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던 해군 군검사와 해병대수사단 사이 '사단장 혐의 법리검토'가 통화 녹취록으로 공개됐다. 녹취록에는 고(故) 채 상병 사건 수사와 관련해 군검사가 △'사단장의 혐의'를 확신하는 내용과 더불어 △국방부 '외압' 정황을 언급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군인권센터는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병대수사단 측과 해군 검찰단 소속 A 군검사 간의 통화 녹음본"이라며 2개의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통화는 8월 2일 오후 3시 51분, 8월 3일 오전 11시 9분에 각각 이뤄졌다고 센터는 설명했다.
해군 군검사, '사단장 혐의' 확신 … "사실무근" 국방부 해명은 거짓말?
먼저 2일자 통화는 당일 오전 해병대 수사단이 '사단장 등 8인의 혐의'가 적시된 수사결과 보고서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후 이뤄졌다.
해당 통화에서 A 군검사는 채 상병 사망사건에 있어서 '임성근 해병제1사단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법리검토 의견을 수사단 측에 전했다. 센터에 따르면 이는 앞서 지난 29일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제보내용(관련기사 ☞ 군검찰도 '사단장 혐의' 인정 … '박정훈 독단'이라던 국방부 입장은?)의 실제 통화본이다.
구체적으로는 A 군검사가 "사단장에게는 '부대관리훈령' 제187조에 따라 일반적인 사고 예방책임이 있는데, (사고 당시 사단장은) 현장에 방문하거나 보고를 받음으로써 구체적인 위험도 인지했던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안전장비를 지급하지 않았고 입수지휘 압력을 계속해서 넣었고, 입수가 이루어진 상황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지적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통화가 이뤄진 시점에서 수사단 측의 수사결과는 이미 경북경찰청에 이첩된 상황이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과실치사' 사건에 대한 범죄인지통보(수사이첩)와 별개로 군 내에서 종결해야하는 '변사사건'에 대한 논의사항으로 추정된다"라며 "또한 이 시점에서 군검사와 수사단 측은 국방부 검찰단이 이첩된 수사자료를 탈취해갈 것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첩 이후의 수사 보강을 위해서 이 같은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해군 군검사와 해병대수사단 사이의 이 같은 법리검토 논의는 수사자료 이첩 전부터 이어져온 것으로 보인다. 센터에 따르면 해군검찰단 2부 3과 소속인 A 군검사와 같은 소속의 B 군검사는 지난 7월 20일 채 상병의 시신이 수습돼 검시를 나갈 때부터 '의견서를 작성해 해병대수사단에 제공하겠다'는 의향을 검찰단 2부장에게 보고했다.
이후 두 군검사는 같은 달 24일 해병대 수사관 사무실을 찾아 사건을 브리핑 받았고, 당일 '(현장지휘관인) 대대장 뿐만 아니라 사단장, 여단장의 관리 책임도 물을 수 있다'는 의견을 수사단과 공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검찰단 2부장이 공식 의견서의 제출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이날 양측은 구두 혹은 문서상의 법리검토만을 협의했다.
이어 지난 1일에는 그 다음 날(2일) 경북경찰청으로의 수사이첩을 위해 수사단이 작성한 사건인계서를 양측이 함께 검토하기도 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해군검찰단과 해병대수사단 사이의 법리검토 경과를 볼 때 국방부의 말과 달리 군검사들 또한 '사단장 과실치사 혐의'를 확신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국방부와 해병대 측은 지난 28일 군인권센터가 '해군 군검찰이 수사단의 수사를 법리검토했다'고 주장하자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군검사도 '외압' 정황 언급 … 국방부 조치 가리키며 "너무 무서운 일"
임 소장은 양측의 통화녹취가 "국방부 측의 외압이 느껴지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소장 설명에 따르면 양측의 구두 법리검토는 애초 녹음 등의 기록 없이 진행됐지만, 지난 7월 31일 국방부가 '수사결과 언론브리핑'을 취소하고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을 압박하자 양측은 통화를 녹음하기 시작됐다.
특히 이날 센터가 공개한 두 번째 녹음 파일(8월 3일 오전 통화녹취) 내용을 살펴보면 해군 군검사들은 수사단에 가해지는 국방부 차원의 '수사외압'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통화에서 A 군검사는 "(사건 재조사 등을) 명분으로 (수사단 측이 기존에) 조사한 것이 다 날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며 "(재조사가 시작되면 수사단의 기존 수사는) 법적으로 절차를 위반한 수사이기 때문에 자료로서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폐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A 군검사는 "이것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국방부 검찰단이 (수사자료를) 가지고 가면 지금까지의 수사내용을 싹 다 날리려 하는 계획이 혹시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라며 "혹시 모르니 복사본을 만들어 놓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국방부 검찰단은 전날 오후 7시께 수사단이 경찰 측으로 이첩한 수사자료를 경북경찰청으로부터 전량 회수했고, 경북경찰청은 별도의 복사본을 만들지 않았다. 이후 국방부 검찰단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을 위시해 수사단 관계자들을 항명 혐의로 입건한다.
통화가 이뤄진 3일 오전 수사단은 동별관으로 분리 조치된 상황이었다. A 군검사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형식적으로는 내사라고 하지만 수사라는 것 알고 계시지 않나"라며 "걱정이 된다", "너무 무서운 일"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이날 오후 압수영장을 제시하며 박 대령 등의 휴대폰과 사무실을 압수한다. 임태훈 소장은 "이후 국방부 검찰단은 휴대폰 포렌식을 통해 해당 통화내역들을 입수한 상태"라며 "(국방부는) 이미 모든 정황을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진실을 묻으려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센터 측 주장에 따르면 지난 3~4일경 국방부 검찰단은 압수수색을 통해 해병대 수사관들의 휴대전화를 포렌식, 금일 센터 측이 공개한 통화 녹취를 확인했으며 이후 해군검찰단에 '군검사들을 입단속 시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한편 국방부는 지난 30일 "피의자가 계속 수사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안의 중대성 및 증거인멸 우려를 고려"했다며 박정훈 대령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군사법원은 오는 9월 1일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임 소장은 "통화 내용에서 알 수 있듯 국방부 검찰단은 모든 수사결과를 뒤집어엎고 박 대령을 구속해 입을 막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라며 "통화 내용을 공개할 경우 통화 당사자들 등에 2차 피해가 가해질 우려가 있지만, 국방부 검찰단이 이 녹취파일을 이미 가지고 있어 하루빨리 진실을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이날 녹음파일 공개의 취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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