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대법원 판결을 통해 획득한 법적 권리를 소멸시키기 위해 변제공탁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판결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는 피해자들을 지원하자는 시민단체의 모금이 일주일만에 2억 원을 넘겼다.
'역사정의와 평화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공동행동'은 6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가 지급하는 소위 제3자 변제 '판결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는 피해자들을 응원하기 위한 모금운동에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며 "'역사정의를 위한 시민모금'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6일 낮 12시 현재 누적 모금액은 2억 354만 7099원, 모금 건수는 2781건"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예비 신랑‧신부, 아파트 632세대의 632만 원 기부, 아코디언을 내다 판 시민 등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방식의 성금이 모금되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들의 모금은 정부가 제3자 변제공탁을 실시한 이후 급증했다. 단체 측은 6월 29일 모금을 시작했는데, 공탁이 발표된 지난 3일 오후 6시부터 18시간 만에 1193건, 4885만 2966원의 성금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정부의 변제공탁으로 인해 모금 닷새 만에 1억 원을 돌파하게 된 셈이다.
앞서 3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변제공탁을 추진한 배경으로 시민단체의 모금 운동을 언급하기도 했다. 단체가 모금을 진행해서 피해자와 유족에게 전달하면 이들의 정부 '판결금' 수령 가능성이 낮아지고 그에 따라 채권 소멸에 시간이 걸릴 것을 우려해 공탁을 시도한 것인데, 실제 결과는 공탁은 법원에 의해 막히고 시민들의 모금 행렬만 부추기는 형국이 됐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정부는 자신들의 법적 판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6일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수원지방법원이 정부의 배상금 공탁 신청을 수리하지 않은 데 대해 "법리상 승복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즉시 이의 절차에 착수하여 법원의 올바른 판단을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3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행정안전부 산하)이 정부 해법을 수용하지 않은 피해자 4명과 상속인 파악이 되지 않는 유족에 대해 공탁을 개시했으나 4일 광주지방법원은 정부 해법을 수용하지 않는 양금덕 할머니에 대한 재단의 공탁을 불수리했다.
법원은 양 할머니가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서류를 제출한 것을 두고 공탁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 해석하고 불수리를 결정했다. 이에 외교부는 이날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이의신청을 했는데 5일 광주지방법원은 이 이의신청에 대해서도 또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같은날 수원지방법원 역시 광주지방법원과 유사한 이유로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공탁을 받을 대상은 고(故) 정창희 할아버지의 배우자와 고(故) 박해옥 할머니의 자녀 등 2명인데 이들 모두 정부의 방안을 거부하고 있다.
수원지방법원 역시 광주지방법원과 마찬가지로 이 점을 고려해 정부의 공탁을 수리하지 않았다. 법원은 "공탁신청서에 첨부된 서류에 의하면 제3자 변제에 대한 피공탁자(유족)의 명백한 반대의 의사표시가 확인되므로, 이 사건 공탁 신청은 민법 제469조 제1항에 따른 제3자 변제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법원의 불수리에 대해 4일 밝힌 입장자료에서 "공탁 제도는 공탁 공무원의 형식적 심사권, 공탁 사무의 기계적 처리, 형식적인 처리를 전제로 하여 운영된다는 것이 확립된 대법원 판례(96다11747 전원합의체 판결)"라며 공탁관의 판단으로 공탁을 불수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7년 선고됐던 이 판례보다 더 최신 판례인 2009년 5월 공탁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사건에서 대법원은 공탁공무원의 불수리 권한을 인정했다. 대법원규칙인 '공탁규칙'의 제2조는 시‧군법원 공탁관의 직무범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첫 번째 호에 나와 있는 직무가 '변제공탁'이다.
이에 정부가 법리검토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6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판례에 대해 일일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며 "면밀한 법적 검토를 받아서 공탁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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