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전화를 직접 수신하지 않은 부재중전화의 경우에도 '스토킹' 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춘천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이영진)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200만 원 및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수강 명령 등을 선고했다고 21일 밝혔다.
A 씨는 지난 2021년 11월 울릉도 패키지여행에서 알게 된 20대 여성 B 씨에게 3일간 총 6차례 전화와 1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낸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 B 씨는 A 씨가 조직폭력배 생활을 했다는 말을 접하고 "해코지를 하거나 위협적인 말을 할까봐 걱정돼서 연락처를 제공했다"고 조사에서 말했다.
A 씨는 '먼저 전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B 씨의 연락처를 요구했고, 이후 여행 일정에서도 A 씨를 계속 마주쳐야 했던 B 씨는 어쩔 수 없이 연락처를 제공했다.
B 씨 증언에 따르면 A 씨는 B 씨에게 전화를 걸었을 당시 "남자친구는 어떻게 만났냐", "둘이 키스는 했냐", "관계는 가져봤냐"는 등의 말을 건넸다. 그러면서 A 씨는 '이런 질문을 하는 숨은 뜻을 파악하지 못하느냐'고 B 씨에게 묻기도 했다. A 씨는 첫 통화 이후 계속해서 연락을 거부했고, 여행 일정에서도 B 씨를 피해 다녔지만 이후 B 씨는 A 씨에게 5번의 전화를 더 걸었다.
지난 1심에선 스토킹처벌법상 '도달' 개념이 문제가 돼 B 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현행 스토킹처벌법 제3항은 "우편·전화·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물건·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이하 물건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를 스토킹으로 규정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다섯 차례에 걸친 부재중전화의 경우 '벨소리'를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부재중전화 표시는 통신사의 부가서비스에 불과해 글이나 부호를 도달하게 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르게 봤다. A 씨의 행위가 '스토킹처벌법 위반에 이르기엔 부족'하다고 본 1심 재판부와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B 씨가 A 씨의 반복적인 연락을 받게 된 '경위'에 집중했다.
A 씨가 '연락하지 않겠다'는 등 B 씨를 기망하여 연락처를 얻어내고, 이후 수차례 불쾌하고 위협적인 언사를 보인 점을 고려할 때 "상당한 불안감과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또한 부재중전화의 '도달' 개념에 대해서도 1심 재판부와 다른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부재중전화 또한 전화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것이며, 피해자의 전화기가 만들어낸 벨소리, 진동음, 부재중전화 표시 등을 피해자에게 '도달'하게 한 행위로, 이는 명백한 스토킹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피해자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음향 등의 '도달' 개념을 스토킹 범죄의 특성에 맞춰 1심 재판부보다 폭넓게 해석한 셈이다.
재판부는 특히 "처음 만난 여성 피해자에 지속 반복적으로 스토킹을 한 것으로, 범행의 경위와 태양 등에 비추어 그 죄질이 나쁘다"면서 "피해자는 피고인의 스토킹 행위에 상당한 공포심과 불안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고 처벌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여성계는 현행 스토킹처벌법이 이 같은 '도달' 개념을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신상과 사진을 유포하는 경우 △익명 계정을 통해 피해자의 사진과 모욕적인 글을 게시하는 경우 △피해자가 이용하는 웹페이지에 침입해 성폭력적인 메시지를 남기는 경우 △피해자인 척 가장해서 피해자의 지인들에게 채팅으로 접근한 뒤 허위 사실을 퍼뜨리는 경우 등 ‘직접적인 도달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 스토킹 범죄가 이미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성연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 활동가는 지난해 열린 스토킹처벌법 제정 1년 기념 토론회에서 "(도달을 규정하는 법 조항 때문에) 재판 쟁점이 '도달'을 증명할 수 있는지로 모아지면서, 피해자 입장에선 명백한 스토킹으로 인지되는 행위들이 범죄로 정의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고 지적한 바 있다. (관련기사 ☞ 내 사진 유포하고 희롱한 '스토킹' 가해자,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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