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오늘은 무사하십니까?"
20년차 초등교사 A씨가 '안녕' 대신 '무사'를 물으며 인사를 건넸다. 검은 옷의 교사들은 울부짖듯 소리를 높여 답했다.
"아니오."
4일 오후 4시 30분께, 교사들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서이초 사망 교사의 49재 추모집회가 시작됐다. 추모와 진상규명 촉구를 위해 전국에서 모인 교사·시민의 규모는 주최 측 추산 5만여 명에 육박했다.
이날 집회는 9.4 집회를 위해 조직된 교사모임 '한마음으로 함께하는 모두'가 주최했지만, 무대 발언 등 집회 진행은 특정 단체가 관여하지 않은 교사 개개인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졌다.
앞서 교육부는 이날 집회를 위해 연가 등을 사용하는 교사 개인에게 파면·해임 등 징계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예상보다도 많은 참여 인파에 추모 행렬은 국회 앞을 넘어 여의도 광장까지 이어졌다. 주최 측은 "(서이초 사태로 인한) 교사들의 분노는 (교육부의) 징계 위협으로도 꺾이지 않았다"고 집회의 의미를 밝혔다.
A씨 또한 공감과 분노를 가지고 현장을 찾았다. 6년 전, 고인이 겪은 일과 비슷한 악성민원을 경험한 A씨는 당시 본인의 구제요청을 사실상 무시하던 학교와 도교육청의 태도를 여전히 기억한다. 학교의 방관 속에서 "미친X이 담임이라 애들이 이 모양"이라는 등 민원을 빙자한 폭언에 시달렸다. 2년이 넘는 재판 끝에 승소했지만, 상대 학부모는 벌금 100만 원을 낼지언정 사과는 끝내 하지 않았다.
"제가 겪은 일이 교권침해가 아니라는 교육청의 공문을 받은 그날, 퇴근하지 못하고 학교 뒤뜰과 체육관을 배회했습니다. 어디서 죽어야 이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풀릴까, 어디서 죽어야 이 억울함을 알아줄까 … 서이초 선생님의 소식을 듣고, 그날 느꼈던 체육관의 서늘함이 떠올라 많이 아팠습니다."
현장을 찾은 교사들은 제도와 기관의 방관 속에서 '구조적으로' 가해지는 이 같은 일들을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다만 이는 뒤늦은 분노가 아닌 "더 이상 동료를 잃을 수 없다"는 결의에 가까웠다. 또한 "내가 바꾸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라는 회한에 가까웠다.
지난 7월 일어난 서이초 사태에 이어 최근 나흘간에만 서울, 경기, 전북에서 교사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식이 들려온 참이다. 문제가 개인이 아닌 교육현장의 '구조'에 있다는 것을 증빙이라도 하듯 "동료들의 죽음"은 끊이지 않았다. A씨는 "그때 내가 1인 시위라도 했으면, 언론에 공론화라도 했으면 교육현장이 바뀌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으며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교사인권 저하가 학생인권 탓? … 교사들 "교육부는 구조를 파악하라"
경찰이 고인 사망 수사에 착수하고, 교육부가 대책마련에 나서겠다고 장담한 지 49일이 지났지만 교사들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경찰은 지난 14일 조사경과를 발표하며 '범죄혐의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아동학대법, 초·중등교육법, 교원지위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은 여전히 국회 초입에 머물러 있다.
이날 교사들은 "방학을 사흘 앞둔 2년차 새내기 교사가 교실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진실이다. 그런데 이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다시 동료교사를 둘이나 잃었다"라며 "선생님들의 억울한 죽음, 진상을 규명하라"고 경찰 측에 촉구했다.
또한 이들은 국회를 향해서도 "(관련 법안이) 최종 법률로 제정되려면 교육위 전체회의와 법사위, 국회 본회의를 넘어야 한다. 법이 바뀌지 않으면 학교는 바뀌지 않고, 학교가 바뀌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라며 "국회는 교권보호 합의안을 지금 당장 의결하라"고 촉구했다.
교육부는 지난 8월 수차례의 교권보호 관련 공청회, 토론회를 진행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교사들은 교육부가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엉뚱한 방안"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특히 "교사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입법안을 제출했는데도 (교육부는) 엉뚱하게 학생인권조례를 탓하더니, 이제는 학교생활기록부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걸 대책으로 내겠다고 한다"라며 "감히 교육자로서 말하건대 학생인권은 더욱 신장돼야 한다. 우리는 생기부 권력을 통한 영혼없는 존중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안전한 교육 '환경'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중등교사 B씨도 "(현재) 교사는 교육이 아닌 행정업무 처리에 내몰리고, 경찰수사권이 필요할 만한 (학폭 등) 사건을 해결해야 하고, 정제되지 않은 (학부모 등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감정쓰레기통이 되어야 한다"라며 "결국 현재 '시스템'과 학교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서이초 선생님은 언제든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교육 멈춤의 날'에 강경대응? "교육부, 서이초 사태 땐 어디 있었나"
특히 앞서 지난 8월 교육부가 이날 예정된 집회 및 '공교육 멈춤의 날' 행사에 대해 "위법이며, 엄정대처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이날 현장에선 교육부에 대한 교사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교사들의 고통을 방관해온 책임부처인 교육부가 문제가 커지자 오히려 "교사들의 입을 억지로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최 측은 "교사들의 살려달라는 절규, 안전하게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외침에 교육부는 징계, 파면, 해임으로 교사들을 위협했다"라며 "그동안 교육부는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서이초 선생님이, 다른 수많은 선생님들이 민원과 고소의 위협으로 무너져 갈 때 교육부는 어디 있었는가?" 되물었다.
현장을 찾은 유치원 교사 C씨는 "지난 7월 고인께서 돌아가신 후 49일 동안 여름방학을 바쳐서 (문제해결을) 외쳤지만 달라진 건 없고 아무도 우릴 지켜주지 않고 있다"라며 "고인이 잘못한 게 아니라 교육현장이, 사회가 잘못한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서로를 지키고 현장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사집회를 지지하기 위해 아이와 함께 현장을 찾은 학부모 D씨는 "교육부엔 교사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그런 교육부가 오히려 선생님들의 순수한 마음을 담은 이 집회조차 징계, 파면하겠다 하는 이상한 시대가 지금 교육계의 현 주소 같다"라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아동복지법 개정이 반드시 이루어지길 바라고,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선생님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꼭 마련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이날 현장엔 여야 교육위 위원들을 비롯해 장상윤 교육부차관도 자리했지만, 장 차관의 배석 소식에 참여자들이 야유를 보내는 등 교육당국에 대한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같은 날 오후 3시께엔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고인의 49재 추모제에 참석, 추모제에 연가·병가 등을 내고 참석한 교사들의 처벌 여부에 대해 "그 부분은 지금 오늘 상황을 점검해야 하고, 차분하게 분석을 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교육부는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는 '추모와 징계는 별개'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장관이 참여한 서이초등학교 49재 추모제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등 교육당국 관계자들과 정성국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김용서 교사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전희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등 교육단체 관계자, 고인의 학교 선후배 등이 참석했다.
고인의 부모 등 유족들은 3시 추모제에 이어 국회 앞 현장에도 참석해 헌화를 진행했다. 유족들은 별도의 발언을 남기지 않았지만 주최 측은 유족의 허락을 얻어 고인의 어머니가 남긴 고인에 대한 편지를 현장에서 대독했다.
대독된 편지에서 유족은 "네 빈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들지만 그럼에도 진실 찾기에 더 신경 써, 네 한을 풀어주고 싶다"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전국의 선생님들이 너에게 보내준 추모화환에 보답하는 길이고, 추락할 대로 추락한 교권과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교권의 사기진작에 대한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이며 작은 위로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날 집회는 애초 예정된 '공교육 멈춤의 날' 공동행동의 하나로 마련된 행사로, 충북, 충남, 대전, 대구 등 전국 지자체에선 이날 같은 시각에 지역 교육청 등 장소에서 공동 추모집회를 진행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전국에서 추모집회의 총 인원 수는 10만여 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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