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의 사망 소식이 잇따른다. 공사기간을 단축하는 만큼 돈이 되는 건설업 구조에서 무리한 작업 요구는 모든 노동자를 위협하지만, 이주노동자에게는 이를 더 거부하기 어렵도록 사업주에 노동자를 속박시키는 제도가 있다. 바로 '고용허가제'다. 사업주에 필요한 인력을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고용허가제에서 비전문(E-9) 비자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제조업, 건설업, 농·어업과 같이 힘들고 위험한 작업을 하는 업종에 한정되어 배치된다. 2023년 8월로 고용허가제 제정 20년을 맞는다. 산업연수생 제도를 폐지하고 2003년 등장한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라는 이름을 찾았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자의 권리는 아직 멀기만 하다.
제도가 외면한 권리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서 사업주와 근로계약서를 맺는다. 그러나 본국 언어가 아닌 한국어/영어로만 쓰여 있다거나, 회사명이나 업무 내용 등이 공란일 때가 많아 노동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을 시작하고 현장에서 사업주 마음대로 계약 내용과 다른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입국 전에 완료한 계약은 입국 후에 바꾸기도 힘들다. 일방적으로 맺어진 계약은 크고 작은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건 임금과 노동시간이다. 일한 만큼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최저임금도 지켜지지 않는다. 그조차 체불을 일삼는데. 노동자의 체류기간 만료를 앞두고 사업주가 잠적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다른 비자를 받고 남아 소송을 진행하거나 포기하고 떠나야 한다. 유급휴일에도 강제 특근을 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아 매년 이주노동자대회는 일요일에 열리고 있다.
더 싼 값에 더 긴 시간 동안 일을 시키려는 사업주의 지시를 거부하기 힘든 이주노동자가 치명적인 위험에 내몰리는 현실은 통계로 드러난다. 2021년 기준, 노동자 1만 명당 사고 사망자가 이주노동자의 경우 전체 노동자보다 6.9배나 높았다. 제대로 쉬지도, 치료받지도 못 한 채로 강제로 일하다가 몸과 마음이 망가져 본국에 돌아가기도 한다.
전월세를 감당하기 힘든 이주노동자들은 기숙사를 제공하는 사업장을 선호한다. 그러나 사업주는 이런 노동자의 상황을 악용한다. 그저 고용허가를 받기 위해 고용센터에 자기 집 사진을 숙소인 것 마냥 보내는 사업주, 그리고 진위 여부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허가를 내주는 고용센터, 이러한 책임 부재 속에 열악한 건축물을 숙소로 사용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한 방에서 여럿이, 잠금 장치마저 부실한 숙소에서 지낸다.
영하 20도 한파에 난방도 안 되는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한 여성 이주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숙소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숙소는 또 다른 일터로 기능하기도 한다. 사업장 가까이 붙어있는 숙소에서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감시 속에 지내고, 언제라도 그의 호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사업주는 이주노동자가 도망갈까봐 외출을 통제하고, 그렇게 낯선 땅 어딘가에 고립되어 이주노동자는 어떠한 권리도 요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제도가 가둔 권리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이 정주노동자에 준하는 노동법 적용을 받는다고 명시해놨지만, '사업장 변경의 자유 제한'은 이 모든 걸 무력화한다. 열악한 근로조건, 부당한 대우로부터 벗어나고자 사업장을 바꾸려면, 사업주의 허락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한 것이다. 최대 취업기간을 채울 수 있을지 불확실할 때, 그 기간을 꽉 채워 일해도 생계가 벅찬 게 예상될 때, 이주노동자는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족쇄에 묶인다. 그 어떤 권리보다도 저항할 권리, 권리를 요구할 권리가 사업주에 종속된다.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은 항상 체류권과 맞물려 돌아가며, 고용허가제는 이 모두를 사업주의 손에 쥐어준다. 체류자격 박탈을 협박하며 노동자가 지시를 거스를 수 없게 강제한다. 차라리 해고를 시켜달라 부탁하는 이주노동자에게 그 대가로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의 비자를 압수하기도 하고, 노동자 모르게 '사업장 이탈 신고'를 하여 비자를 취소시킨다. 그러면 미등록 체류 신분이 되어 단속과 '강제 추방'의 대상이 된다. 그런 위협 속에서 강제추방을 피하려면 사업주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제도로서 '강제 노동'을 뒷받침해온 것이 고용허가제다.
국가가 허락한 사업주의 '부릴' 권리
작년 12월 말, 정부는 '산업현장과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부족한 '인력'을 채우는 것만이 아니라 감소하는 '인구'까지 이주노동자로 메우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제목이다. 중심에는 업종 및 쿼터 확대가 있다. 지금보다 이주노동자를 더 여러 업종에서 더 많이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장기근속특례제'의 신설은 그간 단기순환 정책을 골자로 해온 고용허가제의 변화를 예감하게 한다. 정주 방지를 위해 5년이 넘지 않도록 기간을 제한해왔는데, 노동자의 숙련이 인정되면 최대 10년까지 일할 수 있게 하여 사업주에게 보다 숙련인력을 안정적으로 활용하도록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요건을 '동일 사업장에서 2년 이상' 일한 경우로 두면서 열악하거나 부당한 조건이라도 더 순응케 하는 장치로 기능할 것이라는 우려가 짙다. 여기에 사업주가 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한 이력과 그 사유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업주의 감시와 통제를 더욱 강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근본적인 문제로 계속 짚어져온 사업장 변경 제한은 오히려 더욱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임금체불, 폭언과 성폭력 등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최초 3년의 취업기간 동안 최대 3회 '같은 업종'에서만 예외적으로 가능하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9월부터 입국하는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 조건에 '같은 지역'으로 제한하는 요건을 추가했다. 지역 소멸 위기 대응이라며 지역에서 필요한 인력을 묶어두는 방법으로 이주노동자를 볼모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이탈했을 때 사업주 책임이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 내국인에 대한 구인노력 없이 바로 외국인력 고용을 신청할 수 있게 됐고, 동시에 신규고용제한도 폐지됐다. 파견근로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고 한다. 정부는 사업주가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더 손쉽게, 더 오래 쓸 수 있도록 하는 유연화 대책을 '선제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쏟아내고 있다. 정부가 사업주의 곡소리에만 부응하는 상황에 사업주가 적절한 대우를 받고 안전하게 안정적으로 일하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워질 여지가 다분하다. 당장 내년 역대급으로 많은 이주노동자 11만 명을 들인다는 계획이다. 권리 없는 자리로 할당되는 이주노동자와 어떻게 함께 권리 있는 자리를 만들어갈 것인지, 긴박한 과제 앞에 놓여있다.
노동의 권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일자리를 빼앗는 문제,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이유를 이주노동자로 돌리며 건설 현장에 이주노동자를 들이지 말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하고 불안정한 건설 현장을 고스란히 같이 겪는 동료로 이를 바꾸기 위해 함께 모이고 뭉쳐야 할 동료로 건설노조 조합원이 된 이주노동자들이 늘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고용허가제가 배치한 이주노동자의 자리는 노동의 권리가 무너지고 삭제된 자리들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기 어렵게 하는 사업장 변경 제한에 지역 이동 제한까지 덧붙여 노동의 권리가 없는 자리로 더욱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밀어넣는 것이 정부의 개편 방향이다.
오랜 투쟁과 요구 속에서 2021년 한국은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 노동 금지에 대한 협약 29호를 비준했다.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없고, 고용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체류자격을 박탈하는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의 선택지는 사업주의 요구에 순응하며 버티거나, 버티지 못하고 이탈하는 것이다. 그렇게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를 강제 노동의 굴레로 속박하고, 강제추방의 위협으로 내몰아 왔다.
"강제 노동 철폐! ILO협약 이행!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 지금도 이주노동자들은 사람답게 노동할 수 있도록 권리를 해방하라 외치고 있다. 이 구호가 이주노동자만이 아니라, 어느 일터든 그곳에서 일하는 누구라도 함께 누려야 할 노동의 권리를 세워가자는 요구로 더 많은 정주노동자가 함께 외치는 시간으로 고용허가제 20년 투쟁을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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