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접근금지명령에도 피해 여성을 스토킹 끝에 살해한 '인천 논현동 스토킹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첫 재판을 앞둔 가운데, 피해자의 유족이 피해자 실명과 사진 등을 공개하며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피해자의 유가족 A씨는 지난 8일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스토킹에 시달리다가 제 동생이 죽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지금 9월 첫 재판을 앞두고 (가해자의 살인행위가) 보복살인이 아니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스토킹 신고로 인해 화가 나서 죽였다는 동기가 파악되지 않아서라고 한다"라며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 7월 17일 인천 논현동 소재 피해자 거주 아파트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가해자인 30대 남성 B씨는 당일 미리 준비한 칼로 피해자를 위협, 이를 만류하던 피해자 어머니에게 부상을 입힌 후 피해자를 찔러 살해했다.
B씨는 피해자를 찌른 직후 자해했지만 치료 후 별다른 건강상의 문제없이 경찰에 출석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B씨는 이미 여러 번의 스토킹 행위로 법원으로부터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상태였지만, 이를 무시하고 범행을 저질렀다. 오히려 스토킹 신고에 대한 '보복살인'을 행한 정황으로, 지난해 9월 일어난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과도 유사성을 보인다.
유가족 A씨는 8일 올린 글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와) 헤어진 전 남자친구"라며 정확한 사건의 경위를 설명했다.
A씨 설명에 따르면 피해자는 동호회에서 우연히 만난 B씨와 비밀연애 관계를 유지하던 중 공개연애와 결혼 등을 요구하며 집착하는 B씨의 모습에 결별을 통보했다.
이후 B씨의 스토킹이 시작됐다. 지속적인 연락으로 피해자를 괴롭혔고, 팔에 멍이 들 때까지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피해자가 지난 5월 경찰에 스토킹 신고를 했지만, 이후에도 그는 직장 동료들이 볼 수 있게 연애 당시의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는 등 피해자 주변까지 포함한 스토킹 행위를 유지했다.
당시 B씨는 연애 당시 피해자의 소개로 피해자와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계속되는 미행, 연락 등 스토킹 행위에 피해자는 '사진을 내리고 부서를 옮겨주면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제안했다. B씨가 쓴 각서를 믿고 고소를 취하했지만, 스토킹은 이후 6월에도 다시 이어졌다.
6월 9일, 피해자 집 앞에 다시 나타난 B씨는 경찰에 연행됐으나 접근금지명령을 조치 받은 후 4시간 만에 풀려났다.
경찰은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했지만, A씨는 같은 달 29일 "(경찰이 피해자에게) 가해자와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면 스마트워치 반납을 해달라고 안내했고, 그렇게 자진반납(?)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스마트워치가 사건 발생 전에 반납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자 경찰이 '자진반납이었다'고 해명한 일을 꼬집는 말이다.
이후 보름여 만인 7월 17일 가해자 B씨는 는 다시 피해자 앞에 나타나 피해자를 살해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어머니가 손을 베이는 등의 부상을 입었고, 피해자는 가해자를 만류하던 피해자의 어머니가 피해자의 딸을 보호하기 위해 잠시 몸을 돌린 사이 가해자의 칼에 찔렸다고 전해진다. 집 안에 있던 피해자의 딸도 현장을 목격하고 만다.
A씨는 이 같은 사건 경위를 설명하면서 "수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지금 9월 첫 재판을 앞두고 보복살인이 아니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스토킹 신고로 인해 화가 나서 죽였다는 동기가 파악되지 않아서라고 한다"라며 "한 달이 지나도록 자극할까봐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동생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가해자는 제 동생을 죽인건가" 울분을 토했다.
특히 A씨는 "접근금지명령도 형식에 불과하고 연락이나 SNS를 안 한다고 끝날 문제인가, 스마트워치는 재고가 부족하(다고 하)고 심지어 사고가 일어나야만 쓸모가 있다. 모든 상황이 끝나고 경찰이 출동한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물으며 기관과 제도가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고 후 피해자가) 피 말라가던 그 모습을 보면, 신고하려고 했던 OO이(피해자)를 말리고 싶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디 OO이의 딸이라도 안전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이 스토킹 범죄와 관련해 많은 피해자분들이 안전해질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주셨으면 좋겠다"라며 가해자 B씨에 대한 엄벌 촉구 탄원서에 대한 서명을 시민들에게 부탁했다.
유족의 법률 대리인 민고은 변호사는 탄원서에서 "현행 피해자 보호조치로 피해자가 끝내 사망하는 것을 방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가해자에 대한 엄벌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스토킹 살해 사건의 방지책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 변호사는 탄원서에서 "법원은 피고인에게 범죄에 상응하는 응분의 형벌을 부과하여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부당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침해한 사람은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며 "이와 같은 범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 어느 때보다 스토킹 살인에 대한 엄중하고 단호한 태도로 보여주는 판결을 선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간 여성계 등지에선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 등을 통해 피해자 보호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지만, 지난해 9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던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 이후로도 스토킹으로 인한 여성살해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지난 달 30일에는 서울시가, 지난 6월에는 경남자치경찰이 스토킹 등 고위험군 범죄 피해자에게 민간 경호원을 배치하는 보호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장에선 그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관련하여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8월 발표한 논평에서 "2022년 한국여성의전화 상담통계 분석에 의하면, 스토킹의 가해자는 (전)애인‧데이트 상대자가 35.1%, (전)배우자 14.4%, 친족 11.7%, 직장 관계자 11.2% 순으로, 평소 밀접한 생활반경을 공유하는 관계 유형이 전체의 72.4%를 차지했다"라며 "가해자를 격리하지 않은 채 피해자의 '실외' 활동 시에만 이뤄지는 민간 경호는 과연 무엇을 보호할 수 있는가"라고 지적한 바 있다.
결국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신속하고 물리적인 격리조치만이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효적인 방책이 될 수 있으며, 그를 위해서는 수사, 사법기관이 스토킹 범죄의 중대함과 고위험성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그간 펼쳐온 주장이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프레시안>과의 지난 인터뷰에서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크다"라며 "스토킹은 살인으로 연결될 수 있는 범죄이기 때문에 초반에 강력하게 공권력이 개입해야 하는데, 접근금지명령 등의 표면적인 조치 이후 사실상 가해자를 방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에서도, 그보다 앞선 같은 해 2월 구로구 스토킹 살해사건에서도 "충분한 사전 징조에도 불구하고" '잠정조치 4호'(유치장, 구치소 등 유치) 등을 시행하지 않은 수사, 사법기관의 "안이한 태도"가 문제가 된 바 있다. (관련기사 ☞ "2016년 강남역 사건 떠올라 ... 사회가 여성 살해 '또' 방관했다")
용혜인 의원이 지난해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7개월여간 접수된 신고 건수는 시행 이전 3년 4개월간에 비해 47.9% 증가했지만, 검거된 스토킹 피의자 중 구속율은 3.6%에 그쳤고, 실형이 선고된 1심 판결은 63건, 선고된 평균 형량은 13.4개월에 불과했다
이번 탄원서에서 민 변호사는 "피해자의 유족은 자신의 소중한 가족을 잃었다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범행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라며 "피고인에게 사형, 적어도 무기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달라"라고 시민들의 탄원서 서명 참여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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