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에 쫓겨 건설노동자들은 더 힘들어지고, 건설사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불법 하도급으로 수급해 더 큰 이윤을 남기려 하고, 이게 맞물려 대한민국 건축물은 더 부실해지고 있다."(김진권 철근노동자)
경력 20년차 철근 노동자가 최근 논란이 된 '순살 아파트' 사태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현장 '숙련공'의 부재와 공기를 단축시키려는 속도전, 그리고 불법도급 등이 맞물려 부실시공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건설 현장 '검사' 주체를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철근노동자 김진권 씨는 28일 국회에서 열린 'LH 부실시공 근절방안 마련을 위한 좌담회'에 참석해 "철근일이 예정된 공정에서 70퍼센트 정도밖에 완성이 안 됐는데도 '콘크리트(공구리) 친다'는 소리가 나오고, 일이 안 끝났는데도 후속 공정이 들이닥친다"며 말을 이어갔다.
철근으로 기둥을 세우는 작업을 끝내기도 전에 콘크리트 작업이 시작되니, 이처럼 무리한 일정 단축으로 인해 '순살 아파트' 사태가 빚어지는 셈이다.
김 씨는 "10년 전에는 일하는데 재촉하면 기분 나빠서 집에 가는 노동자도 있을 정도로 자율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도급이 더 심화되어 일의 강도가 커졌다"며 "다급한 일정으로 인해 공기에 쫓겨도 현장에선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도면을 읽고 보강근 등을 시공할 수 있는 '숙련공'의 부재와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가득찬 현장도 문제라고 김 씨는 지적했다.
좌담회장에서 김 씨는 최근 철근 누락이 확인된 경기 이천의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경기도 이천 신축 아파트 현장이 공사 중지 명령을 받은 바 있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시공한 현장이었는데, 철근 누락이 심각한 수준임에도 타설한 게 드러나 공사가 중지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의 현장에서는 감리가 타설을 결정하는 위치였지만, 이제는 현장을 감독하는 '소장'이 타설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공사 외부인이 타설을 결정하던 과거에서 이제는 내부인이 결정하는 상황이 됐다는 뜻이다. 김 씨는 "예전에는 타설 중에도 감리가 작업을 중지시켰던 일이 왕왕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소장이 '내일 타설이다', '모레 타설이다' 잡았으면 웬만하면 그대로 진행 된다"고 감리의 역할과 권한이 부재한 상황을 문제로 지적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2013년 5월 건설기술관리법이 '건설기술진흥법'으로 전면 개정되면서 감리의 역할이 축소되는 규제 완화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건설기술진흥법 이전의 '건설기술관리법'은 감리를 설계감리, 검측감리, 시공감리, 책임감리로 구분 정의하여 따로 분류했으나 건설기술진흥법으로 개정되면서 '건설사업관리' 업무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이를 두고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는 "감리와 검사 업무의 충실화가 설계와 시공 부실 문제 대응의 핵심"이라면서 특히 '검사'(Inspection) 단계는 "공공"의 가치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책임인 현장검사 절차와 기능이 취약해지면서 민간 용역이나 위탁업무로 대체되었다"고 했다.
그가 소개한 외국 사례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공무원이나 발주청 직원이 직접 주요 공정별 현장 검사를 수행한다. 독일의 경우 공공 공사는 공무원이 직접 현장 감독을 수행하고 소규모 공사일 경우 민간업체 용역으로 감독을 진행한다. 일본의 경우 '건축주사'로 불리는 지방정부 공무원이 검사업무를 전담한다. 공통적으로 공공의 이해를 대변하는 공무원이 검사 주체다.
박 교수는 "해외의 경우 중간검사나 준공검사 등 단계별 검사는 지방정부 공무원이 직접 수행한다"며 "공무원 뿐 아니라 사업 시행자에게 자금을 대출한 은행, 시공건설업체가 가입한 보증보험회사도 정기적으로 현장검사를 시행하는 등 현장검사가 매우 중요한 절차"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순살 아파트' 사태 대응을 위해 1995년 폐지된 '중간검사'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공사의 감독·검사 업무를 공공 직접수행 체제로 정상화해야 한다"며 "현장 중간검사 제도를 되살려 사용검사와 함께 공공이 직접 검사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공공 공사의 경우 "LH 등 발주청의 설계-시공 과정에서 직접 감리와 검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인 김남근 변호사도 '공공감리'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건설안전의 현장 감독은 건설행정의 영역에서 담당 해야 하는 공공 영역의 문제인데, 우리는 영세한 민간 감리업체가 이를 담당하다보니 고질적으로 부실감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적어도 LH,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 발주청이 발주하는 건설기술진흥법상의 감리에 대해서는 공공감리가 담당하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또 현장 노동자가 지적한 불법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언급하며 "다단계 하도급은 불법이고 발주자에게도 부실 공사의 원인이 된다"며 "미국 등은 발주자가 원청과의 계약에서 하도급 거래 시 이에 대해 승인받도록 하는 등 발주자가 하도급 관계를 계약으로 규제하려고 하고 있으나, 한국에서 공공발주자가 원청 대기업과의 도급계약에서 이렇게 하도급 관계를 규율하려는 문화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4월 인천 서구 검단 AA-13-2블록 아파트 건설현장 지하주차장(1·2층)의 지붕층 슬래브(970㎡)가 붕괴됐다. 이 현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하고 GS건설이 시공을 맡은 공공분양 아파트다. 주 원인이 철근 누락인 것으로 밝혀지며 '순살자이'라는 오명을 얻어 논란이 됐다.
국토부는 붕괴 사고 원인이 설계·시공·감리 등 총체적 부실에 있다며, 붕괴 부위 철근 누락과 기준치에 못 미친 콘크리트 강도 등을 지적하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GS건설은 해당 단지 전면 재시공을 결정하는 한편 자사 건설현장 83곳을 자체 점검 한 바 있다.
국토부는 전날 시공사인 GS건설에 10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고 설계업체에 대해서는 등록취소 등을 결정했다. 또한 설계자·시공자·감리자 등의 건설기술진흥법, 건축법, 주택법 등 위반사항에 대해 경찰 수사의뢰도 진행하겠다고도 밝혔다. (관련기사 : '순살 아파트' 사태에 원희룡 "발주처 LH 책임도 뺴놓지 않고 묻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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