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임대인이 유명한 임대인이 아니라서 너무 안타깝다."
자신의 전세 사기범이 유명임대인이 아닌 것이 안타깝다고 자조하는 피해자 증언은 올해 6월부터 시행된 전세사기특별법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특별법이지만 까다로운 전세사기 피해자 요건으로, 지원대상을 걸러내는 보여주기식 특별법이라는 비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각지대 또한 넓어서 사실상 배제되는 피해자가 많다. 특별법 시행 이후에도 연이은 전세사기 피해자의 사망은 불충분한 특별법을 두고서 국가적 책임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불충분한 전세사기 특별법
전세사기 피해자 제4호 요건은 특히 악명이 높다. 임대인의 '전세사기 의도'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임대인에 대한 경찰 수사가 개시돼 기망행위 등이 드러나야 한다. 그러나 수사 개시 후 건축왕, 빌라왕 같은 큰 규모의 조직적 사기가 아니면, 불송치 되어 전세사기 피해 구제가 불가능하게 된다. 때문에 수많은 피해자가 자신의 임대인이 유명하지 않음을 한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피해자의 규모'를 증명해야 하는 제3호 요건도 장벽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다수의 임차인에게 피해자가 발생하였을 경우를 상정하는 데, '다수' 기준이 모호하여 보증금 반환 능력 없이 다수 주택을 취득하여 시세차익을 노리는 소규모 갭투기꾼으로 인해 발생한 무수한 피해를 전세사기 지원에서 배제하고 있다. 임차인은 임대인이 도대체 몇 채의 집을 가졌는지 알 수도 없는데,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정리하면 건축왕, 빌라왕 전세사기처럼 피해 규모가 크기에 수사기관 수사가 이뤄져 잘 알려진 명확한 사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피해 구제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이처럼 피해자 구제에 있어 모호하고 부당한 부분이 없지 않음에도, 피해자를 선정하는 전세사기피해자지원위원회 운영은 불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별법 개정, 그리고 전세시장
'전세사기 의도'와 '피해자의 규모'에 대한 세부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서 이뤄지고 있는 피해자 거르기 밀실 심의를 멈추고 회의록을 공개해야 한다. 불충분한 전세사기 특별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제3호의 요건을 개정하여 피해자 규모상의 '다수'를 2호 이상 주택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제4호의 요건을 개정하여 '전세사기 의도'를 명확히 입증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임대차 종료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으며, 보증금 손해를 보고 있는 임차인에 대해서는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전세시장이 변화해야 한다. 6월부터 시행된 전세사기 특별법은 피해의 범위를 '전세사기'로 한정했다. 부동산 상승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수많은 갭투기꾼과 전세시장의 무도함이 서민의 주거권을 유린함이 명확함에도, '깡통전세' 문제는 모두 함구한 것과 마찬가지다. 건축왕과 빌라왕은 무도한 전세시장의 정점이었을 뿐이다.
전세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피해자의 보증금을 선구제하고, 국가가 시장에서 후회수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 관리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공공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을 매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최소한 최우선변제금조차 받지 못하는 절망스러운 상황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나아가 대출로 '빚내서 집사라', '빚내서 세들어라'는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만 한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부양을 위해 대출 완화 정책을 쓰면, 늘어난 대출금은 탐욕적인 부동산 업자들에게 고스란히 흘러갔다. 평생을 일해도 갚기 어려운 큰 대출로 인한 부담과 위험은 오롯이 서민에게 떠넘겨졌다. 전세사기와 건축왕은 정부 주거정책의 이면이다. 전세대출 규제와 보증금 상한제의 도입, 임대사업자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절박하다. 공공임대주택 확보를 통한 주거권 중심 정책으로 주거정책의 큰 틀을 변화시켜야 한다. 집으로 인해 얼마나 더 죽어야, 집이 수익성 좋은 매물이 아니라 삶의 터전임을 주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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