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서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양쪽에서 '성과 부족' 질타를 받았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국민 여러분의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공수처 책임자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공수처 담당 사건에서) 구속영장이 10건 발부되면 큰일 난다"고 항변했다.
김 처장은 공수처 담당 사건 가운데 여야 간 이견이 극심한 감사원의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표적 감사' 의혹 수사와 관련해선 "수사 사항을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9일 국회에서 공수처·법제처를 상대로 국정감사를 벌였다. 공수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출범 3년차인 올해 공수처는 1470건의 사건을 처리했다. 이 가운데 기소는 0건이었으며, 검찰에 기소를 요구한 사건도 2건에 불과했다. 이에 법사위 위원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공수처 기능에 의문을 드러냈다.
특히 공수처 출범을 반대했었던 국민의힘은 무용론을 강하게 제기하며 '폐지'까지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은 "대한민국 기관에서 이렇게 성과가 없는 기관이 있는지, 이런 기관이 어디 있나. 그렇게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이렇게 성과가 없는데도 공수처가 계속 유지돼야 되느냐"고 물었다.
같은 당 전주혜 의원도 "지금 이 상태의 공수처는 오히려 폐지하는 것이 낫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초라한 성적표"라며 "공수처는 사실 존속을 장담하기가 어렵다"고 평가했다.
전 의원은 이어 "한 놈만 팬다"며 공수처의 공정성‧중립성 문제도 제기했다. 그는 "민주당 고발 사건에는 아주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고, 최근 감사원이랄지 아니면 또 쌍방울 그룹 대북 선거 봐주기 수사 의혹까지 전방위적으로 지금 수사를 하고 있다"며 "지난 대선 당시에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만 4건을 입건했다"고 지적하며 김 처장의 사과를 촉구했다.
유상범 의원도 "퇴직 검사들이 한 말 중에 저한테 와닿는 것은 '내부 비판 의견을 외면한다', '공수처 모 검사는 이성윤 (전) 서울지검장 '황제 조사' 논란이 일자 수원지검에 대한 내사에 착수하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라며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공수처 3년간의 운영에 굉장히 문제가 있지 않았나"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 처장은 "한 쪽 수사만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희가 올해 공소 제기를 요구한 게 2건"이라며 "민주당 측 인사라고 알려져 있는 (조희연 전 서울시) 교육감, 그 다음에 문재인 정부 때 장관 한 분(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공소 제기를 요구한 게 있다. 소위 말해서 전 정권 인사"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목표를 갖고 기소를 하기 위해서 달려간다든지 그런 수사는 하지 않는다"면서 "공정성은 저희가 어떤 사건을 수사하느냐 이것보다도 그 사건을 불편부당하게 공정하게 하느냐 저희는 그렇게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격려와 질타가 동시에 나왔다. 송기헌 의원은 "지금까지 3명의 검사를 기소했는데 그 정도만 가지고도 기소 독점을 하고 있던 검사들에 대한 충분한 견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당이 제기한 '공수처 무용론'을 반박했다.
권칠승 의원은 "대한민국을 몇 년 동안 시끄럽게 하는, 50~60명 검사가 투입됐다고 하는 이재명 대표 사건 같은 경우에 보면 결국에 구속영장도 기각되고 그러는데 그런 것하고 비교해서 너무 기죽지 마시라"고 김 처장을 격려했다.
김 처장은 "여러 법조인, 원로분들을 만나 뵈면 '공수처라는 기관이 언제 자리를 잡을 것 같냐' 하면 대체로 10년 이렇게 말씀하신다"며 "어느 기관이 3년 만에 뚝딱 자리를 잡고 성과를 내고 그러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에 공수처가 일을 잘해서 10건을 기소했다고 생각해보라. 나라가 안 돌아간다. 지금 구속영장이 전부 기각돼서 0이라서 죄송하지만 구속영장이 10건 발부되면 큰일 난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공수처법에 따른 공수처 수사 대상은 국회의원, 판·검사, 장·차관 등 행정부 고위공무원(정무직 공무원), 대통령실·국정원 소속 3급 이상 공무원, 장성급 이상 군인과 경무관급 이상 경찰관 등이다. 이런 고위공직자 10명이 한꺼번에 구속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날 <연합뉴스>는 김 처장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답변자료에 '장차관 수십 명 기소하면 나라 망한다'는 메모지가 붙어 있는 장면을 포착하기도 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그러나 "여당 의원들이 문제제기하는 것은 일종의 정파적 이해도 있을 수 있지만 객관적인 지적들을 지금 하시는 부분도 있다"며 감사원 표적 감사 의혹 사건과 해병대원 사망 사건 윗선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가 더딘 점을 지적했다.
박 의원은 감사원 사건과 관련해선 "현재 그러는(수사가 더딘) 사이에 내부 진상조사 TF를 만들어서 절차와 내용에 문제 제기한 사람을 조리돌림하는 문건을 돌린다"며 "국방부는 더한다. 지금 귀신이 산다. '해병대 사고 논란에 대한 진실' 작성 책임자가 누군지 얘기를 안 한다. 누가 작성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김 처장은 "일부러 수사를 천천히 하고 그런 게 아니고 저희가 형편이…(안 된다). 여러 건의 중요 수사를 동시에 하고 있다"고 하자, 박 의원은 "그러면 별로 각오를 하고 나오신 게 아니지 않느냐"며 질타하기도 했다.
김 처장은 거듭된 비판에 "감사원이나 국방부 같은 중추적인 국가기관이 의혹에 휩싸여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최대한 빨리 증거를 통해서 (밝혀지도록) 저희가 노력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공수처 무능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초래한 결과라는 취지로 비판했다.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은 "공수처법 탄생 과정을 보면 참 답답하다"고 탄식을 했고, 같은 당 유상범 의원은 "공수처가 지금 이 모습을 만들어 낸 것도 민주당이고 운영 상황에 대해서도 지적하는 것도 민주당이고, 참 아이러니하다"고 꼬집었다.
한편 김 처장은 현재 여야 간 쟁점 사안인 감사원의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 표적 감사 사건에 대해서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앞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등 타 피감기관장들이 수사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한 것과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김 처장은 '전현희 감사보고서' 공개 절차 논란과 관련해 '유병호 감사원 사무처장은 감사위원 열람을 건너뛰어도 된다는 입장이고 조은석 감사위원은 (본인) 결재가 필요하다는데 입장 밝혀달라'는 취지의 민주당 김의겸 의원 질의에 대해 "지금 법률해석이 사실은 쟁점이 되고 그래서 수사 사항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견해를 밝히는 것은 수사 사항을 말씀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도 "표적 감사를 넘어서서 조은석 감사위원에 대한 뒤집어씌우기 감사다. 고약하지 않느냐"고 의견을 물었으나, 김 처장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최선을 다해서 지금 진행 중"이라고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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