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회장에 선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가 대법관 시절 '그루밍 성범죄' 사건에 무죄 판결을 내린 데 대해 '소송법상 원칙에 따른 결론'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조 후보자는 노란봉투법이나 정부의 일제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 등 예민한 현안과 관련한 질의에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5일 국회에서 열린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48세와 14세 아동의 사랑을 인정해 주는 판결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며 조 후보자의 '그루밍 성범죄' 사건 무죄 판결을 비판했다. 조 후보자는 지난 2017년 중학생에게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접근한 뒤 성폭행해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된 연예기획사 대표 조모 씨의 재상고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당시 조 후보자는 피해자의 문자 메시지 등을 근거로 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조 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전 의원은 "후보자께서는 인터뷰를 통해 '재상고심은 실체에 대한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고 파기환송의 기속력(법원이 한번 내린 판결을 취소할 수 없는 구속)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 파기환송 판결에 법리 오해 위반이 없다고 선고한 것'이라고 말씀했다"며 "그런데 이렇게 부당한 판결에 대해서는 단순 기속시킬 것이 아니고, 사회적 파장이 있다면 전원합의체를 거쳐서라도 실체를 확인해야 되지 않나"라고 물었다.
조 후보자는 "기속력은 법과 대법원 판례로 확립돼 있는 법리"라며 "파기환송한 대법원에서 구체적으로 사실관계를 따져서 환송을 해 내려갔고 그것을 받은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다시 대법원에서 논의할 수 있지만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가 전혀 없다고 해서 올라왔기 때문에 법리상 이렇게 판결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민주당 오기형 의원은 "노란봉투법 질의에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파업은, 즉 노동3권을 행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다만 그 행사 과정에서 사용자의 자유의사가 제압, 혼란이 될 수 있도록 평가되는 경우에 한해서 비로소 업무방해죄가 된다'고 했다. 이런 입장은 일관되게 지켜져야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조 후보자는 "이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는 이상…(지켜져야 한다)"면서도 "이 판례에는 반대 의견이 많았고, 학계에서 반대하는 글도 많이 읽어봤다"고 답했다. "후보자의 소신은 무엇인가"라는 오 의원 질의가 이어지자 조 후보자는 "재판에 관계된 것을 미리 다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민주당 이정문 의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 "정부가 피해자들과 충분한 논의도 없는 상태에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제3자 변제 방식으로 공탁했다"며 "민법의 공탁에 관한 규정이라든지 피해자의 의사를 고려할 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조 후보자는 "이 사건이 만약 제가 대법원장이 된다면 담당할 사건도 되기 때문에 미리 구체적인 사건을 언급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조 후보자는 또 정의당 강은미 의원과의 질의 과정에서 자신이 대법관으로 있던 시기 발생한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 대해 "국민들께 그런 사태가 생겨서 걱정을 끼친 점은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여야는 검찰의 압수수색 남발, 김명수 대법원 체제의 문제점 등을 놓고 조 후보자를 사이에 둔 정치 공방도 벌어졌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어제 검찰이 경기도청에 들이닥쳐 김동연 경기도지사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 관련 내용이었고 김 도지사가 선출되기 1년 전에 이 전 도지사는 그만뒀다"며 "이런 것에 대해 법원이 제지해야 되는데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이 들어오면 거의 100% 다 발부해 준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대법원장 인사청문특별위원장이 "압수수색 필요성에 관해 좀 더 엄격히 심사해야 할 것 같다"며 "특히 개인의 집에 대한 압수수색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주는 충격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수사에 꼭 필요한 범위에 한정돼야 하는데 압수수색의 필요성과 엄격한 심사, 범위에 관해 법원이 의견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조 후보자는 "저희도 압수수색 문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며 "앞으로 세심히 살펴서 필요한 조치가 있다면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은 "윤미향 의원 1심이 1년 5개월 걸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기소된지) 3년 9개월인데 2심에 그대로 있다"며 "국민들은 늘 권력에만 사법부가 동조한다는 의심을 갖는다. 정치권에서는 (법원이) 여와 야에 판단을 달리한다. 또는 재판 지연이 그때그때 다르다. 이것이 가장 많이 일어난 것이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이라고 말한다"고 주장했다.
조 후보자는 "구체적인 개별 수사에 대해 제가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면서도 "일반론으로는 재판이 지연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은 "김명수 대법원장 스스로 6년 내내 논란을 초래했다"며 "약 17억 원의 국민 혈세를 투입해 수입 석재로 호화스럽게 대법원장 공관을 리모델링한 것도 모자라 그 과정에서 국회가 심의 의결한 예산을 무시한 채 예산을 전용하려다 감사원 등으로부터 주의 처분을 받았다. 법조인 아들네가 공관에서 무상 동거도 했다"고 지적했다.
조 후보자는 "전임 대법원장님에 대해 제가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전임 대법원장님이 실패한 것은 반면교사로 삼고 잘한 점은 계승해서 사법부를 지키고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되는 길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답했다.
한편 대법원장 인청특위 위원장은 원래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법제사법위원장이 맡을 예정이었으나 주호영 의원으로 교체됐다. 민주당이 최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국면에서 본회의 개최 전 법사위가 파행된 데 반발하며 김도읍 위원장 교체를 요구했고, 국민의힘 원내지도부와 김 위원장은 이를 전날 받아들였다.
국민의힘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전날 공지에서 "국민의힘은 사법부 수장의 공백을 빨리 해소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대승적으로,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 관련한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사임하고 주호영 의원을 보임하는 내용의 사보임 신청서를 국회 사무처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도 "납득할 수 없지만 사법부 수장의 공백을 빨리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 하에 윤재옥 원내대표에게 사의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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