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장이 '백선엽 장군은 친일 후 회개했지만 홍범도 장군은 (공산당원이었음을) 회개하지 않았다'는 논리로 흉상 이전을 주장했다.
육사 34기로 제49대 육사 교장을 지냈던 예비역 육군 중장 출신 박종선 총동창회장은 31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 전화 인터뷰에서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다 입증된 사실"이고 "1927년인가 언제죠? 그때는 홍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아예 입당했다"며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은 정말로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홍범도 장군 흉상을 대신해 맥아더 장군과 백선엽 장군 이야기가 나온다'는 진행자 설명에 "두 분에 대해서 (흉상을 대체)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다"면서도 "나는 백선엽 장군을 개인적으로 굉장히 존경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어 백 장군과 관련해 "홍범도 장군하고 백선엽 장군하고 같이 비교하는 것은 조금 논리가 안 맞는다"고 부연했다.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에 관한 부연이다.
박 회장은 "홍범도 장군은 독립운동을 하셨지만 소련군에 입적해서 연금을 받다 돌아가신 분"이고 "전향도 안 하셨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반면 백선엽의 경우 "20대 초반 일본군 간부했다고 해서 (친일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이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혁혁한 일을 했고 한국 전쟁에서 나라를 구했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아울러 "예수님도 회개하면 봐준다"며 "회개하는 사람과 회개하지 않은 사람, 또 나라에 끼친 공적이 큰 사람과 적은 사람을 우리는 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약하면, 결국 예수도 회개하면 봐주는데 백선엽 장군은 친일 후 회개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은 공산당 이력을 회개한 적 없으니 흉상 철거도 마땅하다는 내용으로 귀결된다.
이와 관련해 박 회장은 "육군사관학교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고 자유민주공화국이라든지 국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데 "지금 당장은 공산주의와 싸워야 되는 그런 집단"이라며 "공산주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분, 또 돌아가실 때까지 공산주의자로서 행세하신 분에 대해서 생도들이 격려하고 다닌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관해 진행자가 '홍 장군의 공산당원 가입은 농민 생존권을 위해 필요에 의한 것 아니냐'고 묻자 박 회장은 "앞으로 이제 조금 더 홍범도 장군의 어떤 행적이라든가 공과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연구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1920년대에 독립군 활동했던 분들 중 같이 자유시까지 갔던 김좌진, 이범석 장군 같은 경우는 이것(공산당 입당)에 반대하고 만주로 돌아가셨"지만 "홍범도 장군은 남아서 공산주의에 입당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박 회장은 "입국 서류에 '의병'이니 '고려 독립'이니 이렇게 기재했다고 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했던 공산주의 활동이 지워지지는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다시 진행자가 '훈장을 처음 준 정부는 박정희 정부이고 박근혜 정부 때는 잠수함에 홍범도함 이름을 붙였다'고 지적하자 박 회장은 "아마 공산당 이력보다 더 앞에 독립군 활동한 것이 더 크다고 평가했을 것"이라면서도 "박정희 정부 시절에 훈장 추서했던 것은 아마도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 전력을 잘 모르던 시절의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백선엽 장군의 군인 전력 시작은 바로 만주에서 항일 독립군을 학살하던 간도특설대의 장교였다. '회개했다'는 박 회장 주장과 달리 백선엽 장군은 생전 간도특설대 전력을 명확히 사과한 적은 없다.
다만 그는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간도특설대로 발령받아 부임해 간 1943년 초 간도 지역은 항일 독립군도, 김일성 부대도 1930년대 일본군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에 밀려 모두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고 없을 때였다"고 해명했다. 직접 독립운동가를 토벌하지는 않았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백선엽 장군은 생전 사학비리와도 연관된 바 있다. 32살에 장군으로서 예편한 후 그는 선인학원을 설립했다. 선인학원은 교사 부당해고, 주민재산 침해, 심각한 학생 체벌, 부정 편입학 등으로 여러번 논란이 됐다. 한국 사학비리의 상징과 같은 학원이다.
이후 교사들의 투쟁으로 재단 비리는 교육부 감사에 따라 사실로 확인됐다. 동생 백인엽 씨는 구속기소됐다. 백선엽 장군의 사촌누나 백희엽은 당시 한국의 거물 사채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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