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에서 겨울 무렵, 윤석열 정부는 2023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집중호우로 반지하 가구 사망자가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취약계층을 위한 임대주택 예산을 20% 이상 줄여버린 것은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시민단체들은 공공임대주택 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추운 겨울 국회 앞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비판이 많지 않다. 그러면 정부가 올해 내놓은 2024년도 예산안의 임대주택 예산은 문제없는 걸까?
임대주택 예산, 삭감은 아니지만…
우선 주택 부문 예산의 총합을 보자. 정부가 내놓은 2024년도 예산안에서 '사회복지-주택 분야 예산'은 총 37조404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4조 원(11.8%) 증가했다. 1년 전에 발표된 2023년도 예산안에서는 이 주택 분야 예산의 총합마저 전년도보다 줄어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주택 부문에서 늘어난 예산은 어디에 쓰일까. 나라살림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주택 부문에서 늘어난 예산 4조 원 중 절반 정도인 1조9840억 원은 '주택구입·전세자금(융자)' 사업에 할당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이른바 '아이 낳기 좋은 주거환경 조성' 사업, 즉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출산 가구에 대해 최저 수준 금리로 주택구입 및 전세자금 대출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또 1.1조 원은 '주택시장안정및주거복지향상'에, 0.6조 원은 '분양주택등지원' 사업에 들어간다. 주택시장안정및주거복지향상 예산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출자액을 늘리는 데 사용된다. 즉 주택 부문에서 증액된 예산의 상당 부분은 임대주택에 사용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4년 국토교통부 예산안'을 토대로 임대주택 예산의 변화를 살펴보자. 임대주택(융자) 사업 예산은 2023년 대비 1조1300억 원 증가했지만 임대주택(출자) 사업 예산은 7030억 원 감소했다. 합쳐서 계산하면 임대주택 예산은 4270억 원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온다. 백분율로 따지면 2.4%.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 2.5%와 비슷하다. 임대주택 예산 증가율이나 최저임금 인상률이나 모두 소비자 물가상승률(9월 기준 전년동월대비 3.7%)을 밑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저임금 노동자와 공공임대주택 입주 대기자들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뜻이다.
2023년도 예산안에서 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했던 부분은 이제 회복된 걸까? 2022년부터 2024년까지의 예산안에서 '임대주택(융자)'과 '임대주택(출자)' 항목 예산의 합계를 비교해보자.
2024년도 임대주택 예산은 2023년도에 비해서는 소폭 증가했지만, 여전히 2022년 수준으로도 올라오지 못했다.
생각해볼 지점은 또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임대주택 예산'이 전부 공공주택의 개념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업에 사용되지는 않는다는 것. 본연의 의미로 공공임대주택은 공공이 소유, 운영하며 입주자가 저렴한 가격에 장기 거주 가능한 주택이어야 한다. 그러나 임대주택 예산의 세부 항목 중 '민간임대(융자)'는 민간 기업이 정부 지원을 받아 운영하다가 일정 기간 후 분양하는 민간임대주택 사업에 사용된다. '전세임대'는 민간이 임대하는 주택에 거주하는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을 지원하는 사업이고, '공공임대'로 표시된 항목은 6년 정도 임대 후 분양으로 전환하는 '뉴홈 선택형'과 같은 사업이다. '매입임대'는 당장 저렴한 주택이 필요한 취약계층에게 도움이 되지만, 민간이 보유한 다세대주택 등을 과도하게 비싼 가격에 매입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런 항목들을 빼고 시민단체 경실련의 '진짜 공공임대주택' 기준을 참고해서 국민임대·영구임대·통합공공임대 주택에 들어가는 예산만 계산했더니, 증가율은 전체 임대주택 예산 증가율보다 낮은 1.1%로 나왔다.
이번에는 공공이 소유하며 입주자가 비교적 장기 거주 가능한 임대주택으로 범위를 넓혀보자. 위의 장기 공공임대주택 예산에 행복주택 융자 및 출자, 다가구매입임대 융자 및 출자, 임대주택리츠, 노후공공임대주택 리모델링 예산까지 더해서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비교하면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오히려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온다. 어떤 방법으로 분석하든 간에 두 가지는 분명하다. 첫째, 윤석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확충에 여전히 무관심하다. 둘째, 임대주택 정책 전반의 공공성이 축소되고 있다.
공공분양 예산은 계속 확대
사실 윤석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보다는 공공분양주택에 힘을 싣겠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끊어진 주거 사다리를 복원"하기 위해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는 공공분양을 확대"(22.08.30 국토부 보도설명자료)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공공분양 사업 예산을 늘리고 있다. 주택도시기금 총괄표에서 '분양주택등지원' 항목 예산의 변화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그림 2>를 보면 임대주택을 줄이고 분양주택을 늘리는 방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지난해 수립한 예산안도, 올해 수립한 예산안도 같은 방향이다. 다만 2023년도 예산안에서는 임대주택 예산을 줄여서 분양주택 예산을 늘렸고, 2024년도 예산안에서는 임대주택 예산을 물가상승률보다 적게 증액하면서 주택 예산은 크게 늘렸다. 경향신문과 민중의소리는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2024 예산안]분양 크게 확대하고 민간임대는 소폭 인상 (23.08.29 경향신문)
약자 지원한다더니, 저소득층 주거복지예산 대폭 삭감 (23.09.06 민중의소리)
다른 언론은 임대주택 예산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지난해처럼 20% 이상 대폭 삭감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지 않아서일 것 같다.
윤석열 정부의 공공임대 거부
과거 정부들은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아예 없었거나, 시혜적인 태도로 일부 극빈층에게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저소득층과 청년, 신혼부부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지만 공공임대주택의 면적과 위치, 임대료는 수요자를 만족시키기에 아직 부족한 형편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주택은 자산으로 간주된다. 공공임대 입주를 기다리는 사람들보다 내집 마련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언론도 공공임대주택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데 인색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시각은 공공임대주택에 무관심한 정도가 아니라 '거부'에 가깝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생방송으로 진행된 제1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공공임대주택을 굉장히 선(善)으로 알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만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지어서 공급하다 보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상당한 재정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에 납세자에게 굉장히 큰 부담이 되고, 전반적으로 우리 경제의 부담요인으로, 또 경기 위축 요인으로 작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에는 국민의힘 당시 정책위 의장이었던 성일종 의원이 비하 발언("여기 못 사는 사람들이 많다. 임대주택에. 그래서 정신질환자들이 나온다… 격리해야")으로 구설에 올랐다. 이와 같은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정부 정책 기조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과연 윤석열 정부의 주장처럼 공공분양이 공공임대보다 바람직한 걸까? 공공분양과 공공임대는 목표가 다른 정책이며 수혜 계층도 차이가 있다. 따라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할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임대든 분양이든 주거정책의 공공성이라는 취지에 부합하는지를 잘 챙겨야 한다. 이름에는 '공공'이 붙어 있는데 막상 내용을 보면 공공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업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사전청약을 진행한 동작구 수방사 공공분양주택의 경우 전용59㎡ 추정 분양가가 역대 공공분양 중 최고액인 8억7225만 원이었다. 이처럼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해서 사업을 진행할 경우 필연적으로 분양가 거품이 발생한다. 그래도 주변 시세보다 10% 정도 싸다는 이유로 사람이 몰린다. 공공분양 사업을 이런 식으로 진행한다면 물량이 늘어나더라도 국민의 주거 안정에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공공임대주택이 중요한 이유
공공임대주택은 공공이 보유하는 주택이므로, 공공임대주택이 많아질수록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늘어난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공공임대주택에 살면 주거비가 절감된다. 최근 국토연구원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 거주 세대는 민간임대주택 거주 세대에 비해 주거비를 평균 15.3만 원 적게 지출한다. 청년, 신혼부부, 무주택 세대가 공공임대주택에서 10년 이상 안정적으로 거주하면서 주거비를 아낀다면 향후 내 집 마련에 도움이 된다.
공공임대주택은 깡통전세나 보증금 사기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고, 자주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되고, 관리비도 합리적이다. 정부가 발표한 '2021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가구 중 95.2%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만족의 이유는 1위가 "저렴한 임대료"(50.2%), 2위가 "잦은 이사 불필요"(39.3%)였다. 수혜자의 95%를 만족시킨 것만으로도 공공임대주택은 대단히 성공적인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공공임대주택 재고가 늘어나면 사회안전망이 확충되며,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어떤 정부든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함부로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
관료와 언론이 공공임대를 선호하지 않는 이면에는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의 이해관계가 알게 모르게 작용한다. 그들은 민간임대를 더 좋아한다. 공공이 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할 수 없으니 민간에 인센티브를 주어서 임대주택 공급이 늘어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 정부인 문재인 정부도 바로 그런 전제 아래 민간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하고 세제 혜택을 확대했고, 그것이 부동산가격 폭등의 요인이 되었다.
임대주택 공급을 민간에 의존한다는 것은 거주의 수단이어야 할 주택을 이윤 창출 수단으로 인정하고, 나아가 그 이윤 창출을 국가가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 구조에서 다주택자와 갭투자자는 땅 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벌어들인다. 당장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확충 노력을 하지 않으면 시장의 민간 투자자들에게 휘둘리게 된다. 지금도 그렇다. 이미 부동산시장에 들어가 있는 기득권자들의 목소리는 과대 대표되는 반면, 공공임대주택 거주자들이나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크게 울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 현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공공임대주택이 "재정에 부담"이라고 했던 윤 대통령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정부는 대체 무엇을 위해 재정을 운용하는가? 취약계층 주거 지원에 들어갈 돈을 아껴서 어디에 쓰려는 걸까? 임대주택 예산을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비율로 증액한 것은 합당한 결정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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