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다운 전기 노동자를 기억하십니까?
2021년 11월, 결혼을 앞둔 38살의 건장한 청년 노동자가 전봇대 위에서 감전이 돼 불에 타들어 갔습니다. 사고가 난 후 2년 정도 지나왔는데, 검찰에선 산업안전보건법상 한전도 죄가 없고, 일 시킨 업체도 죄가 없다고 합니다.
이런 억울한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건설사들은 으레 재해로 인한 형량은 본인들이 정하는 거라고 말해 왔습니다. 일용직· 기간제·특수고용직 등 '비정규직 백화점'이라 일컫는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이 건설사들을 상대로 싸우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건설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
10월 27일이면 전기 노동자 정해진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에 불을 당긴 날입니다. 2007년 제가 막 노동조합에 들어왔을 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 이철복 철근 노동자가 밀린 돈 달랬다가 현장 소장한테 맞아 죽었습니다. 2008년, 기름값이 미친 듯이 올랐던 때에 생활고에 시달리던 김상만 노동자가 자신의 덤프트럭 적재함을 들어 올려 목을 맸습니다. 2009년 한 레미콘 공장에선 사측이 만들어놓은 노노갈등이 극에 달했고, 하재승 노동자가 칼부림 속에 죽었습니다.
그때마다 건설노조는 동지들이 가는 길이라도 외롭지 않게 노동조합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 동지들은 제사용품을 불태웠습니다. 죽은 이들의 원통함을 달래다가는 끝이 없겠다고, 차라리 싸우자고. 그래서 조합원 수가 1만이 조금 넘던 건설노조는 올해 초 8만에 가까운 조직으로 확대했습니다. 그간 임금도 올려봤고, 체불 방지 법제도도 만들어봤습니다.
유례없는 노조 탄압보다 산재가 힘들다
지금 우리는 유례없는 노조탄압을 당하는 중입니다. 2천명이 넘는 조합원이 경찰조사를 받고 있고, 20명이 넘게 옥살이를 하는 중이며, 100여 차례가 넘게 노동조합 사무실과 자택 압수수색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고 양회동 열사가 '정당한 노조 활동에 검찰 조사는 노동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노동조합 탄압하는 거, 어제오늘 일도 아닙니다. 매번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어떻게든 이겨낼 겁니다. 한편으로는 보수·경제 매체에서 대문짝만하게 실리던 전교조, 금속노조만큼 건설노조도 컸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동조합에서도 산업재해만큼은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노동재해를 없앨 수 있을지 답답합니다.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나면 으레 '작업자 과실'이란 말이 따라옵니다. 안전모를 안 써서, 미숙해서, 초보라서... 화재사고가 나면 노동자 담뱃불부터 의심했습니다. 2014년 고 김성기 타워크레인 노동자가 현장에서 죽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김성기 노동자는 타워크레인의 키를 높이는 텔레스코핑 작업 중 장비가 전복돼 돌아가셨는데, 부품 결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고 후 되레 재해 원인이 타워크레인 조종사 작업자 과실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의아한 상황이었는데, 3년 후 왜 그랬는지 알게 됐습니다. 2017년 그 현장에서 일했던 원청 건설사 안전담당자가 노동조합을 찾아왔습니다. 본인이 산업안전관리비를 유용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관리비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건설업에만 적용되는 사항입니다. 건설사들이 하도 안전 비용을 지출하지 않아 공사대금 중 2~3% 정도는 안전보건 관련 비용으로 책정하는 겁니다. 이 돈으로 안전벨트, 추락방지시설, 안전관리자 임금 등을 지급하도록 돼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부고발자인 원청 건설사 안전담당자는 사고 이튿날부터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산업안전보건공단, 수원남부경찰서, 경기지방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담당자들을 만났습니다. 고용노동부나 사이비 기자 등에게 그간 정기적으로 안전관리비에서 비자금(수고비)을 건네 온 터였습니다. 그러면서 기계 결함은 수면 아래로 내려앉았고, ‘노동자 과실’이 사고의 주된 원인이 되어갔습니다.
당시 원청 건설사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를 그냥 돌려보내, 사고 직후 어떻게든 캐빈(조종석) 밖으로 탈출하려 했던 고 김성기 노동자를 살려낼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그러한 사실들도 기억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건설현장은 매한가지입니다.
디엘이앤씨의 연이은 산재사망, 정부는...
고용노동부는 디엘(DL)이앤씨 압수수색 후 '사측이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적절하지 않게 썼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특히 디엘이앤씨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처음 발생했던 GTX 중대재해에서도, 사측은 사고 직후 119를 바로 부르지 않고 30분을 지체했습니다. 지정병원을 알아보느라 골든타임을 놓친 겁니다. 지정병원은 종종 산재 은폐의 수단이 되곤 합니다. 해당 사고에 대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육중한 전선 드럼 일을 하려면 크레인 같은 장비를 써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칫 전선드럼이 굴렀더라면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 부실은 물론, 디엘이앤씨의 현장에선 물량도급, 불법도급으로 인한 무리한 공사가 횡행했을 것입니다. 안양에서 타설 노동자가 펌프카 붐대에 맞아 사망한 재해 역시 그렇습니다. 그 넓은 현장에 펌프카를 두 대 이상 불렀어야 했을 텐데, 한 대로 작업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중이 쏠려 콘크리트를 쏘아 올리는 붐대가 부러졌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건설현장은 원래 그래'라고 말합니다. 건설현장은 원래 위험한 곳이고, 다만 디엘이앤씨가 운이 없었던 것일까요.
세월호 이후 우리는 안전 재해의 구조적 모순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건설현장에는 매년 세월호가 침몰합니다. 1년이면 400명, 500명의 건설노동자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거의 대부분 숫자로만 남는 무명씨의 죽음입니다.
건설노동자들의 산재는 분향소조차 없었다
2016년 구의역 김군 재해가 있은 지 얼마 안 된 때였습니다. 장안철교 공사 현장으로 첫 출근을 했던 29살 노동자가 추락사했고, 해당 현장에 분향소가 차려졌습니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건설노동자도 추모해야 한다며 꽃을 놓으면서 다리 밑은 작은 추모 공간이 됐습니다. 건설노동자의 죽음에 꽃이 놓인 건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민단체들과 함께 그럴싸한 분향소를 차렸습니다. 디엘이앤씨 건설일용하청노동자 고 강보경 씨의 죽음을 기리는 분향소입니다. 건설노동자의 죽음에 시민대책위가 만들어지고, 또 분향소가 차려진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고 강보경 노동자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공개 사과를 받고 재발방지대책을 받아 내야겠습니다. 그리고 디엘이앤씨에서 산재로 사망한 또 다른 7명의 이름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난 1년 5개월 동안 강보경 씨의 죽음 전에 7명이 더 죽었으니까요.
그리고 너무 많아서 지나쳤을지 모를, 살아서도 죽어서도 외로웠을 그 죽음에 영면을 기원하는 꽃이 놓였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금 이 분향소가, 건설일용노동자 강보꼉 씨의 투쟁이 그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투쟁은 반드시 이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가 어떤 모습이든 저는 이미 승리하는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싸우고 계신 유족 분들께 송구하고 또 감사합니다. 함께 생명의 꽃길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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