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작은 전세사기 사건이 계속 터진다. 그래서 전세사기 사건 또는 전세사기 의심 사건들에 관한 보도가 많아졌다.
<'수원 전세사기' 정씨 일가, 혐의 부인...피해 규모 '500억원'>(23.10.30 머니투데이)
<'갭투자로 960여채 보유' 세종시 전세사기 부부 검찰 송치>(23.11.07 조선일보)
<또 전세사기...이번엔 오피스텔 '신탁 사기'>(23,10.21 YTN)
<'무자본 갭투자' 아파트 49채 굴린 교육부 공무원…6채 보증사고>(23.09.26 MBC 뉴스)
<'전세사기' 1.5조 시한폭탄…"'바지사장' 사기, 국가는 책임 없나">(23.09.11 노컷뉴스)
<'사각지대' 다가구·신탁 전세사기, 공공이 개입해 구제한다>(23.11.02 서울경제)
# 최근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수원 대규모 전세사기. 수원에서 '부동산 큰손'으로 불리던 정씨는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건물을 마구잡이로 매입했다. 2020년부터는 법인을 설립하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18개나 되는 법인을 가지고 임대사업을 했다. 정씨는 근저당이 있는 건물을 모두 전세로 내놓아 수백 건의 임대차 사기 계약을 체결했다.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던 아들과 처남이 피해자들을 안심시켜 가며 그 계약을 중개했다고 하니, 명백한 사기 사건이다. 특히 이 사건의 경우 '공동담보'와 '쪼개기 대출'이라는 수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피해 임차인들이 계약 전에 자신이 들어갈 호수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했다 하더라도 위험의 전부를 인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 대전에서는 부동산 임대업체 대표 B씨가 지난 2020년부터 무자본 갭투자로 다가구주택을 구입하고 기존 월세계약을 전세계약으로 전환, 155세대의 보증금 160억 원을 편취했다. B씨의 동생과 지인이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노릇을 했다. 임차인들은 계약 당시 공인중개사가 건네준 중개대상물 확인 설명서에 선순위 보증금이 3억 원으로 표기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선순위 보증금은 6억 원이었다. 계약 시점은 몇 년 전이었으니, 공인중개사가 서류를 보여주며 안전하다고 말하면 임차인들은 그냥 믿었을 가능성이 크다.
# 교육부 공무원이 무자본 갭투자에 가담했다. 과장급 직원인 B씨는 겸직 신고도 하지 않고 부동산 임대사업자로 등록해서 서울 7채, 경기도 25채, 강원도 12채, 경상남도 2채, 광주광역시 2채 등 총 48채를 갭투자로 사들였다. 그중 6채가 깡통전세가 되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했다. 작정하고 사기를 쳤다기보다 깡통전세에 가깝지만, 어찌됐든 공무원이 시민에게 봉사하기는커녕 시민에게 막대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힌 셈이다. 공무원이니 정보가 빨랐을 테고, 임대사업자가 되었으니 정부가 제공한 종부세, 재산세, 임대소득세 등의 세제 혜택을 고스란히 받아갔을 것이다.
# 세종시에서는 공인중개사 부부인 C씨와 D씨, 그리고 다른 공인중개사 6명이 전세사기 혐의를 받고 있다. 부부는 도시형 생활주택 등을 매입하면서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활용하는 이른바 '동시 진행' 수법을 썼다. 전국에 960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170여명의 임차인에게 약 270억원의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C씨와 D씨는 '사기'가 아니라 '투자 실패'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대형 로펌 변호사를 계속 교체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 인천 남구에 위치한 13층 오피스텔. 임차인들은 갑자기 집에 대한 공매가 시작되니 집을 비워달라는 공문을 받았다. 임차인들은 오피스텔이 신탁등기된 사실을 모르고 계약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일반적인 임차인들에게 신탁 관련 전문지식이 없다는 점을 악용한 사기 수법이다.
원래 부동산 신탁은 임대인(위탁자)이 은행 대출을 받는 대신 건물의 소유권을 신탁회사(수탁자)로 잠시 이전했다가 대출을 상환하면서 소유권을 돌려받는 제도다. 이럴 때 임차인은 신탁원부를 검토해서 위탁자의 임대 권한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임대 권한 없는 집주인과 전월세 계약을 체결할 경우 그 계약은 무효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세사기의 형태와 수법은 다양하다. 언론 보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전세사기 외에 '매매 사기'와 '월세 사기', '역전세 사기' 등의 기상천외한 수법도 등장했다.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일반인들이 이 모든 사기의 가능성을 사전에 조사하고 대비해서 피해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니 이사를 한 번 가려면 기존에 살던 집의 보증금을 무사히 받을 수 있을지, 새로운 집의 계약은 안전할지 걱정이 앞선다.
지난 5월 제정된 전세사기 특별법은 사각지대가 많고 피해자 지원이 미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정부가 그동안 지원의 사각지대였던 다가구와 신탁 전세사기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 피해자들을 구제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전세사기를 근절할 근본적인 방책은 실행된 게 거의 없다. 전세사기든 깡통전세든 여전히 개인이 알아서 조심하고 피해야 한다. 정부가 만들어서 홍보하는 '안심전세' 앱으로는 안심이 안 된다. 그래서 민간 기업들이 깡통전세 위험을 정밀 분석하는 앱을 만들어 장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요즘에는 다수의 임차인이 전세금반환보증보험(이하 보증보험)에 가입한다. 2~3년 전에 전세 계약을 체결한 임차인들은 전세사기에 대한 경각심이 높지 않았고, 보증보험 가입도 지금보다 적게 했다. 요즘 터져 나오는 사건들에서 임차인들의 피해가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앞으로는 괜찮아질까? 아니다. 문제 발생시 임차인들이 보증보험을 통해 보증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보증보험을 제공하는 공적 기관들의 손실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사기'든 '투자 실패'든 간에 임대인이 편취한 보증금을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주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아니, 이미 그런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검토를 요하는 문제다.
전세사기의 '바지사장'도 현행법의 구멍이다. 무자본 갭투자 방식의 전세사기에서는 무직자, 기초수급자 등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들의 처지를 이용해 그들의 명의를 빌린다. 물론 이렇게 바지사장으로 임대인이 된 사람에게는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다. 노컷뉴스는 그런 임대인(바지사장)들이 각각 주택 수백 채에 대해 보증보험을 발급하는 동안 HUG 등의 보증기관이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능력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관리감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언론들은 전세사기와 관련해서 제도의 문제도 아니고 피해자의 주거권도 아닌 다른 부분에 주목한다. 바로 임대인의 고충이다.
<"올들어 전월세 3건 계약이 전부" 전세 사기지역 무너진 빌라시장>(23.11.01 매일경제)
<빌라·오피스텔 시장 꽁꽁..."전세사기 잡으려다 임대인 파산">(23.10.26 동아일보)
<"아파트 갈래" 전세사기 후폭풍...빌라, 사지도 살지도 않는다>(23.11.07 중앙일보)
<보증보험 가입 문턱 높아지자…싸늘한 빌라 전세시장>(23.09.18 한국경제)
<보증보험 가입요건 강화에 벼랑 끝 내몰리는 임대사업자들>(23.09.29 조선일보)
<매일경제>는 빌라 분양대행업자들의 "힘들다"는 하소연을 전했다. 전세사기가 빌라 시장을 "빙하기"로 만들었다고 걱정하고, 심지어 신축빌라 공급도 감소해서 "취약계층의 주거비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기사 말미에서는 빌라의 보증보험 가입 요건이 공시가격의 126%(기존에는 공시가격의 140%)로 조정되어 임대인들이 "곤혹스러워"한다고 밝혔다. 취약계층을 언급했지만 사실은 빌라를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의 입장에 치우쳐 있다.
<동아일보>는 올 1~8월 다세대·연립 전세 거래량이 24.7% 감소했으며 오피스텔 시장도 경색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또 빌라에 대한 "공시가 126% 조정으로" 미반환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는 임대인들의 주장을 보도했다. <중앙일보>도 빌라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는 내용으로 비슷한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 말미에는 빌라 수요 확대를 위해 정부가 소규모 재건축 등을 풀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실었다.
시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긴 하다. 그러나 모든 시장은 침체되는 시기가 있게 마련이고, 최근 빌라 전세시장의 침체에는 젊은 세대의 '전세사기 공포'라는 명백한 원인이 있다. 단순히 업자들이나 임대인들이 힘들다고 해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직행할 수는 없다. 또 빌라의 보증보험 가입 요건이 공시가격의 126%로 조정되어서 일부 임대인들이 곤혹스러워한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어서 정부가 그 비율을 조정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물론 그 점에 대한 임차인들의 입장은 어떤지도 들어봐야 균형이 맞는다.
<스멀스멀 다시 나왔다…전세 오르자 갭투자 다시 기승>(23.10.21 헤럴드경제)
<인천송도국제도시, 롤러코스터 집값에 갭투자 '쑥'>(23.11.05 이데일리)
<전세사기 잡으려 안간힘인데… 시장선 '갭투자' 다시?>(23.10.05 데일리안)
갭투자 보도는 지난 몇 년간 중단된 적이 없다. 어느 지역에서 갭투자가 늘어나고 있고, 그 지역에서 갭투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이며,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갭'이 얼마쯤 되는지를 친절하게 소개한다. 최근에는 경기도와 서울 일부 지역의 갭투자가 늘고 있다고 해서 사례를 한번 찾아봤다.
·시흥성원 59㎡ - 10월 11일 2억4500만 원에 매매 거래, 같은 날 2억1000만 원에 전세 거래(실투자금 3500만 원)
·파주시 해솔마을 4단지 벽산우남연리지 – 10월 27일 4억1300만 원에 매매 거래, 11월 27일 3억7000만 원에 전세 거래(실투자금 4300만 원)
·서울 은평뉴타운 59㎡ - 10월 16일 7억8000만 원에 매매 거래, 10월 28일 4억8000만 원에 전세 거래(실투자금 3억 원)
물론 집값 폭등기였던 몇 년 전과 비교하면 갭투자 건수가 많지 않다. 하지만 주택 매매시장의 상승세가 꺾이고 매물이 쌓이고 있는 지금도 아파트, 다세대주택, 도시형생활주택 등 다양한 유형의 주택에 갭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위험 신호일 수 있다. 그 투자자들은 나중에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사람들일까? 특정 지역에 갭투자가 증가하면 정부와 지자체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세사기의 출발점인 무자본 갭투자를 차단할 방법은 무엇인가? 윤석열 정부가 이런 질문에 열심히 답을 찾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전세사기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재차 밝혔을 뿐이다.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전세사기가 발생하는 원인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원 장관은 "전세제도가 이제 수명을 다했다"면서 "갭투자나 보증금을 일단 다른 데 쓰고 다음 임차인에게 돌려받는 제도 자체에 손을 댈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전세 제도 개편 의사가 없다고 말을 바꿨다. 그 이후에 정부가 시행한 대책은 소액임차인 범위 소폭 확대, 보증보험 전세가율 한도 소폭 조정, 임대인 납세증명서 정보 요청권 등 소소한 것밖에 없었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갭투자를 억제하는 것이 기본이다. 예를 들어 전세보증금을 LTV 비율과 동일하게 주택가격의 60% 이하로 제한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임대인이 주택가격의 40%에 해당하는 자기자본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깡통전세 위험이 줄어들고, <매일경제>가 걱정하는 취약계층 임차인들의 주거비 부담도 줄어든다. 또 갭투자의 유인을 없애기 위해서는 다주택자에게 임대사업자라는 이름을 붙여 세금 특혜를 주던 것을 폐지하고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 모두 투자자와 자산가들이 싫어하는 정책이다.
방법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의지가 없고 용기가 부족해서 못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