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해라. 유가족에게 2차가해도 사과해라." -윤미향 의원
"중대재해법을 피하기 위해 (수문감시원 계약 방식을) 도급계약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 아니냐." -정희용 의원
"(농어촌공사가 발주한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 알고 있나." -윤준병 의원
지난 13일,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선 지난여름 전남 함평군에서 발생한 '수문감시원 사망사고'의 책임이 한국농어촌공사에 있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수리시설감시원 오혜선(가명, 67세) 씨는 지난 6월 폭우가 오자 농경지 침수를 막기 위해 수문을 열러 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당시 오 씨에겐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가 주어지지 않았고, 사고 현장에는 난간 등 추락방지 시설도 없었다.
수문감시원은 농어촌공사와 '도급계약'을 맺고 저수지, 양수장, 제수문 등을 관리한다. 1년 중 농번기 5개월간 월 40~60만 원 사이의 보수를 받고 일한다. 농어촌공사는 이들과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단 이유로 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반면 노동계에선 '농어촌공사가 사망사고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을 주장하고 있다.
13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병호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은 오혜선 씨 사망과 관련 "죄송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가족은 1인시위에 나섰다. 유가족은 "이 사장의 사과는 명확한 책임 인정과 구체적 대책이 빠진 반쪽짜리 사과"라는 입장이다. (관련기사 ☞ 엄마가 일하다 죽었다, 농어촌공사는 '돈 줄 테니 책임 묻지 마라' 했다)
지난 1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한국농어촌공사에 대한 국정감사를 진행했다. 이날 △윤미향 의원(무소속, 비례대표) △정희용 의원(국민의힘, 경북 고령성주칠곡) △김승남 의원(더불어민주당, 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 등은 이병호 사장에게 수문감시원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이날 국정감사에는 고(故) 오혜선 씨의 첫째 아들 지근창 씨가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지근창 씨는 "사고 발생 이유는 당일 호우경보가 발령됐는데도 수문 관리를 하러 나갈 수밖에 없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수문감시원 지침에 '위험 작업 시 2인 1조' 내용이 있지만 (함께 작업할) 조원이 없었던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래는 윤미향 무소속 의원과 지근창 씨 간의 국정감사 질의응답 내용 중 일부다.
현장에서 이병호 사장은 유가족과 '성금'을 통해 합의를 시도했던 점 등 대처 과정에 대해 사과했다.
"유족의 증언을 들으면서 무한한 책임감, 또 죄송함을 느낍니다. (사고) 처리 과정에서 유족께서 느낀 점에 대해서도 아주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사후에라도 유족들을 만나서 다시 사과드리겠습니다."
이 사장은 사고 현장에 안전시설이 미비했던 점을 인정했다. 재발 방지 역시 약속했다.
"사고 이후에 가장 집중했던 일은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그 시간에 그 폭우를 뚫고 그렇게 가셨던 거는 대단히 의로운 행동, 마을을 지키겠다는 행동이었습니다. 우리가 좀 더 잘했으면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을 순 없었을지... 저희가 여러 측면에서 점검하고 개선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습니다. 안전 가이드라인과 운영 지침을 개정했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이병호 사장은 '수리시설 감시원 안전관리 가이드라인(이하 안전매뉴얼)'을 "사고 이후 개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사는 개정된 가이드라인을 공개 하지는 않고 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달 18일 농어촌공사 측에 안전매뉴얼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하지만 농어촌공사는 지난 5일 해당 청구와 관련된 정보를 '비공개'로 처리했다. 아직 "개정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게 사유였다.
한국농어촌공사 수자원관리처 관계자는 16일 <셜록>과의 전화통화에서 "매뉴얼을 한 차례 개정했으나 수정 및 보완이 필요해 추가 개정 중이다, 공개 시기는 미정이다"라고 밝혔다. 공사 측의 '비공개' 가이드라인 개정조치 대해 박근서 민주노총 나주시지부장은 17일 <셜록>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7월 말에 농어촌공사 측과 만나 여러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현재 매뉴얼에 2인 1조가 규정돼 있지만 인원 부족 등으로 사실상 지켜지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또, 전국 수문감시원들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도 말했습니다. 노동청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공사에서 선제적으로 대책을 실시하라고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났는데 아직 아무런 통보도 받은 바 없습니다. 매뉴얼 개정도 중요하지만 실천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데, 알 수가 없습니다." -박근서 민주노총 나주시지부장
이번 국정감사에선 수문감시원의 계약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뤄졌지만 이병호 사장은 말을 아꼈다.
이 사장의 답변 후 윤재갑 의원(더불어민주당, 전남 해남완도진도)은 소병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에게 "(이 사안은) 농어촌공사 사장을 중대재해법으로 고발해야 하는 사안이 아니냐"고 질문했다. 실제로 노동계는 농어촌공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농어촌공사 측에 오혜선 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수문감시원은 제도권 안으로 포섭돼야 합니다. 공사는 수문감시원과 농번기에 단기로라도 근로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사가 이분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것이고, 사고가 나면 산재보험도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 센터장 인터뷰(2023. 9. 21.)
국정감사에서 농어촌공사를 향한 지적이 이어지고 3일 뒤인 16일, 유가족은 1인시위에 나섰다. 고(故) 오혜선 씨의 둘째 아들 지현배(가명) 씨는 이날 오전 11시 25분께 전남 나주시에 있는 농어촌공사 본사 사옥 앞에 도착했다.
"어머니의 죽음에 농어촌공사의 책임이 있다는 걸 명시하고, 유사 사고를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이 있는 ‘보도자료’ 형태의 사과를 요구합니다." -지현배 씨
유가족이 이병호 사장의 사과에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데는 '배경'이 있다. 유가족은 지난 9월 초부터 농어촌공사 측에 문서 형태의 공식 사과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오혜선 씨가 사망하자 농어촌공사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성금'을 모금했다. 농어촌공사는 유가족에게 성금을 전달하기 전에 '향후 민·형사상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합의안을 내밀었다. 유가족들은 "농어촌공사가 직접적·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느꼈다.
이에 첫째 아들인 지근창 씨가 유족들의 요구사항을 담은 합의안을 새로 작성해 농어촌공사 측에 전달했다. 여기에 포함된 조건이 '유사 사고 재발방지 및 고인의 사망에 대한 농어촌공사의 공식적인 사과 성명(일간지 게재 또는 방송, 우편 등)'이었다. 그러나 농어촌공사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지현배 씨와 박근서 민주노총 나주시지부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은 농어촌공사 본사 앞에 각각 거리를 두고 서서 피켓을 들었다. 이들이 자리를 잡자 농어촌공사 관계자 3명이 20~3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시위를 지켜봤다. 본사 정문 앞에 있는 횡단보도에는 현수막이 걸렸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진심 어린 사과가 먼저다. 수문감시원 사망사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낮 12시가 가까워지자 본사 건물에서 직원들과 차량이 쏟아져 나왔다. 직원들은 피켓을 본체만체 지나가기 바빴다. 지현배 씨는 "그래도 차량에 탄 직원들은 신호를 기다리면서 피켓을 좀 살펴보더라"라고 말했다.
유가족과 민주노총 나주시지부, 전남노동권익센터, 광주전남노동안전보건지킴이 등은 앞으로 약 2주간 1인시위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추석 때 농어촌공사 직원 6명 정도가 선물을 사들고 아버지의 지인을 앞세워서 갑작스럽게 집을 방문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나가보지 않았고, 마당에서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말을 했다는 것만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행동 자체가 이번 일을 어물쩍 넘기려는 걸로 느껴집니다. 이병호 사장의 사과는 불충분했을 뿐더러 '말'에 그칠까 봐 우려됩니다." -지현배 씨
이날 낮 12시 20분께 1인시위가 마무리됐다. 지현배 씨는 "장기적으로 어머니와 같은 수문감시원들이 근로자로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다행히도 언론에서 (사망 소식을) 다뤄줘서 알려졌지만... 앞으로 발생할 모든 사고가 이렇게 언론의 주목을 받으리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수문감시원은 농촌 지역의 나이가 많은 분들이 주로 하시는데, 전국에 있는 7000여 명의 감시원 분들이 안전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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