아닌 이들 수렵채취 원시부족들의 언어에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이누이트족은 서로 다른 눈 종류에 따라 눈을 부르는 수십 개의 말이 있습니다.
해양 생물학자인 R. E. 요하네스는 1894년에 태어난 팔라우 어부 한 사람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어부는 서로 다른 물고기 300종 이상을 알고 있었고 전세계 과학문헌에 기재된 어종 자료의 몇 배나 되는 어종에 대해 그 음력 산란 주기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필리핀 북서쪽 민도르 섬에 사는 하우누족은 450종 이상의 동물과 1500종 이상의 식물을 구별합니다. 이 지역 식물에 대한 하우누족의 분류는 서구 과학의 식물 분류보다 400종 이상이나 많았습니다.
인류학자인 다니엘 네틀과 언어학자인 수잔 로메인이 함께 쓴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김정화 옮김, 이제이북스, 2003)에는 이런 사례가 수도 없이 나옵니다.
서시베리아에 살던 한티족의 언어에는 '새'나 '물고기'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없습니다. 특정 종에 해당하는 말만 있을 뿐입니다. 한티어의 80%는 동사이며 특히 소리에 관련된 단어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오리가 물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소리'가 따로 있고 '곰이 크랜베리 숲을 걸을 때 내는 소리'를 지칭하는 단어가 따로 있습니다. '풍부'라는 단어는 한티어로 '산딸기가 많다'이고, '행복'은 '내 마음이 즐겁다'입니다. 한티족은 유럽의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이름을 붙일 때 자연에서 표현을 빌려왔습니다. '사진'은 '물이 고요히 고여 있는 웅덩이'라 불렀고, '모자'는 '비를 맞지 않게 해주는 위쪽이 넓은 나무'로 번역했습니다.
사이언스라는 말은 안다(know)는 뜻의 라틴어 스키레(scire)에서 유래했습니다. 인류문화의 도약을 일으킨 수렵채취인들이야말로 언어를 통해 지능폭발을 이룩한 최초의 과학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농경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렇게 오랫동안 수렵채취인으로 살던 인류는 빙하기가 끝나가던 약 1만 3천년 전부터 정착생활과 최초의 농경을 시작하게 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방식에 일대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고고학의 연구 성과는 정착이 먼저 시작되었고 그리고 시차를 두고 농경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위르겐 카우베, <모든 시작의 역사>, 김영사)
농업혁명은 당시 빙하기가 끝나고 따뜻해진 기후변화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곧바로 농업을 낳은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정착과 농업의 발견, 문명의 발생은 서로 다른 다양한 요인이 복합 작용한 결과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핵심 요인은 호모 사피엔스의 뛰어난 환경적응력과 생존 능력 덕분이었습니다.
인간의 이런 능력은 물론 언어를 통한 지능폭발로 자연생태계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게 축적하고 체계화해서 부족사회 전체가 공유했기 때문에 생길 수 있었습니다. 언어를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된 이런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선택한 새로운 세상이 바로 정착과 농경이었습니다.
수렵채취 생활에서 정착생활로 전환한 주요 요인으로 학자들은 대부분 인구압박을 듭니다. 바다 건너 호주와 뉴질랜드, 환태평양의 고립된 섬들까지 지구상의 모든 대륙으로 퍼져나간 호모 사피엔스에게 1만 3천년 무렵부터는 이동해서 수렵채취 생활을 할 수 있는 더 이상의 땅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웃 수렵채취 부족과의 전쟁을 통하지 않고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선택지는 유일하게 정착생활 뿐이었습니다.
실제로 고고학 증거는 이 당시 부족간 전쟁이 끊이지 않고 격렬하게 일어났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동이 불가능한 제한된 지역 내의 부족간 전쟁은 모아이 거대 석상으로 유명한 라파누이(이스터) 섬의 원시림 파괴로 카니발리즘(식인)으로까지 치달은 기근 사태와 모아이 문명의 붕괴 사례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존 플렌리 등 지음, <이스터섬의 수수께끼>, 아침이슬)
1938년 미국 자연사박물관 탐험대에 '발견'될 때까지 5만명이나 되는 파푸아 뉴기니인들은 몇 만년 동안 뉴기니섬의 대협곡에 고립돼 정착과 농경생활을 해왔습니다. 이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끊이지 않는 부족간 전쟁과 상시 전쟁 상태였습니다.(재레드 다이아몬드, <제3의 침팬지>, 문학사상사)
정착과 농경은 중동, 인도, 동아시아, 인도네시아, 환태평양의 섬들, 아메리카 등 전세계 도처의 문명 발상지에서 몇 천년이라는 고고학 연대로 동시다발로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중동의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경우 1년 중 반은 우기였고 반은 건조한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나무는 자랄 수 없었고 대신 드넓은 초지가 형성되었습니다. 한해살이 풀들은 건조한 계절이 다가오면 말라 죽기 직전에 다량의 씨앗을 퍼뜨리고 우기가 돌아오면 우후죽순으로 풍성하게 솟아나는 방식으로 자연선택되었습니다.
이 초원에 정착한 수렵채취인들은 초원의 동물들을 사냥하고 식물의 열매를 채취하면서 초원 생태계에 적응해 생존해 나가야 했습니다. 고도의 지능을 갖춘 인류는 자신들과 함께 초지를 생존의 터로 살아가던 초식동물 가운데 양, 염소, 소, 돼지 등을 가축화 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한해살이 풀 가운데 100여 종을 식량작물화 하는데 성공했고 점차 품종을 개량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동물 가축화와 식물의 품종개량은 인류 최초의 유전자 조작이었습니다.
식량의 저장이 가능해지고 가축 수를 늘릴 수 있게 되면서 이런 풍요는 기후변화에 따른 기근도 대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정착과 농경은 곧바로 문명의 발달과 도시 국가의 출현으로 이어졌습니다.
인간 지능의 경이로운 발명품, 국가
인간의 사회성 뇌는 공유언어와 공유지능의 지능폭발을 통해 더 큰 규모의 강한 사회성과 국가 형성으로 나아가는 경향성을 갖는 것처럼 보입니다.
농경을 시작한 정착 부족사회에서는 농업의 집약화와 함께 종교 의례의 발달, 제사장의 권력화, 족장 사회에서의 계층화 진전, 전사집단의 등장과 전리품 분배 등등 국가로 나아가는동일한 유형의 특징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도시 국가뿐만 아니라 그리스, 인도, 중국, 중남미 등 국가 출현 이전 부족사회와 부족연맹 단계의 소국가들에서는 대부분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농업이 인간에게 더많은 식량과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주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농업으로 전환하고 도시국가가 생기면서 인류는 서서히 중노동의 멍에를 뒤집어 쓰게 되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국가의 출현이란 계급의 출현입니다. 수메르와 잉카 등 모든 도시국가에는 지구라트같은 신전이 중앙에 세워져 있습니다. 국가에는 다양한 부족민들을 통합하는 상징으로서의 이같은 종교 의례용 거대 건축물과 제사장, 세금징수인, 군인 등 일하지 않으면서 합법화된 권력과 폭력을 독점 사용하는 지배계급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식량을 비롯한 모든 물자를 착취해서 살아갔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농민과 그리고 수많은 노예였습니다. 노예는 국가를 유지시키는 맨 밑바닥 초석이었습니다.
약 20만~30만 명이 살았던 최초의 민주주의 도시국가 아테나이에서도 육체노동의 대부분을 담당했던 노예는 주권자인 성인 남성 3만 명보다 훨씬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조차 노예가 많으면 많을수록 국가에는 더많은 권력과 부가 집적되고 집중되는 구조였습니다. 이같은 구조는 오늘날 임금노예인 노동자를 착취해 성장을 지속해온 자본주의 국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정착생활을 하개 된 부족들 가운데 상당수는 농업으로 완전히 전환한 이웃 부족들이 있었음에도 농업의 수용을 주저했습니다. 농경의 이점을 충분히 알고는 있었지만 또한 동시에 국가의 폭력성과 부작용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농경과 수렵채취를 병행하는 생존방식을 선호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사회와 부족연방이 국가로 나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은 사회를 뛰어넘는 국가의 권력과 폭력 집중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출발부터 전쟁기구 자체였습니다. 부족연맹의 전사자 집단이 국가의 상비군이 되었습니다. 이들 군대는 세금과 전쟁의 전리품으로 운영되었습니다. 다른 국가와 부족을 침략해 식량과 물자, 여성과 노예를 약탈하는 것은 전사자라는 손해보다 훨씬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선택이었습니다. 기근이 닥쳤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8세기까지 남아프리카에는 소를 키우며 이동식 농업을 하는 반투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초 족장 중의 한 사람이었던 딩기스와요가 각 부족의 젊은이들로 전사부대를 만들어 수많은 전쟁을 통해 줄루족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이 과정은 부자간, 친족간, 군사 지도자간 피흘리는 권력투쟁과 함께 기록이 없던 1만 3천년전 수메르 도시국가 건설의 생생한 현대식 재현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아자 카트, <문명과 전쟁>, 교유서가)
2차 지능폭발
전 세계 모든 지역의 원시부족은 그 지역 환경에 뛰어나게 적응해 거의 예술작품에 가까운 도구를 사용하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해 왔습니다. 에스키모인들과 칼라하리 사막의 수렵채취민들, 농경 정착민인 아메리카 인디언들까지 이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3~4시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인류학자인 마샬 살린스는 이들 사회를 최초의 '풍요사회'라고 불렀습니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철제 도끼가 생산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철제 도끼를 10배를 더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고 노동시간을 1/10으로 줄이는 데 썼습니다.
전쟁 기구인 국가는 이와 달리 끝없는 정복과 확장, 성장을 추구했고 오늘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근대 국민국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국가는 국가 이전 인류의 지능폭발이 만들어낸 정착과 농경의 산물이자 상상의 가공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단 상상의 건축물인 국가는 형성과 동시에 인류의 거대한 2차 지능폭발을 촉발시켰습니다. 국가는 새로운 수많은 상징과 개념을 필요로 했고 이는 곧바로 인간의 사회성 지능 폭발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국가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 문자를 비롯하여 바퀴와 전차같은 각종 도구와 무기, 건축기술들을 발명해냈습니다. 신과 신전을 둘러싼 무수한 종교 상징과 스토리, 법과 제도라는 가상의 공유 질서, 세금 징수인, 관료 등 새로 만들어진 다양한 직업 등등 국가는 전혀 새로운 수많은 개념 언어들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로 기록했습니다.
학문 또한 국가의 필요에 의한 세계관의 체계화와 조사연구 작업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는 인류의 뇌 용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3차 지능폭발을 외주화해서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언어와 역사를 함께 공유하는 3차 지능폭발의 인공지능과 과연 어떻게 함께 공존과 공유의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요?. 끝.
(* 다섯번째 글로 이어집니다. 이 글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웹진나비>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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