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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세금으로 부동산 잡으려다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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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세금으로 부동산 잡으려다 실패했다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 文 실패한 부동산 정책, 을지로위원회는 제대로 평가했나

민주당 정부는 왜 지난 대선에서 패배했는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위원장 박주민)가 최근 발간한 <민주당 재집권전략보고서>(이하 보고서)는 그에 대한 답을 주고자 한다.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보고서는 민생 개혁, 공정 경제, 주거 보장, 노동 존중, 산업 전환, 돌봄을 다룬다. 이 보고서의 발간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은 발간사에서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부동산·자산 등 부의 양극화'를 맨 먼저 꼽는다. 여러 의견을 담은 보고서 내에서 대선 패배의 원인이 부동산 가격 상승에 있다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가 이뤄진 듯하다. 그런 면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 문제를 살펴보는 주거 보장 부분은 대선 패배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보고서의 핵심을 이룬다.

그렇다면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원인을 제대로 짚어내면서 유의미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가? 보고서의 내용이 가진 특징은 한마디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원인과 그에 대한 대책을 모두 세금에서 찾는다는 데에서 나타난다. 정말 부동산 정책 실패의 원인이 세금 문제에 있을까? 만약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의 원인이 세금 문제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면, 보고서의 진단과 대안은 헛다리를 짚는 셈이 된다. 안타깝게도 보고서의 내용은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지 못한 원인을 정확히 짚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세금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이루는 데에서 그저 일부 역할을 맡는데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그 일차적인 근거이다.

먼저 주택 가격에 대해 보자. 보고서는 주택 가격이 세금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주택에 보유세를 부과하면 주택에서 발생하는 장래 편익이 감소하므로 주택의 가격이 하락하고 거꾸로 보유세를 감면해주면 주택가격은 상승한다는 것이다. 당장 드는 의문은 지난해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부동산 가격은 세금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최근의 부동산 가격 하락을 세금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정하고 있듯이 최근의 부동산 가격 하락을 이끈 요인은 미국 연방준비은행(Fed)이 주도한 세계적인 금리 상승이지 세금 인상이 아니다.

보고서는 또한 2007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안정세를 보인 것이 2006년부터 부과된 종합부동산세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2009년까지 가파르게 증가하도록 설계된 종합부동산세가 투기 의욕을 꺾어 시장이 진정되고 거기에 LTV와 DTI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이후 부동산 안정세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심한 논리 비약이다. 2007년 이후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한 것은 2007년 8월의 베어스턴스 파산에서 시작해서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까지 이어진 국제 금융시장의 동요, 그에 따른 글로벌 수준의 유동성 감소와 금리 상승 때문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나라들에서 부동산 가격이 10~30%씩 하락하는 것은 드문 현상이 아니었고 우리나라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당연하지만 보고서는 부동산 가격 안정 대책도 세금을 높이는 쪽에서 찾는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유세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고서는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높게 평가한다.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철학과 원칙을 저버리지 않고 보유세를 도입한 것을 그 근거로 든다. 그에 비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낮게 평가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의 경우 처음부터 부동산 보유세를 높이겠다는 의지가 별로 강하지 않았다는 점을 든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든 문재인 정부든 부동산 정책에서 실패해서 정권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그 우열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시도 아닌가? 두 정부 모두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과녁을 잘못 설정했다면, 그 과녁에서 점수 계산을 한들 그게 무슨 의미를 갖지는 않을 것이다.

보고서에는 금리와 통화량 변동이 주택 가격 상승의 주요한 원인이고 따라서 현재의 주택시장이 중앙은행 정책 결정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그에 대한 대안이 원인 진단과 전혀 관련성을 맺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예를 들어 낮은 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집값 상승의 원인이라면 낮은 금리가 지속된 이유는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는지, 유동성은 왜 대량으로 만들어지는지, 그 유동성이 어떻게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 들어가는지를 따져서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보고서는 그런 설명 없이 통화정책을 인위적으로 강화하거나 완화해서는 안 된다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통화정책을 전문가에게 맡겨놓아야 한다는 의미로 읽히는데, 이 부문이야말로 보고서의 한계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

통화정책을 인위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는 통화정책이 모든 계급에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작용한다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통화정책은 결코 계급 중립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주류 이론은 사심 없는 전문가가 국민경제 전체의 이익을 위해 중립적으로 금융정책을 수행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고 현실에서는 여러 계급·계층의 이해 대립의 각축을 통해, 또는 금융자본가 계급에 유리한 쪽으로 금융정책이 결정된다. 금융자본가들은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이끌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금융정책의 결정은 여러 계급·계층의 이해가 가장 날카롭게 부딪히는 곳이다. 거기에서 금리와 화폐량 수준이 결정된다. 이렇게 본다면 집값 안정을 바라는 계급·계층의 이해를 정치 과정을 통해 통화정책에 반영시키지 못한다면 부동산 가격 안정은 절대로 이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처럼 보고서는 부동산 가격 안정 정책의 핵심을 세금에서 찾는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민주당 부동산 정책 담당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동의를 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대책으로 주로 논의된 사항은 세금 인상이었다. 그렇지만 세금 인상을 통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것은 처음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었고 따라서 그러한 정책은 이미 실패할 운명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내리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세금을 통해 가격 안정을 이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를 부동산 보유세를 인상하면 안 된다는 의미로 잘못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사회 전체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해서는 부동산 보유세를 반드시 높여야 한다. 다만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부동산 세금이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매우 작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세금 인상이라는 것은 관철해내기가 쉽지 않은 대안이다. 세금 인상은 그 영향이 누구의 눈에나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해하기 쉬운 정책이다. 그래서 정책 담당자는 세금 인상 정책을 제시하여 쉽게 설명할 수 있고 지지 세력을 끌어 모을 수도 있다. 거꾸로, 바로 그 때문에, 세금 부담을 지는 세력은 세금 인상에 즉각적으로 반발하고 나선다. 세금 인상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 이해하기 쉬운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책 당국자는 세금을 인상하기 위해서 매우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세금 인상의 당위성을 설득해야 하고 지지 세력을 끌어모아야 하며 반대자들의 의견을 소수파로 만들어야 한다. 만약 세력 관계를 계산하지 않고, 준비 정도도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세금 인상을 밀어붙인다면 어느 순간에 되치기를 당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금을 인상하자는 주장은 도덕적일 수 있지만 정치적일 수는 없다. 진정한 정치적인 대안은 세금을 인상하자는 주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준비 정도와 현재의 힘 관계가 어느 수준인지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에서 나온다. 세금은 정책의 영역이라기보다 정치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시기 부동산 폭등 원인을 세금에서 찾는다. 사진은 지난 13일 서울 시내 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린 일차적인 요인은 낮은 금리

부동산 가격을 세금으로 설명하고 세금을 통해 안정시키겠다는 발상은 국제적인 논의 과정과는 동떨어진 매우 한국적인 것에 속한다. 2000년대 초반의 IT 버블 붕괴 이후, 그리고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미국 연준을 비롯한 여러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폈다. 이러한 정책의 목표는 자산 가격을 부양하는 데 있었는데, 실제로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 물론 중앙은행이 갖는 성격과 외국 중앙은행에 대한 독립성의 정도에 따라 가격 상승률은 나라별로 달랐다. 이렇게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이를 안정시키려는 여러 방안들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가 전개되었는데, 그 초점은 국경을 넘나드는 단기자본의 흐름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하는 데 있었다. 이는 당연한데, 아담 레보어가 <바젤탑>에서 얘기 하듯이, 미국 연준이나 유럽 중앙은행 등이 만들어낸 유동성이 주변국으로 흘러가서 그곳의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이와 아울러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도 논의되었는데, 그 이유는 단기자본을 제어하는 책임이 중앙은행에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창용 총재의 말처럼 우리나라 중앙은행은 미국 연준의 정책에서 독립해 있지 않다. 그리하여 미국 연준의 영향이 고스란히 우리나라에 전달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행이 연준의 영향에서 독립하는 것이 부동산 가격 안정을 이루는 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앙은행 독립 문제와 함께 자산 가격을 금융정책의 목표에 포함시킬지 말지에 대한 논의도 많이 이뤄졌다. 자산 가격을 금융정책의 목표에 포함시키기 위한 여러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사회,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안을 연구하고 정책 아젠다로 제시하는 영국의 공공정책연구소(IPPR)는 주택가격 상승률 목표제를 물가상승률 목표제와 비슷하게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처럼 국제적으로는 부동산 가격 안정 정책으로 단기 자본 통제, 중앙은행의 독립 문제, 자산 가격을 금융정책의 대상으로 삼는 문제 등이 주로 논의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 상승이 세계적인 현상의 일부였다는 점에서 그 대책도 국제적인 논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일 수는 없었다. 외국에서 달러가 대량으로 흘러 들어와서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고 있는데 그것을 사후적인 세금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각 나라들에서 부동산 가격의 상승 요인은 구체적으로 낮은 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으로 나타난다. 그 이면에는 금융자본의 이익과 달러의 헤게모니를 지키기 위해서 미국 연준이 편 정책의 결과 형성된 글로벌 유동성의 유입이 자리 잡고 있다.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이 낮은 금리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다. 국토연구원이 2021년에 발간한 <주택가격 변동 영향요인과 기여도 분석> 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샤플리 분해(Shapley Decomposition)라는 기법을 사용해서 2011년 1월부터 2021년 12월 사이를 대상으로 우리나라 주택가격(한국부동산원 아파트매매가격 지수 기준)에 영향을 준 요인을 분석하면, 금리가 60.7%, 대출 규제 17.9%. 주택 공급 8.5%, 인구구조 8.5%, 경기 4.4%로 나타난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서 금리 요인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글로벌 주택가격 상승의 공통 원인도 낮은 금리와 유동성 증가로 나타난다.

이론적으로 보더라도 부동산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은 금리일 수밖에 없다. 부동산 가격은 부동산에서 생기는 임대료를 금리 수준과 같게 자본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가격을 모르는 어떤 부동산에서 1년에 100만 원의 임대료가 발생하고, 예금 2000만 원에서 100만 원의 이자가 발생한다면 임대료와 이자가 100만 원으로 같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을 예금인 2000만 원으로 치는 식이다. 만약 금리가 절반 수준으로 낮아져서 이자가 50만 원으로 줄어들면 이자가 임대료와 같은 수준인 100만 원이 되려면 예금이 4000만 원으로 증가해야 한다. 이에 따라 부동산 가격도 두 배로 오른다. 곧, 금리가 절반으로 낮아지면 부동산 가격은 두 배로 오른다. 여기에 임대료를 제때에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위험 정도, 그리고 임대료에 매기는 세금 등을 감안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을 규정하는 요인은 금리 수준이다.

이는 세계적인 저금리 현상이 왜 나타났는지, 그것이 우리나라에 전달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그리고 누가 낮은 금리를 통해서 이익을 얻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현실 적합성을 갖는 부동산 대책을 마련하는 데에서 필수 사항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오늘날에는 지대(임대료)가 이자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클 허드슨이 <문명의 운명>에서 얘기하고 있는 바와 같이 과거의 지대는 주택담보대출을 매개로 이자로 전환되었다. 마이클 허드슨은 미국 은행 대출의 80%가 부동산 대출이라고 말한다. 미국경제연구소(NBER)에 실린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영국의 유형별 은행 대출 현황을 보면 주택담보대출 65%, 상업용 부동산 대출 14%, 소비자 대출 7%, 기업대출 14%로 나타난다. 영국의 경우도 은행 대출의 79%가 부동산 대출임을 알 수 있다. 거꾸로 개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담보대출 비율도 70~80%가량 된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부동산 임대료 가운데 큰 몫이 은행에 지급하는 이자로 돌아간다는 사실, 곧 부동산 가격이 금융시장의 이해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주택 가격의 상승은 이와 같은 부동산의 금융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동산이 금융시장에 편입되면서 중앙은행마저 부동산 가격을 유지하는데 이해관계를 갖는다. 왜냐하면 상업은행들이 담보대출을 통해 부동산과 연결되어 있고 중앙은행은 은행들의 은행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는 상업은행의 신용을 뒷받침하여 부동산 가격을 떠받치는 데 목적을 둔 정책이다. 이러한 양적 완화 정책으로 이자율이 낮아졌고 만들어진 돈은 실물 부문으로 들어가서 고용이나 투자를 늘린 것이 아니라 투기적인 부문으로 흘러가서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켰다. 결국, 지대(임대료)가 이자로 전환하면서 중앙은행을 정점으로 하는 금융시스템 전체가 자산 가격 보호에 더 큰 이해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를 깨트리는 것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금리는 부동산 가격을 움직이는 중대 변수다. ⓒ연합뉴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실

부동산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 금리와 유동성이고 그것이 금융시장을 통해 결정된다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려면 금융시스템을 거기에 알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자금의 흐름을 구분해야 한다. 과거 198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는 화폐 공급량이 늘어나도 상품 가격은 안정되고 자산 가격만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른바 '일본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일본은행은 물가가 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화폐량 공급을 더욱 늘렸고 이는 또 다른 자산 가격 상승의 기회를 만들었다. 중앙은행이 공급한 돈이 자산 시장에서 청구권의 거래에만 사용됨으로써 자산 가격을 끌어올린 것이다. 일본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제조 상품과 서비스를 거래하기 위한 화폐 수요와 금융상품, 곧 자산을 거래하기 위한 화폐 수요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일찍이 케인스는 이 두 가지 유형의 거래를 구분한 바 있다. 케인스에 따르면, 제조 상품이나 서비스와 관련된 거래의 금액은 대체로 총생산(GDP)과 비례관계를 갖는다. 투기성 거래나 순전한 금융상품의 거래는 총생산과 관련을 맺지 않으며 그 가격 수준도 소비재의 가격 수준과 매우 다르게 움직인다. 영국의 금융감독원장을 지냈고,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유명한 <터너 보고서>를 쓴 아데어 터너는 <부채의 늪과 악마의 유혹 사이에서>라는 책에서 원자재 투기 거래나 금융 거래의 증가가 총생산 증가에 별로 기여하지 않는다는 케인스의 통찰력이 부동산 신용과 자산 가격 사이의 연관 관계와 함의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사안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현대 금융 시스템이란 것이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필연적으로 과도한 돈을 만들어내고 더욱이 그 돈이 새로운 설비투자보다 이미 존재하는 자산(특히 부동산)을 거래하는 데 쓰이게 된다고 강조한다. 이는 돈이 금융상품의 거래가 아니라 제조 상품이나 서비스 거래로 향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함을 뜻한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일률적인 금리 정책이 금과옥조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앙은행은 두 거래 사이의 금리를 차등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돈이 창출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부동산 가격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요인이 유동성이라면 그 유동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대공황기에 헨리 포드는, 국민들이 은행 시스템을 통해 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한다면 당장 오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사실 은행 시스템을 통해 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주로 미국에서 흘러온 달러를 기반으로 돈이 만들어질 때는 그 과정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렇더라도 과도한 유동성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생성되는 메커니즘과 그것이 누구를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처럼 돈이 주로 외국에서 유입된 달러를 기반으로 창출되는 경우에는 유동성을 규제하는 장치로서 달러 유입을 막을 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시절에 신현송 교수 주도로 도입한 거시건전성 3종 세트는 유동성을 규제할 훌륭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수단 없이는 유동성을 규제할 수 없고 따라서 주택 가격 상승을 막기도 어럽다.

셋째, 진정한 중앙은행 독립성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 중앙은행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임에도 부를 특정한 계급·계층에게 유리하게 분배할 수 있을 만큼의 막강한 힘을 가졌다. 사실 금융화의 과정은 금융의 힘이 강해진다는 것, 아울러 중앙은행의 힘이 강해진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금융화 시기 중앙은행들은 점차 금융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쪽으로 기울어 갔는데, 그러면서 내세운 논리가 중앙은행이 정부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에서 독립을 한 중앙은행들은 막강한 힘을 자산 계급에 유리한 쪽으로 행사하는 경향을 보였다. 금융화 시기에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한 중요한 이유의 하나도 이것이었다. 자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의 영향력에서 독립하는 것과 그리고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연준의 영향력에서 독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무엇보다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조직하는 문제를 부동산 대책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금융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면, 그 금융정책에 부동산 상승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계층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몹시 중요하다. 현재는 금융정책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에 금융자본가와 산업자본가의 이해를 반영할 인사는 들어가 있지만 노동자, 농민, 소상공인의 이해를 반영할 인물은 들어가 있지 않다. 이들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도록 금융통화위원회의 구성을 바꾸는 것과 함께, 이들의 목소리가 조직되도록 해야 한다. 조직되지 않은 목소리는 정치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 임차인 스스로 정치적인 목소리를 조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정당이 그러한 목소리를 조직하는 활동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섯째, 부동산 정책을 실패하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정책은 정치의 근본 문제이다. 이는 당연한데, 무엇보다 개인 자산의 3분의 2 가량이 부동산으로 이뤄져 있고, 모든 국민이 내집 마련의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내집 마련이라는 구호가 부동산 부유층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지만 이는 현단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사례에서 보듯 부동산 정책을 실패한 정부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 그리고 현재 경험하고 있듯이 정권 재창출의 실패는 다른 부문에서 만들어낸 모든 성과마저 물거품으로 만든다. 부동산 정책에서는 실패했지만 다른 부문에서는 성과가 있었다는 얘기는 통하지 않는다. 부동산 정책에서 실패한 정부는 모든 것에서 실패한 정부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에 실패해서 정권을 내주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세금이라는 수단을 통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려고 했던 점이다. 국토연구원의 보고서에 나타나 있듯이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킨 압도적인 요인은 저금리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저금리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연결고리를 끊을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그저 저금리를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킨 두 번째 요인은 담보대출 규제인데, 이 담보대출 규제도 알려진 것과는 달리 사실은 매우 느슨했다. 이는 담보대출 규모가 지속적으로 상승한 데에서 알 수 있다. 더욱이 노무현 정부 시기의 저축은행 규제 완화나 문재인 정부시기 새마을금고 규제 완화에서 보듯 은행 외의 다른 금융기관에서는 자금이 투기 시장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을 더 활짝 열어주었다. 최근 문재인 정부 시기의 부동산 정책을 평가하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는데, 거기에서도 여전히 부동산 정책 평가 기준이나 안정화 대책을 세금에서 찾고 있다. 과녁은 다른 곳에 있는데, 걱정스런 대목이다.

<도움 받은 자료>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 민생실천 위원회,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 더봄, 2023.

마이클 허드슨, <문명의 운명>, 아카넷, 2023.

아담 레보어, 임수강 옯김, <바젤탑>, 더늠. 2022.

아데어 터너, <부채의 늪과 악마의 유혹 사이에서>, 해남, 2017.

이태리, 박진백, 오민준, <주택가격 변동 영향요인과 기여도 분석>, 국토 이슈 리포트, 국토연구원 202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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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강

임수강 금융평론가(linsk@hanmail.net)는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독립 연구자이다. 증권회사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했고 은행 경제연구소와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역사를 다룬 <바젤탑>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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