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동해상에서 열흘간 표류하며 남한에 구조요청을 했던 북한 선박이 이날 늦게 북한군에 예인됐다. 이 과정에서 남북은 직접 소통을 하지 못했다. 남북 간 핫라인이 모두 가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30일 이성준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 공보실장은 이날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표류하던 북한 선박이 구조될 수 있도록 우리 군은 유엔사 및 국제상선통신망을 이용해 상황을 전파했으며 어제 야간에 북한 선박이 표류하던 선박을 예인해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합참에 따르면 해당 선박은 29일 오후 2시 16분경 강원도 고성군 제진항 동쪽 약 200km, NLL 북쪽 약 3km 해상에서 표류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구조 요청 신호를 해군 경비함이 포착했고, 이들은 열흘 간 표류 중이며 북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군은 컵밥과 초코바, 생수 등 비상식량을 제공했고 북한 측에 유엔군사령부와 국제상선통신망을 통해 이를 알렸다. 남북 간 핫라인인 군 통신선을 북한이 수신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다른 통신망을 사용한 것이다.
이와 함께 합참은 이날 오후 언론에 해당 사안을 공지하며 이들이 남한으로의 귀순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에 이들을 예인하는 과정에 협조해 달라는 의사를 우회적으로 보낸 셈이다.
이후 지난 2일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2023년 4월 7일 북한의 일방적인 통화 불응 이후 남북 간 통신·연락 중단 상황이 210일째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그동안 우리는 남북간 합의한 대로 매일 두 차례 정기적으로 통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북한은 응답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구 대변인은 "지난 10월 29일 동해 NLL(북방한계선) 인근에 표류한 북한선박 구조 사례에서 보듯이 연락채널은 해상에서의 선박 조난, 재난‧재해 등에 따른 통보와 협의에 필수적인 채널로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단되어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는 우리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과도 직결되는 것인 만큼, 남북간 연락채널 유지는 인도적 사안이기도 하다"라며 "북한은 긴급 상황들에 대한 상호 조치를 해 나갈 수 있도록, 하루빨리 연락채널을 복구하고, 정상화 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정부가 사건이 발생한 지 나흘이 지난 시점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히는 것을 두고 늦장 대응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통일부의 입장 자체에는 반박할 내용이 없어 보인다. 정부가 언급한 인도적 차원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연락채널의 정상적 가동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연락의 한 쪽 당사자인 북한이 남북 간 연락을 남북관계 상황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그동안 수차례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연락채널의 가동과 폐쇄를 반복해 왔다.
가장 최근의 연락 중단인 지난 4월 7일 이전에도 북한은 남북 간 현안을 문제삼으며 연락을 중단했다. 지난 2021년의 경우 8월 10일 한미 연합 군사 훈련에 대한 반발로 연락을 중단했다가 그해 10월 4일 다시 통화에 응했다.
또 2016년 2월 12일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됐을 때 북한과 통신선이 모두 중단됐었다. 그러다 2018년 1월 3일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이유로 연락이 재개됐다.
2013년의 경우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있은 지 약 한 달 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안이 나왔고, 여기에 반발한 북한은 그해 3월 8일 판문점 연락채널을 단절했다. 2010년은 천안함 사건 이후 5월 24일 발표된 이른바 '5.24 조치'에 대한 반발로 북한이 연락을 중단했으며, 2008년에는 유엔 총회에서의 북한 인권결의안이 문제가 됐다.
북한 연락 단절의 '클라이 막스'는 지난 2020년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발 사건이었다. 폭발이 있었던 6월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이유로 들었다. 북한의 이같은 충격적 결정에 통일부 내에서는 이제 개성에서 남북 간 어떤 사업을 할 수 있겠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북한이 남북관계 또는 대외문제에서 불만을 가질 수는 있다. 체제의 위협을 받고 있는 입장에서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 연락채널을 활용하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않을뿐더러, 한반도뿐만 아니라 북한의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이 나름의 불만을 표시하고 싶다면 연락을 아예 차단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연락사무소 연락채널을 열어두는 것이 정무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군 통신선만이라도 열어둘 수 있다. 매일 개시‧마감 통화를 하는 것이 대남기조와 맞지 않다면 기간을 정해 정기적으로 연락을 유지하면서 위급한 상황에서는 연락을 받도록 담당자를 상주시킬 수도 있다.
남한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연락사무소 직원을 철수시키면 될 일이지, 굳이 건물을 폭파시킬 것까지는 없는 것처럼, 북한이 남북 연락채널과 관련해 '운용의 묘'를 발휘할 공간은 얼마든지 있다.
물론 북한이 연락채널을 임의대로 단절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남북관계를 잘 관리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전쟁 속에서도 대화는 필요한데, 전시도 아닌 평시에, 대화도 아니고 최소한의 연락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남한의 국가 안보에 위험 요인을 내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한이 보다 적극적으로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남한의 노력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북한의 확고한 결심이 필요하다. 연락이라는 것이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특성을 고려했을 때, 어떤 경우에도 연락채널은 유지하겠다는 북한의 결정이 없이는 남한의 어떤 노력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중인민제일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입장을 보더라도 남북 연락채널은 열어두는 것이 낫다. 이번처럼 '인민'이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을 때 남북 연락채널이 잘 유지되고 있다면 한 명이라도 살릴 가능성이 더 높아지지 않겠나. 그러니 김정은 위원장, 전화 좀 받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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